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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축제의 친구들 _ 7
남유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_ 43 박연준 월드 발레 데이 _ 71 서고운 위드걸스 _ 107 송섬 껍질? _ 135 윤성희 바다의 기분 _ 177 위수정 비트와 모모 _ 205 이희주 0302♡ _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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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눈을 비비며 나오면 같은 상영관에서 우르르 몰려 나온 무리 중 누군가가 갈래? 갈래? 하는 축제의 밤이 있다. 그 무리가 내 무리가 아니더라도 은근슬쩍 섞여서 따라갈 수 있다.
--- p.10 「김화진, 축제의 친구들」 중에서 설탕을 넣은 커피를 다 마신 후 이모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주었다. 아기 천사들이 그려진 카드였다. 천사들이 이모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이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른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이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가 써놓은 글귀를 읽었다. 더 의미 있는 말을 쓰고 싶었지만 그는 늘 언어가 부족했다. --- p.60 「남유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중에서 우리는 5년 동안 무용수로 일했던 곳, 우리가 떠나온 발레단으로 가기로 했다. 귀신에게는 이동이 쉽다. 바라보면, 도착해 있다. 바라면, 그곳이다. 마침 오늘은 월드 발레 데이다. --- p.103 「박연준, 월드 발레 데이」 중에서 “저는요, 그날 이후로 한국 달력은 쓰지도 보지도 않아요. 저한테 그날은 광복절도 아니고 빨간날도 아니고 그냥…… 그날이에요.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사라진 날. 나도 그렇게 될 뻔한 날. 가을이 미래를 내 것이랑 바꾼 날.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날.” --- pp.118-119 「서고운, 위드걸스」 중에서 달이 바뀔 때마다 7행 5열의 빈 상자를 하나씩 짚어본다. 그것은 꼭 깨끗한 포장지에 싸인 소포처럼 보인다. 무엇이 들어 있을지는 열어봐야 알 수 있다. --- p.175 「송섬, 껍질?」 중에서 복권 가게에 갔더니 가게 주인이 창문을 닦고 있었다. 나는 로또 종이를 꺼내 내 생일과 엄마의 생일을 선택했다. 마지막 숫자 두 개를 고민하다 오늘 날짜를 찍었다. 입사한 지 6년 만에 무단결근을 한 날이니까. 아직까지 회사에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복권에 당첨이 되면 사표를 쓰리라. 로또 종이와 오천 원을 가게 주인에게 건네주며 나는 생각했다. --- pp.182-183 「윤성희, 바다의 기분」 중에서 영원히 그렇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끝난다. 틀어놓은 물은 잠가야 한다. 새로 지은 집도 언젠가는 허물어진다. 나는 방금 태어난 것 같은데 이렇게 늙었다. 우리가 만난 게 언제였더라. 처음 만난 날 당신은 어떤 표정이었지. 나는 그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같은데 이미 모두 끝나버렸네. --- p.226 「위수정, 비트와 모모」 중에서 한나절도 지나기 전 희주와 유리는 다른 사람들에겐 유리가 항상 지금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리가 전학 온 3월 2일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3월 2일은 다른 반 여자애들과 선배들까지 복도 창가에 붙어 유리를 보고 간 날로 바뀌어 있었다. --- p.242 「이희주, 0302♡」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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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영영 꺼지지 않을
촛불을 켜둘 이야기 기념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날짜를 정하는 일이다. 중요한 날 하루를 골라 이름을 붙여야만 의미 있는 날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희주의 〈0302♡〉에서는 ‘유리’가 전학 온 3월 2일을 기념일로 삼았다. 도시 전설 속 ‘사거리의 미소년’이 되어버린 그의 비밀을 해체하며 달콤하고 끈적한 결말까지 나아가는 내내 기분 좋은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남유하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에서는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안드로이드 보디를 얻게 된 ‘신인류’가 나타나면서 ‘구인류’가 되어버린 자의 아이러니한 성탄절을 살펴본다. 고독사는 옛말인 사회지만 인물들은 여전히 해소할 수 없는 고독함에 허덕인다. 박연준의 〈월드 발레 데이〉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월드 발레 데이에 죽은 무용수가 주인공이다. 영원히 무대에 서고 싶었던 무용수의 일생이 아름답게 수놓인다. 이처럼 특정한 날짜가 녹아든 소설 세 편은 독자들에게도 특별한 날로 각인될 것이다. 기념일이 무조건 기쁨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슬픔은 잊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위수정의 〈비트와 모모〉 속 기념일은 특정한 날로 정의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남과 이별 중 어떤 날을 마음에 간직할 것인지는 이야기를 읽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기념일을 ‘기억하는 날’로 해석한 서고운의 〈위드걸스〉에서는 잊지 않으려 움직이는 이들이 그려진다. 모순됨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층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묵묵히 응원하게 된다. 김화진의 〈축제의 친구들〉은 소설을 쓰는 ‘내’가 무주 영화제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의 작업실을 함께 쓰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작업실에서 피어나는 따뜻함과 든든함, 그리고 배신감이 뒤섞이며 언젠가 끝날 축제의 밤은 ‘나’를 또 다른 목적지로 데려다 놓는다. 윤성희의 〈바다의 기분〉은 서로를 부단히 아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단결근을 한 ‘나’와 일주일 내내 학교를 결석한 ‘영지’의 모습은 삼촌과 어렸던 ‘나’의 관계로 이어진다. 다른 누구도 아닌 둘만의 관계에서만 말할 수 있는 비밀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지속된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비일상의 날은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송섬의 〈껍질?〉에서는 역설적으로 365일 중 사라진 하루를 조명한다. 이유도 모른 채 달력 위에 생겨버린 네모난 공백. 세상에 없는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 그날의 궤적을 좇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신만의 기념일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자정이 되면 3월 2일이 된다. 앞으로도 작년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그때 그 순간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른다. 시간의 굴곡을 손으로 만지며 돌출된 부분을 감각하는 일. 기념일을 떠올리고 지정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일에서부터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피어나는 각자의 소망을 달력 곳곳에 새겨놓는다면 그 삶 역시 한결 선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겹겹이 쌓이는 시간이 매일의 가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여덟 편의 소설에서 호명된 날들은 어느 하나 겹치지 않는다.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일, 여기 놓인 이야기들을 펼치는 날도 독자들에게 기념할 만한 근사한 하루로 남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