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악마는 열심히 산다 7
묘지 산책 87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137 작가의 말 181 발문_ 안세진(문학평론가) 방금 악마가 다녀갔어 186 추천의 글_ 이희주(소설가) 193 |
김화진의 다른 상품
|
지구상의 다른 모든 종족과 마찬가지로 악마 역시 사람 틈에 섞여 산다. 본래의 새까맣고 작은 몸뚱이로 살아가기도 하고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살기도 한다. 야망이 있는 편인 악마들이 주로 인간의 집을 차지했다. (……) 악마들의 관심이 쏠리는 쪽은 역시나 서울, 서울에서도 주택가였다. 빼곡한 건물 틈 사이사이에 악마가 고였다. 인간들이 바글바글한 곳, 응당 그런 곳에서 악마들이 좋아할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런 일을 악마들이 벌일 때에도 파장이 더 크기 때문이다.
---p.9~10 제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뭘 가져가시는 거죠? 악마 Z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1초 만에 대답했다. 스쿠터. 네 스쿠터를 가져갈 거야. 악마가 허공에 작성한 계약서에 가영이 서명을 했다. 그러고 가영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다 아, 하고 그 자리에 서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타는 법은 아세요? 악마 Z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악마는…… 전능하단다. ---p.19 악마 Z는 가영의 이야기를 듣다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아까 낮에 걔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사랑 사랑 아주 난리가 났구만. 사랑 그건 보자 보자 하니까 손 안 대고 코 풀기 일쑤인 것 같았다. 악마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이곳저곳 찌르고 다니느라 쉴 틈이 없는데 말이야. 정작 인간들을 못나게 슬프게 만들고, 죽고 싶게 만들고, 인간들을 붕 띄우거나 나락으로 처박는 건 자꾸만 사랑이다. 악마의 몫인 걸 자꾸 사랑이 해냈다. ---p.46 가영의 말을 자신의 말 삼아 입 밖으로 내려고 하자, 이상하게 불쑥 눈물이 먼저 솟았다. 뭐야 이거. 동기화인가. 악마 Z는 당황했다. 거기에 루돌프 청년이 말없이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어서 목에 커다란 삶은 달걀이 걸린 것처럼 숨이 조여 왔다. 가까스로 숨을 내쉬며, 자기도 모르게 덧붙였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걸 하며 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됐어. 악마 Z는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가영의 목소리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랬다. 다른 복잡한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좋아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그랬지, 나는. ---p.51 지금 가영은 생각한다. 그렇게 놀라워했는데 나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피아노를 친 지. (……) 이렇게는 안 할래, 하고 마음먹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피아노를 끊은 지 정말로 1년이 되어 간다. 20대 때 일인데. 해 온 시간이 하지 않기로 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인데도, 비율로 따져도 하지 않은 시간은 터무니없이 적은데도, 어쩐지 20여 년 치 과거의 시간들은 힘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물속에 잠기는 느낌이었다. ---p.93 행복은 언제나 스몰 사이즈 정도여야 좋았다. 가늠이 가능할 때. 몸에 맞을 때. 자신은 스몰 사이즈 인간이었으므로 딱 맞았다. 그렇게, 더 큰 사이즈의 행복 같은 건 바란 적도 없는데. 그러나 불행은 사이즈에 맞게 오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있는 동안 그 절절 끓는 마음은 다 식고 응고되었다. 기억에서 감정을 제거한 채 동결건조한 것 같았다. 가영은 마음을 주사위처럼 굴려 보았다. 악마가 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p.109 혼자 남기 싫다는 마음, 미움받기 싫다는 마음이 어설프게 뭉쳐지면 중요한 것을 잊게 되는 것 같았다. 누굴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할지 정하는 기준 같은 것. 불특정 다수에게 편안하고 온화하고 좋아 보이는 사람 말고 자기 진심에 스스로 충실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 어느새 종현은 사랑받으면서도 외로웠고, 사랑받으면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기묘한 위치에 있었다. ---p.142 가영을 보면 늘 마음이 초조했으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이전에는 가영과 하루빨리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잰걸음을 걷는 듯했다면 지금은 제자리에서 콩콩, 그런 느낌이었다. 제자리뛰기 느낌. 이전보다 위로 솟구칠 때 높이가 좀 더 높았다. 아래로 내려올 때 떨어지는 느낌은 좀 더 떨렸다. 경주월드에서 드라켄을 타는 기분에 더 가까웠다. 그 느낌이 무엇이냐면…… 이것은 분명 아는 느낌인데……. - ---p.168 |
|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악마 사회
