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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노래를 네 목소리로만 듣고 싶어] 기괴하지만 사랑스럽고, 어둡지만 찬란한 세계관을 선보이는 조예은의 신작.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하면서 꿈을 잃은 주인공. 그녀에게 외삼촌의 유산인 ‘인어’가 나타난다. 그의 황홀한 목소리에 빠져 점차 몸과 마음을 바치게 되는데… 이 치명적인 사랑의 끝이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볼 차례. -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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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 지느러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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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대화 한 번 해보지 않은 타인의 목소리가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노래를 단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듣길 바라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지?
--- p.11 이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는 노래를 불러야만 해. 그가 죽기 전 노래를 단 한 곡 부른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 만든 노래여야 했다. --- p.11 “노래 잘 들었다. 네가 만든 노래는 뭐랄까…… 지느러미 같아. 고막을 간질이는 지느러미. 나는 그 감촉을 알거든.” --- p.22 외가에는 대대로 집요함의 계보가 있었다. 큰삼촌은 장기에, 엄마는 뜨개질과 십자수에 몰두했다. 외증조할아버지는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장구꾼이었으며 기사식당을 운영하던 작은이모는 30년간 아코디언을 연주했다. 핏줄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스님도 나오고 장인도 나왔다. 민영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노래와 밴드만 붙잡고 있는 선형을 보며 매일같이 삼촌에 빗대 욕을 해댔다. --- p.23 아버지는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며 말했다. 민영이 넌 내가 만든 새끼들 중 가장 아버지를 닮았다고. 그러니 늘 곡조를 조심하라고 말이야. --- p.32 영상이나 책에서도 본 적 없는 기이한 생물체들이 그 안에 있었다. 단순히 처음 보았다는 이유로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마 누구라도 지하실을 보자마자 깨달을 것이다. 그것들은 예외적인 존재였다. 금기시되어온 무언가였다. 인간이 이름 붙이지 못하는, 붙여서는 안 되는 낯선 생명……. --- p.39 꼭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리 와. 내가 좋은 걸 줄게. 나에게 와. 그는 계속 더 깊은 곳으로 움직였다. --- p.41 음파가 고막에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분명 아주 섬세한 세밀화일 것이다. 찰박이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꼭 박자를 맞추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리듬이 신경을 팽팽히 조였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고 계속될 듯 맥없이 고꾸라졌다. 귀를 박박 긁고 싶었다. 간지럽고 감미로우며 괴로운 이 소리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 p.46 지금껏 그의 귀를 거친 모든 소리를 소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달콤함이었다. 외이도와 고막을 지나 부드럽게 뇌를 쓰다듬는 곡조. 묵은 피로가 사라지고 약이라도 한 것처럼 구름 위를 뒹구는 기분. 황홀함을 맛본 귀는 뇌와 심장에 새로운 욕망을 전달했다. 허밍으로는 부족하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다음이 필요했다. 가사가 필요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귀를 선물하고 싶었다. --- p.51 한때는 세상의 모든 노래를 네 목소리로만 듣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럴 수 있다면 내 귀도 팔다리도 바칠 수 있었어. --- p.108 뼈 주위를 수놓은 살점, 몽블랑처럼 다소곳이 쌓인 장기, 녹아내린 초콜릿같이 점도 높은 검붉은 웅덩이. 지옥을 닮은 풍경 한가운데에서 피니가 웃고 있었다. --- p.127 “피니, 내 이름은 알 필요 없어. 하지만 노래는 기억해줘.” --- p.145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방금처럼 내 노래를 불러줘.” --- p.150 찰박찰박. 얇고 축축한 지느러미가 바닥을 치는 소리가 고막을 간질였다. --- p.150 |
“광기에 가까운 순수한 열정과 청춘은 끝나버렸다.
성과 하나 없이” 무산된 꿈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 선형은 대학 시절 부지런히 취업 준비에 열을 올려야 할 시기에 작곡 동아리에서 음색이 독특한 경주를 만나 밴드를 결성하면서 주류에서 신나게 엇나간다. 부모에겐 “얼굴만 떠올려도 심란”하고 한심한 백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래를 위해서라면 “귀도 팔다리도 바칠 수 있”을 만큼 집념과 열정이 대단한 작곡가 지망생이다. 그러나 경주의 배신으로 밴드가 해체되어 결국 공무원 시험 합격을 목표로 살아가게 된다. 삶의 의지를 상실한 듯 꾸역꾸역 시험공부를 하던 선형에게, 요절한 민영 삼촌이 남긴 선물 ‘피니’는 꿈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피니가 꼬리를 찰박거리며 부르는 황홀한 노래는 “이리 와. 내가 좋은 걸 줄게. 나에게 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선형은 무자비한 식성 때문에 피니를 감당할 수 없어 가슴 아픈 이별을 겪지만, 예전에 작곡한 노래를 피니에게 가르쳐 생기를 잃은 꿈을 되살릴 기회를 얻는다. 시간이 흘러 국가직 교육행정 공무원이 된 그는 피니의 노래에 대한 기억으로 충분해 3년 동안 노래를 한 번도 듣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그의 직장인 우성리 중학교 인근 바다에 피니가 나타나 그리운 선율을 들려준다. 비록 선형이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을지라도 그의 마음속에는 피니가 영원히 살아 움직일 것이다. 