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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처럼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는 우리의 낭만
염라대왕에게 어느 날 충치가 생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치아가 필요하게 된다면? 과연 염라에게 걸맞은 치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 치아를 찾기 위해 신입 1년차인 치위생사 이시린과 나한 수보리가 계약을 맺게 된다. 귀여운 상상력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온 청예 소설가의 신작.
2025.02.28.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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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교정 라미네이트 임플란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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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은 스스로를 방관자 대신 중립자라 지칭하기로 했다. 단어의 차이에서 오는 편안함의 단차를 곱씹었다. 그러자 목구멍을 간질거렸던 식욕마저도 삶이 시시해져, 아주 숨어버렸다.
--- p.23 인간이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도 때때로 모진 풍파를 겪는 이유는, 하늘이 그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신의 사소한 실수 때문이었다. --- p.25 투덕거리는 마음들 아래에, 우주를 보존하는 가장 큰 기둥은 언제나 사랑이었으므로. --- p.30 시린은 연애, 결혼, 연봉, 진급, 뭐 하나 딱히 불을 켜고 사는 게 없었다. ‘요즘에 누가 그런 걸 위해서 살아? 시대착오적이고 촌스러워, 다 옛말이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주변인들을 보면 딱히 새 시대는 오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평소에는 사방이 암흑이라 본인이 꺼진 줄도 몰랐지만 환하게 타오르는 불을 목격하는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는 조바심이 들었다. ‘혹시 나만 꺼져 있는 걸까?’ 하고. 목구멍 언저리가 아릿했다. --- pp.34-35 성혼 부부 중에 3분의 1이 이혼한다고 하니, 이혼 가정이란 것도 지극히 평범한 가정사요, 살아온 역사까지도 특별한 것 없이 적당히 불행했다. 시린은 찹쌀떡 위의 흰 가루 같은 삶을 살았다. 의미야 있겠지만 설명을 붙여주기 애매한 삶. --- p.40 그러나 낭만이란 녀석이 현실을 구원할 영웅으로 승격되진 못했다. 낭만이 슈퍼맨의 망토를 뒤집어쓰고 손을 내밀면 그녀는 냅다 손을 찰싹 내려치며 망토를 찢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굶어 죽을 일 있나, 괜히 빚만 생겨. 그리 마음먹으면 오후 2시의 한낮처럼 환하게 웃던 낭만도 기가 팍 죽어서는, 새벽 2시처럼 어둠을 입에 물고 구석에 숨었다. --- p.41 마음도 양치를 해야 하나요. 어린 시절 먹었던 달콤한 도넛들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사는 탓인지, 어느새 증식한 세균이 마음의 균열을 파고 들어가 소중한 감정을 갉아먹었다. 증세가 심해지면 일상을 모조리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바랐다. 성인이 되면 나쁜 우식마저 성장을 멈추니, 삶을 향한 한탄도 정지 우식처럼 방치해도 괜찮기를. --- pp.43-44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봤자 남을 미워하는 사람이 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까. 그녀가 별다른 불행이 없어도 살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데는 이러한 얼개가 있었다. --- p.51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시름 없는 존재는 없으므로. --- p.68 그녀는 자신도 갖고 있는 매복 사랑니 하나를 혀로 훑어보았다. 아직 치아가 나오기 전이라 잇몸 속의 단단한 고체감만 느껴졌다. 이 사랑니는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게 될까. 언젠가 마주할 자신의 미래도 반듯하기를 바랐다. --- p.70 절대 두 번 오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부친의 치아도, 망쳐버린 오늘도, 모두 처음이 곧 마지막인데. --- p.95 수많은 미물 중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의지가 있다. 