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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추천의 말 |
李柱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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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혜는 로라에게 머리 위 좁은 밤하늘을 보여 주었다. 정확히는 그 검은 공간을 부지런히 가로지르는 밝은 별 세 개를. 로라가 어머 귀엽다! 감탄하며 휴대폰으로 밤하늘을 찍었다. 폰 화면에 비치는 작은 점 세 개는 로라의 말처럼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 p.19 “지철은 송기주의 애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세 번째로 고백했다. 생의 안전망을 잃은 송기주는 지철의 고백에 항복했다. 그렇다. 수락이 아니라 항복이었다. 지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로 마음먹어서 그 고백에 무너졌다. 그날 송기주는 할머니의 몸이 화장장에 들어가는 걸 봤을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고 지철은 송기주의 눈물을 애정의 척도로 기꺼이 착각했다. 그날 이후 송기주는 지철을 사랑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다. 사랑은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고, 노력으로 생산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이 자연스레 생겨나는 거라면 송기주의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 p.29 “송기주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송기주는 그저 불안하고 불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 p.36 “태지혜에게 미래가 사라졌다. 태지혜는 과거도 미래도 버리기로 했다. 오직 현재만 보기로 했다. 그런데 태지혜의 현재엔 커다란 구멍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태지혜의 현재에 우주가 들어왔다. 우주가 건넨 산모 수첩이 있었다. 태지혜는 당분간 우주를 돌보고 우주를 기록해야 했다. 그것이 태지혜의 현재였다.” --- p.131 “반지영은 사랑은커녕 관심의 대상이 되어 본 적도 없었다. 터울이 제법 지는 언니들은 반지영에게 무심했고 엄마는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에게 관심을 준다는 게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반지영은 스스로 생존법을 터득했다. 되도록 남의 눈에 띄지 않을 것. 거슬리지 않을 것. 엄마에게 부려진 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어서, 엄마의 불행한 표정을 조금이라도 덜 보고 싶어서 반지영은 모범생이 되었다. 그렇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엄마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엄마의 실망을 무릅쓰고 교사직을 그만둔 후에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엄마의 간병을 자처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버지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반지영을 이야기 속에 가두길 좋아했다. 셋째딸이면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더라. 막내딸이면 사랑 듬뿍 받고 자랐겠네. 현대판 효녀 심청이 여기 있었군. 넌 바리데기나 코델리아의 현신이야. 칭찬의 말들이 반지영을 옭아맸다. 반지영에겐 쇠창살과 다름없는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야기보다 진짜 집이 필요했다.” --- p.160 “자신을 옭아매는 온갖 이야기의 창살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이야기를 박멸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곧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아이들의 생명과 미래 따위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이고 냉혈한인 비혼 중년여성의 이야기를. 늙은 아버지를 고려장 시킨 피도 눈물도 없는 패륜아의 이야기를. 또 다른 이야기가 반지영을 가둘 것이다. 더욱 단단해진 창살로 옭아맬 것이다.” --- p.163 “자, 이제 다 같이 밖으로 나가 망원경으로 이 세 별을 볼 차례예요. 관측을 다 하고 나면 맨눈으로 세 별을 찾아 상상의 선을 이어 보세요. 그러면 저마다 커다란 여름철 대삼각형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아까 선생님이 들려준 신화를 떠올려도 되고 또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아도 좋아요. 별자리는 한 가지로 정해진 게 아니라 옛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반복해서 별을 보며 찾아내고 이어보고 덧붙여온 이야기잖아요? 여러분도 오늘 새로운 별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재미난 이야기가 떠오르면 선생님한테도 살짝 알려주세요. 자, 이제 천천히 줄을 서서 운동장으로 나가볼까요?” --- p.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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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편안함으로 잠재우는 힘
이주혜 장편소설 『여름철 대삼각형』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주혜는 여성의 삶을 테마로 연대와 관계, 고통과 이해의 문제를 깊고 섬세하게 그리며 평단과 독자 양쪽의 신뢰와 기대 속에서 급성장한 작가다. 2020년 출간된 첫 소설 『자두』는 그해 가장 돋보이는 데뷔작이었다. 말기 암 환자인 시아버지를 돌보는 며느리와 간병인을 중심으로 죽음과 돌봄 앞에 선 인간들의 간극을 통찰하는 가운데, 함께 배치된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 같은 실존 시인들의 상실과 연대의 경험은 소설을 한층 다면적이고 우아한 서사로 도약시켰다. 잔잔한 바람이 공기를 가르지 않고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처럼 이주혜의 소설은 유독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지진과 해일을 일으켜 불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여름철 대삼각형』은 인간 내면의 불안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종국엔 회복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이주혜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잃지 않음으로써 완만한 슬픔의 미학을 선취(先取)한다. 멀리서 보면 전부 다른 사연들 세 사람의 사연에는 저마다의 그늘이 있다. 태지혜는 두 번째 유산의 고통이 몸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이전의 삶과 작별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꾸리던 중, 미성년자인 시조카가 찾아와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더욱이 1년만 같이 살며 자기를 지켜봐 달라라는 부탁은 한층 더 당황스럽다. 