《입속 지느러미》는 위험해서 아름다운 인어이자 세이렌인 캐릭터를 통해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꿈이 우리를 얼마나 깊게 매혹하는지 간파한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의 꿈에서 점점 멀어지기 마련이지만, 귀소본능이 있으며 모든 것을 기억하는 피니처럼 꿈은 추억과 그리움을 매개로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틈틈이 알린다. 이 작품은 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간직되는 것이며 현실과 타협하더라도 결코 실패하는 것이 아님을 믿게 한다. 인어의 지느러미처럼 간질간질한 꿈을 마음 한편에 지닌 우리의 미련과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다. 장마에 들어선다는 주말이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하늘이 빗방울을 흩뿌렸다. 선형은 전에도 비슷한 풍경을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요하던 포구는 곧 비명과 사이렌,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소란의 틈으로 익숙하고도 그리운 선율이 귀에 닿았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타고 노래가 불어왔다. 인파에서 빠져나와 검은 모래가 깔린 해변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왠지 그곳에 보고 싶은 얼굴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_본문에서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한겨레출판 턴(TURN) 시리즈 론칭 한겨레출판이 흡인력 있는 전개와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장르 소설 시리즈를 리디와 공동 기획해 론칭한다. 다년간 전자책 플랫폼으로 구축한 장르 친화적인 노하우로 작가 발굴에 힘써온 리디와 손잡고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소설을 통해 문학의 경계를 초월해 무엇보다 이야기 본래의 재미와 가능성을 꿈꾸며 기획된 시리즈라 의미를 더한다. 한계 없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터닝포인트를 마주하기를 바라는 턴 시리즈는 신인의 패기로 무장한 작가부터 지금 가장 주목받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한 이까지 두터운 작가군을 확보했다. 《트로피컬 나이트》《칵테일, 러브, 좀비》 등을 통해 특유의 스타일로 사랑받아온 조예은 작가의 최신작 《입속 지느러미》가 ‘턴’의 포문을 연다. 이후 강민영, 설재인, 김달리, 청예 작가 등의 신작 장편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영상 문법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을 포섭하는 데 소극적이던 기존 문학의 장을 뛰어넘어 첨예한 상상력을 담아낼 이 시리즈가 침체된 출판계에 활력이 되리라 기대한다. 작가의 말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2, 30분을 걸으면 바다가 나왔다. 도착하기 10분 전부터 공기가 습해지고 짠 내를 머금은 강풍에 앞머리가 엉망이 되었다. 가장 싫은 건 냄새였다. 그때는 바다를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으나 지독한 냄새만은 질색했다. 그래도 야간 자율학습을 제치고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느긋한 밤 산책은 꽤 운치 있었다. 목적지는 대부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삭막한 해안 공원이었다. 순전히 학교 정문에서 직진하면 저절로 그곳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 걸으려야 걸을 수가 없었다. 일렁이는 검은 물이 가로막아 길이 없었다. 가로등이 드물고 근처에는 망한 가게와 개관 직전의 박물관 등이 포진해 있어 뭐라도 튀어나올 듯 을씨년스러웠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려고 갔다. 일종의 담력 시험이었달까.) 공원 울타리를 붙잡고 서면 어둠에 잠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너무 까매서 갯벌인지 물인지, 구멍인지 우주인지 알 수 없었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둠을 응시하다가 저 밑바닥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곤 했다. 나는 괴물 이야기를 좋아한다. 읽거나 보는 것도, 쓰는 것도 좋다. 그중에서도 물속에 사는 괴물이 가장 흥미롭다. 어렸을 땐 심심하면 심해 생물 사진을 찾아보고 해양 괴담을 뒤적였다. 그리스신화 속 세이렌에게도 역시 매혹을 느꼈는데, 자료 조사 중 작게 당황한 일이 있었다. 당연히 인어의 형상인 줄 알았지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발톱이 날카로운 새의 형상으로 기록된 것이다. ‘인어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낙심하며 자료를 더 찾았다. 다행히 중세시대 후반부터는 바다의 정령으로 인식되어 여러 미술작품에 인어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생선 내장이나 알탕도 먹지 못하면서 끔찍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를 쓰는 일은 왜 이리 즐거운지 모르겠다. 《입속 지느러미》는 취향이 한껏 들어간 소설이다. 본래 도시와 청년이 키워드인 호러 앤솔러지에 들어갈 단편을 청탁받고 시놉시스를 떠올렸으나 당시에는 그다지 무섭지 않아서 완성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단편 분량은 한참 부족했지 싶다. 리디에서 연재를 제안했을 때, 곧장 이 이야기를 생각했다. 이야기가 자신에게 적합한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 같기도 하다. 기존 시놉시스에 살을 붙여 여러 장소에서 야금야금 초고를 썼다. 종로의 오래된 카페, 청계천 골목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 호텔의 로비. 장마철에 고향에서 짙은 해무를 바라보며 쓰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근처 해안 공원에는 가지 못했다. 지금 그곳은 더 이상 스산하지 않다. 번듯한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을 반긴다. 공간에도 분명 과도기가 있다. 한 지점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가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겪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돌아오는 겨울에는 그곳에 갈 것이다. 여름보단 한겨울 바다가 취향에 맞다. 바람은 매섭겠지만. AR부서에서 일하는 친구 J에게 몇 가지 도움을 받았다. 갑작스럽고 귀찮은 질문에 정성껏 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후반부를 쓰는 동안은 내내 장마였다. 지나간 계절의 습기와 무산된 꿈의 일부를 담았으니 모쪼록 즐겨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