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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녹지 않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녹지 않는 ‘방부제 눈’이 내리는 세상, 『스노볼 드라이브』는 한 시절을 눈 아래 박제 당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예기치 않은 재난은 일상을 파괴하지만 그 아래서 함께 무너지기보다는 웃고, 온기를 피워내고, 헤치고 달리기를 선택하는 이들의 얼굴이 빛나는 소설 -소설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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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 7
작가의 말 227 추천의 말 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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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강설량 20센티미터. 총합 150센티미터. 일반 눈과 다른 점은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짜 눈은 성인 남성의 가슴팍까지 잠길 정도로 쌓였다. 거리의 온갖 쓰레기들, 테이크아웃 컵과 깨진 유리 조각, 담배꽁초, 죽은 시궁쥐, 제대로 닦이지 않은 일회용기 따위도 전부 눈 아래에 묻혔다. 더러운 것은 눈송이가 다 감춰 버렸으므로, 거리는 언뜻 평화로워 보였다. 태우지 않는 한 영원히 녹지 않는 눈 결정체는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일렁이는 물비늘처럼 이쪽저쪽으로 반짝였다.
--- p.34 피해는 더디게 복구되었다. 그사이에 돌이킬 수 없도록 무너지는 것들이 더 많았다. 굶어 죽는 사람들, 외로워서 죽는 사람들, 망하는 사람들, 망해서 죽는 사람들, 답답함을 참지 못해 눈 위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발작을 일으킨 사람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외출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다 돌아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 --- p.35 일은 단순하지만 힘들었고, 녹초가 되어 퇴근 이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센터에서 궂은일을 하는 데 나이 제한을 둔 이유가 있었다. 어린애들은 겁이 많고 잘 속으며 체력이 좋지만 뭘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잘 움직이니까. --- p.93 욕심, 욕심이라고. 순간 내가 욕심 같은 걸 가져도 될 처지인가 싶었으나 그래서 더욱 바라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내가 놓쳐 온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부터라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붙잡고 싶었다. 손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져 버리는 눈송이가 아닌 단단히 쥘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돌아오지 않을 사진 속 세상을 추억하는 일이나 이모를 잃어버린 후에 이모를 쫓는 일 같은 건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 p.152~153 역한 냄새들 사이로 은은한 포도 향이 풍기면 근처 어디엔가 그 애가 있었다. 방독면을 쓰고 일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그 포도 향이 선명했다. 신기한 일이지. 전부 똑같은 작업복에 방독면을 썼는데도 그 애를 알아볼 수 있었다. --- p.170 |
빌어먹을 아름다움
『스노볼 드라이브』는 재앙이 일상이 되었을 때 억압과 절망이 어디까지 손을 뻗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방부제 눈은 점점 많이 내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모두 덮어 버린다. 온통 흰 눈뿐인 도시는 슬프게도 아름답지만 “예쁘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아무도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눈을 소각해 없애는 작업장인 ‘센터’에서는 두 주인공 모루와 이월처럼 10대의 절반이 지워진 20대 초반 직원들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이들은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은 통근버스를 타고 센터를 오가며 꼭 학교생활을 다시 하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어쩐지 즐거우면 안 될 것 같아 학생들처럼 자주 웃지 못한다. 내가 웃고 있는 이 시간에도 센터 한구석에서는 직원들이 눈사태로 실종되고 직원의 실종 같은 작은 일에는 구조대가 출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눈에 묻혀 죽음을 맞은 동료의 얼굴을 어느 날 작업 중에 마주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을 눈앞에 두고도 더 이상 아름답다 말하지 못하는 것, 재앙이 삶 깊은 곳까지 침투했을 때의 가장 비참한 결과다. 흰 눈과는 다른 색으로 주인공 모루는 스노볼이라는 의외의 단서를 남기고 실종된 이모의 흔적을 찾아 센터에 남기로 한다. 고된 작업, 건조함에 부르트는 살, 매일 눈 속에서 마주해야 하는 사체들. 그럼에도 이모가 다른 사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낼까 봐 모루는 온갖 쓰레기가 모여드는 센터를 떠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모루와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이월이 센터에 취직한다. 이월로부터 새롭게 피어나는 기억들이 있다. 지루하기만 했던 학교, 포도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던 평범한 하루, 들뜬 마음이 가득하던 졸업식 풍경 같은 것. 흰 눈에 뒤덮인 세상, 온몸을 가리는 똑같은 방역복을 입고 다녀야 하는 무채색의 현재 속에서 오직 이월만이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졌던 과거의 시간들을 비춘다. 잊고 있던 예전의 빛깔들이 흑백의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까지 물들여 줄 수 있을까. 흰 눈과는 다른 색의 세상이 오기는 할까. 『스노볼 드라이브』는 인아영 평론가의 추천의 말처럼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세계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아 더욱 단단해질 수 있는 용기”에 관한 소설이다. 모루와 이월이 함께 내디딜 발걸음은 불확실함 앞에 망설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단단한 응원이 되어 줄 것이다. |
『스노볼 드라이브』의 아름다운 순간은 모루와 이월이 그 진실을 너무나 처절하게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눈길 위로 달리기를 선택하는 장면들에 있다. 그들은 세계를 포기하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이 끔찍한 세계 속에서도 함께 있을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떠난다. 모루와 이월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그들이 설원 위에 긋는 무수한 자국들을 상상한다. 또다시 그 위에 눈이 쌓이더라도, 오직 내달리는 사람의 열기만이 이 세계를 조금씩 녹인다는 것을 이제는 어쩐지 알 것 같다. - 김초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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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녹지 않는 눈이 쌓여 특수 폐기물 매립지역이 된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소설인 동시에 스노볼 하나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 이모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이기도 하고, 가정환경과 외모와 성격까지 모두 달라 보이지만 본능적으로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보는 모루와 이월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는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장르적인 문법을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탄탄하고 정교한 구성, 그리고 기후, 환경, 동물 문제 등 동시대 사회 문제를 예민하게 감각하여 좋은 이야기로 풀어내는 조예은의 솜씨는 이번 소설에서도 여전하다. -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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