“인정은 모든 악마의 둘도 없는 목표였으며 그리하여 악마들로 하여금 죽기 전에 받을 수 있을까 하고 평생을 오들오들 떨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13쪽) 악마가 인간의 욕망에 맞물려 존재하듯, 소설 속 악마 사회도 인간 사회와 꼭 닮은 모습이다. 얼마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따라 등급별로 업적이 나뉘고 그에 따른 포상이 이루어지는 철저한 성과 중심 사회다. 포상은 안락한 ‘집’과 뜻을 이을 ‘후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악마 Z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간의 성과가 미미해, 운 좋게 얻은 보일러 있는 집을 곧 잃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성장하지 못하는 악마’. 그런 평가가 무엇보다 두려웠던 악마 Z는 용기를 내어 가영을 파멸로 이끌 거래를 제안한다. 다만 그 거래에는 악마 Z만의 작은 즐거움이 몰래 끼어 있었다. 바로 그가 거래의 대가로 받은 가영의 스쿠터. 가영이 가진 것 중 가장 재미있어 보여 늘 탐내고 있었지만 사소한 업적이라 비난받을까 봐 외면했던 바로 그 스쿠터를 드디어 차지한 것이다. 모처럼 의욕을 낸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허락한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로부터 악마 Z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끝말잇기 하듯 주렁주렁 밀려든다. 스쿠터, 스쿠터를 타고 달리며 듣는 음악, 음악처럼 신나게 불어오는 바람, 바람이 흐르는 골목, 골목마다 숨어 있는 맛집들. 그렇게 쌩쌩 인간 사회를 달리는 동안 악마 Z는 문득 궁금해진다. 이토록 많은 즐거움을 가영은 왜 도통 누리지 못했을까? 하고. · 홀로 남아 소용돌이 치는 마음 “진짜로 혼자가 되었을 때 가영은 마음 놓고 혼잣말에 둘러싸여 지냈다. ‘나는’과 ‘나는’ 사이에 혼자.” (114쪽) 두 번째 이야기 ‘묘지 산책’에서는 가영의 마음속이 펼쳐진다. 한때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던 가영은 지금 일도 외출도 그만두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집 안에만 머물러 있다. 같은 밴드 멤버의 스캔들에 휘말려 사이버불링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밑바닥을 봐 버린 동료와 다툰 끝에 가영이 조용히 떠나기를 택한 것이다. 가영의 마음에는 사라진 피아노만큼의 구멍이 커다랗게 남아 있다. 사랑했던 음악과 사람에게 상처받고,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까무룩 숨어든 지 어느덧 1년. 그동안 가영은 내내 집 안에만 있었지만, 사실 가영의 마음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가영의 마음은 커다란 상처를 가운데 두고 아주 먼 과거의 기쁨과 가까운 현재의 슬픔 사이를 하염없이 맴돌고 있었다. 버릴 수도 품을 수도 없는 애정이 애증이 되어 가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채로 지켜보며, 이대로 상처에 고인 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 그때 가영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손이 있었다. 처음엔 악마 Z, 다음엔 종현이다. 그 두드림에 응답할 때마다, 가영의 마음속에 고여서 맴돌던 슬픔이 조금씩 바깥으로 흘러 나가기 시작한다. · 제자리뛰기로 멀리 닿기 “체념은 얼마간의 자유가 되었다. 어차피 난 사랑받지 못하니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껏 다정할 수 있었다.” (139쪽) 소설의 마지막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는 수상한 능력보다 더 수상한 친화력을 가진 인물 종현의 이야기다. 종현에게는 신기하지만 쓸모없는, 그러나 이 팬데믹 시절에 요긴하게 쓰인 능력이 하나 있다. 바로 ‘열 감지’ 능력. 말 그대로 사람의 체온을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건물 입구마다 놓인 열 감지기 옆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던 종현은 인간의 평균 체온보다 약간 높은, 그러나 마법으로 열 감지기를 속인 가영(사실은 악마 Z)을 찾아낸다. 사실 종현은 그 능력을 초등학교 5학년 때 악마에게 소원을 빌어 얻었다. 그저 친구를 얻고 싶어서. 아픈 친구를 양호실로 바래다주며 장난친 사소한 기억이 좋아서였다. 그러니까 어릴 때 종현은 ‘친구를 원해요.’라고 말하는 대신 ‘열 감지 능력을 갖고 싶어요.’ 하고 소원을 비는 어린이였고, 지금은 가영에게 ‘계속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공부할 방을 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어른이다. 조심스러움에 진심을 에둘러 말하다가 오해받고, 오해를 해명하다 지쳐 체념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 그런 종현에게 오랜만에 간절한 소원이 생겼다. 이 사람을 더 오래 자주 보고 싶다고. 콩콩 제자리뛰기 하는 심장 박동을 이 사람에게만큼은 온전히 전하고 싶다고. · ‘발문’에서 새삼스럽지만 김화진의 소설이 그동안 해 온 작업은 바로 그러한 소원들에 성실히 응답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남아 식은 마음을 매만지는 사람들을 아주 느리고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 내기. 그들에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볼 시간과 여유를 주기. 어쩌면 김화진은 마치 우리의 작은 악마처럼 숨죽인 채 페이지 위에서 들려오는 그러한 소원들에 귀 기울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안세진(문학평론가) |
|
생기가 살아난 인물들을 보는 건 기분이 산뜻해지는 일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뒤를 쫓다가 새삼 생각했다. 삶은 타인을 마주하는 데서 시작한다. 김화진은 짐짓 짓궂은 척 이 단순한 진실을 우리에게 건네준다. - 이희주 (소설가)
|
AI가 리뷰를 요약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