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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수많은 판본을 뒤척이며
어떤 소설은 나를 떠오르게 만든다. 김화진의 문장이 그렇다. 이번 신작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는 서툴렀던 우리를 불러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되묻는다. 마침내 알맞은 온도를 찾아가게 도와줄 단편들을 만나보시길.
2026.07.07.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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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발자국
훔치는 사람 다른 사람 거짓말은 하얗게 온도 맞추기 시간과 자리 딱따구리가 우는 숲 해설│둘 아닌 셋, 셋 아닌 하나 · 소유정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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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은 아픈 것, 슬픈 것은 슬픈 것,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다. 아프고 슬퍼도 살기 좋은 나날이 있다. 그렇게.
--- p.37 이요는 훔치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뛰어나게 잘 훔치는 사람. --- p.45 나를 다치게 하는 건 나다. 나에게 가장 날카로운 것도 언제나 나 자신. --- p.123 하루 동안 뱉은 거짓말은 퇴근 무렵 잘 말라 있다. 바닷물이 말라붙었을 때처럼 흰 소금 같은 가루를 남기고. 정말로 소금과 비슷한 성질인지 손으로 찍어 혀에 대보면 아주 은은하게 짭짤한 맛이 났다. 거짓말은 바닷물 같은 건가 봐. 불순하고 하얀 것. 물처럼 섞인 다른 마음을 증발시키면 남는 것은 소금처럼 하얀 거짓말. --- p.139 이것이 내가 모르는 온도일까. 세상과 타인의 온도. 내 마음 바깥의 서로 다른 모든 온도.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잘 맞춰봐야지. 지금 외면하더라도 어느 순간 이 이상한 기분과 마음이 죽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솟아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그리운 건 아닌데, 편지에 적힌 어떤 영혼 같은 게, 사무실을 같이 쓰던 공기 같은 게 그리워질 날이 있을 것이고 상이는 그때 편지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것이다, 다짐했다. --- p.209 이 그리움의 상태가 좋았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리워만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슬프면서도 좋았다. 마음은 하나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 p.255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 것만 같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랑하기에 손색이 없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 p.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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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오는 한 시기를 가졌다는 것에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흔히 우정을 한층 더 성숙하고 진지한 형태의 사랑이라 예찬하곤 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모습이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우정 역시 마땅한 방도가 없고 개인의 노력보단 주어진 상황이나 운에 자신을 내맡겨야 하는 순간이 있다.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만난 친구의 특별함을 동경하며 그 뒤를 부지런히 따르지만 결국 서서히 멀어지거나(「낯선 발자국」)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의 글쓰기 모임에서 “한때 나에게 가장 자주 부끄러움을 안겼던”(p. 88) 십대 시절의 친구와 닮은 이를 만나는(「다른 사람」) 등 과거의 우정은 관계가 깨진 이후에도 조각으로 남아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친구의 시간과 마음을 독점하지 못해서, 또래보다 뒤처지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서 이렇듯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 불화하는 이들에게 우정은 성숙보단 미성숙, 안정보단 불안을 야기하며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남이 쓰던 연필을 훔치거나 일터인 작은 영화관에서 팝콘을 챙기는 것만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해왔던 이요 역시 우정에서의 ‘믿음’을 도둑맞은 이후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된(「낯선 발자국」) 인물이다. 스스로를 “훔치는 사람”(p. 45)이라 말하는 그녀에게 남자친구 우영은 이요가 훔친 것들을 가만히 들어주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가 함께 노을을 훔치기도 하는 등 그가 혼자 힘으로 “뿌리가 나는 사람”(p. 80)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나간 시간과 사람으로부터 졸업하지 못한 채 부유하던 인물들은 낯선 이가 내민 손을 맞잡은 이후 조금씩 달라진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오는 한 시기”가 나중에는 반드시 “이상한 자부심”(p. 36)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김화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텅 빈 마음 가진 채로” 낯선 곳으로 가는 용기를 얻는다. “이것이 내가 모르는 온도일까. 세상과 타인의 온도. 내 마음 바깥의 서로 다른 모든 온도” “내 마음 바깥의 서로 다른 모든 온도”(p. 209)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각박한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바닷가 마을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거나(「시간과 자리」) 10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른 척해왔던 마음과 마주하는(「온도 맞추기」) 인물들은 타인과 함께일 때 감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불안을 차근차근 들여다본다. 