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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61 3부 331 작가의 말 377 추천의 글_이유리(소설가) 380 추천의 글_전청림(문학평론가) 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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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학교를 설립한 이의 정체는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어딘가 베일에 싸인 학교는 많은 이들에게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된 지 오래였다. 입학생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왔다. ‘우리나라’의 전국구를 오랜 시간 인내심 있게 내달린 셔틀버스는 이제는 유통업자나 물류업자 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를 또 한 번 인내심 있게 질주했다.
--- p.13 “여러분, 반갑습니다.” 키오스크가 입을 열었다. 아니, 키오스크는 입술 없이 말했다. “입학을 환영합니다.” 키오스크는 어마어마한 성량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온 사방에 설치되어 있는 체육관 스피커를 통해 두 배, 세 배로 확장되었다. 100명의 신입생들은 동경과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키오스크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단상 위의 교장 키오스크를. --- p.19 모라의 꿈을 반대하는 베타 선생님의 뜻은 전적으로 따뜻한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모라 역시 시설에 남은 베타 선생님의 삶과 키오스크 학교에 흘러 들어온 아이들의 삶이 정확히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어느 쪽이 더 불행하고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모라는 이 세상에 명쾌한 해답이 있다고 믿고 싶었고, 그 해답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 pp.29-30 초희는 머나먼 과거에 심장이 낭만과 열정을 상징하던 때가 있었다고, 적어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발생된 심장이 인간들 생의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점점 음모론자들처럼 변질되어 가던 심장 원인론자들은 아래 항목들이 모두 그 심장에서(우리의 이 심장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세상에 퍼뜨렸다. 1. 신체를 혹사시키는 과도한 열정 2. 통제 불가능한 분노 3. 채 하룻밤도 견디지 못하게 하는 끔찍한 죄책감과 수치심 4. 비이성적인 비관들 5.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슬픈 의지 --- pp.32-33 베타 선생님 밑에서, 거부할 수 없는 진실된 다정함 속에 파묻혀 생활하던 어느 날 모라는 초희에게 말했다. “나는 무미건조한 사람이 될 거야.” 그 어떤 일에도 슬퍼하지 않고. 그 어떤 일에도 분노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사람. 매 순간 완벽하게 안정된 사람. 그리하여 모라는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키오스크가 되고 싶었다. 그 어떠한 사사로운 일에도 연연하지 않는 심장을 가진 키오스크. --- p.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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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의 가르침
우정과 사랑, 연민과 분노, 기쁨과 슬픔. ‘키오스크 학교’가 존재하는 시대, 사람을 단숨에 울게도 웃게도 하는 심장의 일은 구세대의 잔재로 취급받은 지 오래다. 일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라면 심장의 역할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사실이자 진실처럼 취급받는 때, 아이들은 효율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키오스크 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한다. 키오스크 학교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기조는 단순하다. 부디 쓸모있는 존재가 될 것. 학교는 현대 사회에 적응이 어려울 확률이 높은 지원자를 입학시키기 위함이라며 아이들에게 입학 지원서에 자신의 불행과 우울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 갈 곳이 없는 아이, 무더위를 견디지 못한 아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키오스크 학교에 모였다. 학교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고글을 쓴 채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을, 교장 키오스크가 맞이한다. “입학을 환영합니다.” 연단에서 교장 키오스크의 목소리가 어마어마한 성량으로 들려온다. 기이한 직업 훈련 키오스크 학교의 아이들은 배정받은 반에서 직업 훈련을 받는다. 이때 훈련이란 꿈이나 장래희망과는 관련이 없다. 학교에서 학생이 제출한 입학 원서를 바탕으로 해당 직업에 자질이 있다고 판단한 결과에 따라 직업 배정이 이루어진다. 키오스크 학교가 숱한 괴소문을 몰고 다니듯, 직업 훈련에도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보건실에서 약을 분류하는 일의 무료함, 강당에 집합하여 엎드리기?기어다니기?일어나기를 명령받고 행하는 일의 모욕감, 인간과 꼭 닮은 모습의 미니 로봇을 무작정 해치면 그만이라는 일의 무자비함. 아이들은 기이한 직업 훈련으로부터 배우는 게 있으리라고 믿고 싶어 하다가, 이 일을 통해 배우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분노하다가, 이내 학교의 의도는 그저 굴종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입학만 하면 환한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굴던 학교가 정작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굴종일 때, 갈 곳 없던 아이들은 다시 한번 목적지를 잃어버린다. 그 허망한 눈빛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왜일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 키오스크 학교에는 어디에나 감시의 눈이 도사리고 있다. 학교 부지를 빈틈없이 감싼 철조망, 양쪽으로 숲과 절벽을 면한 고립된 위치, 학교 안 어디에나 존재하는 감시인의 차가운 은빛 피부는 학교의 가르침이나 명령에 불복종하는 즉시 엄청난 불이익이 따르리라는 공포를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숨 막히는 환경이 주는 공포심을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벌어져도 학교는 학생의 흔적을 없애는 일에 열중할 뿐이다. 질문은 용납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아이들은 점점 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아이들에게 드리워진 것은 사랑과 보호의 시선이 아닌 감시와 처벌의 시선이 전부이지만, 이때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 감시자의 눈을 피해 우정과 사랑이 어린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며 서로의 안위를 살핀다. 입학 전 함께 숲속 벙커 생활을 하며 언제나 함께할 것을 다짐했던 모라와 초희, 병원에서 처음 만나 푹푹 찌는 집에서 더위를 견디다 못해 함께 학교에 입학한 원혜와 주디. 이 소녀들이 보여 주는 우정은 다름 아닌 심장이 하는 일이다. 『키오스크 학교』는 그 슬프고도 자명한 진실을 소녀들의 모험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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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 필사적인 모험과 투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단 하나, 내가 정한 상대방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있을 곳을 허락해 준 이, 마음을 내어준 이와 함께 ‘천진난만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그 소망을 위해 끊임없이 뺏고 훔치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세계와 대립하며 전혀 승산 없어 보이는 싸움을 해 나가는 두 소녀 모라와 초희. 나는 소설 속으로 손을 뻗어 그 애들을 그냥 거기서 끄집어내 주고 싶었다. - 이유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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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주목하는 건 심오한 뜻과 원대한 계획마저도 쉽게 박살 내고 마는 인간의 변덕스러움이다. 인물들이 악을 지르고 반항하기를, 뒤틀리고 바스러지기를, 그렇게 용기를 내기를 바라며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밧줄처럼 구불구불 떨어지는 수많은 나뭇가지 아래에 누워 무지개색으로 몸을 빛내는 작은 기계를 한참이나 생각했다. 모두가 모두에게 불량품일 뿐인 세계, 그 찬란함과 강인함을 보여 주는 경이의 증거에 대해서 말이다. - 전청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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