그것을 존자들은 용기라 일컬었으니, 수보리에게 이러한 회피는 기특하게 보이지 않았다. --- p.132쪽 우주 만물은 사소한 태동으로 시작돼 종국에는 거대한 세계가 된다. 모든 차원의 미물에겐 부단히 발걸음을 움직여 삶에 태동을 보태고, 그들이 사는 우주를 아름답게 가꿀 의무가 있다. --- p.134 “자네와 나는 같은 나한이지만 겪어온 삶이 다르고 마음도 다르다네. 인간도 마찬가지라네. 모두가 강인하게만 산다면 그것이 과연 다채로운 우주겠는가?” --- p.139 “만 개의 목숨엔 만 가지의 낭만이 있다네.” --- p.140 제 손으로 타인의 삶에 끝내 개입하겠다는 결단이 어린아이의 뒤집기처럼 무모하고도 건강한 추동을 이끌었다. 이 활력이란 곧 생의 감각. 그녀는 오랜만에 세상에 소속되었다. --- p.195 내일이 보장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늘 불행을 선택하는 것보다, 내일을 그냥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지는 게 좋아. 괴로워도 나는 나대로만 괴롭고 싶어. --- p.203 “내 인생은 참 이상했어요. 내 생각만 해야 할 땐 남 눈치를 봤고, 정작 남 생각을 해야 할 땐 내 생각만 했어요. 지난날들은 이 사랑니랑 함께 다 가져가주세요. 당신은 나에게 우주의 귀인이니까.” --- p.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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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한겨레출판 턴(TURN) 시리즈 2차분 출간 한겨레출판이 흡인력 있는 전개와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턴 시리즈 2차분을 출간한다. 다년간 장르 친화적인 전자책 플랫폼에서 구축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작가 발굴에 힘써온 리디와 손잡고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소설을 통해 문학의 경계를 초월해 무엇보다 이야기 본래의 재미와 가능성을 꿈꾸며 기획한 턴 시리즈는 2024년 『트로피컬 나이트』『칵테일, 러브, 좀비』 등을 통해 특유의 스타일로 사랑받아온 조예은 작가의 『입속 지느러미』로 포문을 연 뒤 강민영, 설재인 작가의 신작 장편을 펴내면서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강민영 작가의 『식물, 상점』은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 9개국에서 총 10억 원의 선인세를 받으며 번역 판권 계약을 체결해 주목을 받았다. 국내외 독자의 뜨거운 반응에 새롭게 답할 청예, 김달리 작가의 장편소설 역시 시리즈에 역동성을 더할 것이다. 턴 시리즈 소개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은 한겨레출판과 리디가 공동 기획한 장르 소설 시리즈입니다.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소설을 통해 이야기 본래의 재미와 가능성을 꿈꿉니다. 이야기의 불빛이 켜지면 새로운 세계에 도착합니다.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TURN 01 조예은 『입속 지느러미』 TURN 02 강민영 『식물, 상점』 TURN 03 설재인 『그 변기의 역학』 TURN 04 청예 『낭만 사랑니』 TURN 05 김달리 『플라스틱 세대』 정이담(근간) 전건우(근간) 조영주(근간) 유진상(근간) 가언(근간) 이수현(근간) 작가의 말 이 세상이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에 당신부터 행복해져야 한다. 또한 당신이 행복해지려면 당신 옆 사람도 행복해져야 한다. 오랜 지론이고 가급적 깨고 싶지 않다. 힘든 일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돕고, 위로해주기를. 정의라든가 윤리라든가 어려운 관념을 몰라도 행동은 할 수 있으며 행동이 언제나 세상을 압도한다. 당신이 여기에 속해 있기에, 당신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타인의 행복 또한 구제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산다. 결국 정치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행복을 위하여. 『낭만 사랑니』 또한 정치적인 마음으로 썼다. 우리가 좀 더 이타적으로 살기를. 서로의 행복과 자유를 수호하기를. 낭만이 도처에 깔려 있어 그런 단어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지기를. 갈급함 없이 먼 훗날 우연히 찾게 되어 내게도 있었노라 깨닫기를. 모르고 살다 불현듯 발견하는 사랑니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