사람과 장소를 핑계 삼아 더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반면, 끝까지 자신의 진심을 모른 체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전세 사기와 남자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좌절하기도 하고(「거짓말은 하얗게」) 애인의 친한 친구를 향한 마음을 부정하기도 하며(「딱따구리가 우는 숲」) 눈앞에 닥친 상황을 어떻게든 외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이를 향한 원망과 애정이 아닌 “내 마음”이었음을 선선히 인정하게 된다. 그 마음은 “애써 까맣게 칠해놓고 중요한 순간에는 하얗게 지워야 하는”(p. 158) 것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p. 300)다. 자신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에게 대답하지 않고 “잡은 손이 아닌 다른 한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어보”(p. 301)는 여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음을, 그 마음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애인도, 애인의 친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김화진의 소설은 다른 이에 대한 마음을 내보이기에 열심인 듯하면서도, 가장 끝에서는 ‘나’로 연결되는 알맞은 마음 하나를 향한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발화의 방식으로 가시화해야만 확인되었다면, ‘내 마음’이라 부르는 것은 뱉어내지 않아도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을 매개로 혹은 경유하여, 마침내 ‘나’에게로 이어지는 부단한 여정이 이 책 안에 있다. ─소유정 해설, 「둘 아닌 셋, 셋 아닌 하나」에서 ■ 작가의 말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니······ 사는 내내 시시콜콜하게 괴로워하면서도 결국에는 사는 거 좋지 않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가 왜 그럴까? 쾌도 불쾌도 시원스럽게 느끼지 않는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또 사는 건 좋을까, 스스로에게 그런 걸 되묻게 됩니다. 하지만 단번에 답이 나올 리는 없고······ 일곱 편 묶였으니 한 일곱 편 더 묶으면 조금은 대답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만 해봅니다. 대부분 어딘가를 누군가를 떠나온 인물들이 모인 터라 저도 아직 소설의 인물들에게 다가가기가 좀 어렵습니다. 익숙했던 자리를 이제 막 떠나왔으니 마음이 싱숭생숭할 것 같고 그런 사람들에게 괜히 말 걸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처럼 저 자신이기도 하겠죠. 그러니까 앞선 말은 제가 저에게 말 거는 일도 쉽지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가면 갈수록 스스로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낯설고 데면데면합니다. 이전에 알고 있던 나와 또 조금 다른 표정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알던 걘 누구였지? 다 내 착각이었나?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두번째 소설집에 실린 소설을 마주할 때에도 역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혹은 이번 소설집에 실릴 이야기들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의 제가 하필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전까지의 나를 파악하는 데에도 그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달라진 나를 이제 또 알아보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까······ 막막하고 허무해서 소설집을 묶는 동안 선배 소설가를 만나 투덜거린 적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는 거 너무 허무하고 지겨워요, 기껏 알게 되면 뭐 해요 시기나 상황에 따라 금세 변해버리는데······ 하고요. 내가 누구인지 정리를 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살면서 ‘나 같은 것’의 예시나 근거를 열심히 수집하고 탐색해서 이런저런 정의 내림으로 모종의 정리를 해놓으면 어느 날 문득 상황이 바뀌고 자리가 달라지고 그러면 나름대로 정리되었다고 믿은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어느새 삐죽 튀어나와 있는, 예외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럴 때면 왜 그렇게 열이 받는지. 아마 그 푸념도 열받아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었을 겁니다. 아 계속 달라질 거면 왜 알아봐야 돼요? 같은 억지를 전부 들어준 큰 그릇의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본이 여러 개인 거죠.” 그 말을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만 알고 있었으면 억울해할 일도 아니었는데 하는 부끄러움이 함께라 더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요. 제가 오래 기억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수치심과 끈적하게 얽혀 있는데요. 선배로부터 그 말을 들은 그 장면은 기분 좋은 부끄러움 쪽이라 더 희소합니다. 그런 적은 살면서 거의 없었던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이전의 것들이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더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진 나,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나, 현재와는 동떨어진 나. 그런데 우습죠? 첫번째 소설집의 ‘작가의 말’에서 저는 분명히 이게 이때의 나고 시간이 흘러 이 마음을 취소하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적어놓은 것 같은데요. 말하자면 꼴값이었던 걸까요······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모르는데 멋진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때는 알았는데 이후에 살면서 그런 마음을 싹 까먹게 된 건지. 둘 중 어느 것인지 몰라도 이렇게 다시 배운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까먹으면 어때? 다시 배운다! 그렇게 저를 한번 봐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우왕좌왕 저를 기록하는 것은, 두 번은 까먹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자꾸만 달라지는 내가 원망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잘해보자, 사실 스스로를 알아보는 거 (끔찍하지만) 재밌잖아, 하고 인정하려고요. 저는 저밖에 모르고, 혼자 있으면 영원히 그것밖에 모를 것 같고, 그런 제가 끔찍해서 외부의 누군가가 저를 좀 흔들고 밀어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주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