아이도 남편도 없을뿐더러 그 없음이 아직 상처로 남은 태지혜에게 임신한 시조카와의 동거라니. 한편 남편과 딸이 있는 송기주는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대학생이 된 딸과의 관계가 늘 복병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 속에서 갖게 된 결핍과 불안을 딸에게 투영하는 데에서 오는 묵은 갈등이 반복되는 것인데, 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킬 때마다 송기주의 마음은 정처 없이 방황한다. 반지영은 아버지와 같이 사는 비혼주의자다. 한때 영어 교사였고 지금은 학원강사로 일하며 아버지의 임대아파트에서 사실상 얹혀사는 중이다. 부모와의 관계나 사회와의 불화들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이젠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살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파트 쓰레기장 설치 문제나 간병 문제, 울컥 역류하는 과거의 장면들과 함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자꾸 고개를 쳐든다. 가까이에서 보면 조금씩 닮은 고민 각자 다른 인생을 살며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는 세 사람이지만 공통점도 있다. 관계 맺기의 불안함과 삶의 불완전성 앞에서 캄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외롭게 낙담하고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세 사람의 고통은 차라리 비슷해 보인다. 사랑에 빠졌을 때 그토록 단단해 보였던 약속의 말들이 마른 나뭇잎보다 더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걸 알아 버린 태지혜, 딸이 자기가 원하던 모습의 아이가 아닌 것처럼 자신도 자신이 원하던 모습의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억눌려 사는 송기주, 죄책감에 엄마를 간병했고 지금은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의 아파트에 들어와 살며 가족이라는 상처로부터 분가하지 못한 반지영. 그들은 가족, 결혼, 부모, 사랑, 우정, 회복, 독립 등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의 세부 항목 속에서 그들을 옭아매는 이야기의 쇠창살에 고립되어 있다. 밤하늘의 별이 무성하다 한들 고정된 별자리 이야기에 갇혀 있으니 별빛에서 방향을 읽을 수 없다. 그들은 왜 책방에서 만났을까? 세 사람의 만남이 서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은밀하고 신비로운 사건이다. 서점은 우연한 만남과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나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그러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활감 넘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서점에서 우리는 예기치 않은 책을 만나고 책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 말하는 입보다는 듣는 귀와 넘기는 손이 더 바쁜 곳. 우리는 책 속에서 만나는 타인의 삶을 읽고 듣고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서점에선 언제나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린다. 한껏 엘피(LP)스러운 공간인 서점은 지식과 정보로서의 책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물의 감각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책을 만지면서 위로받고 회복되듯 인생의 반환점에 접어든 이들은 서로의 삶을 듣고 만지며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의 기운을 감각한다. 그들이 다시 그리는 대삼각형 우리는 자기 앞의 생을 그저 주어진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희망을 얻는다. 나의 고통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편안함이 펼쳐진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그 아래 편안함이라는 선율이 깔리면 삶은 더 풍요로운 악보가 된다. 여름날의 즉흥 여행에서 그들이 바라본 밤하늘의 별이 감동적인 건, 이렇게나 다른 그들이 지금 같은 곳을 바라보며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불안과 상처로 말미암아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여름철 대삼각형』은 떠남과 만남에 관한 소설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떠남과 만남이 반복되는 여정에서 만들어지는 기적이다. 자신을 떠나 또 다른 자신과 조우하게 된 세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장소가 책방이라는 사실은 새삼 의미심장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을 때 진정으로 구원받는다. 그러고 보면 세상도 하나의 책방인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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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의 소설은 노멀 피플들의 불완전한 이야기들을 이어 붙여 그들만의 별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의 퀼트다. 제각각 서로 다른 디테일과 뉘앙스, 무드를 가진 고유한 이야기들은 여름철 밤하늘을 풍성하게 만드는 별자리들의 이야기와 만나면서 그들만의 이야기 성좌를 만든다. 그렇게 ‘여름철 대삼각형’은 견우와 직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그리고 제우스와 에로스와 헤라클레스 등의 신화적 이야기를 넘어 우리들의 이야기 놀이터가 된다. 그리하여 멀리서 빛나던 작은 이야기들은 이제 12.3 계엄이라는 위기에 맞서면서 우리 모두의 겨울철 대삼각형이라는 지상의 별자리로 진화한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뻗어 가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라인은 시적인 여름밤을 지나 산문적인 현실 속으로 모여들면서 이야기 빅뱅을 터뜨린다. 우리는 그것을 빛의 혁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심진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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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처럼 박힌 이야기의 늙은 별들. 원형과 신화 사이를 오가며 같은 별자리를 반복하는 것이 지긋지긋할 때 이 책을 읽었다. 핏줄이니, 운명이니, 고정된 별자리가 아닌 내 이야기가 담긴 낯선 별자리를 그려 보고 싶은 독자와 함께 읽고 싶다. 새로운 이야기는 새 별의 탄생이 아니라 별과 별 사이의 깜깜한 공백을 지워나갈 때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는 여름철 대삼각형을 바라볼 때 낡은 설화 대신 소설의 인물들을 떠올릴 것이다. 많은 이야기가 매력적인 서술자 이주혜에 의해 다시 말해지길 바란다. - 정용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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