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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기담
남유하
소중한책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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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품은만두
고강선사유적박물관
시어머니와의 티타임
기억의 커피
자판기와 철용 씨
내가 죽기 전날
사유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2018년 「푸른 머리카락」으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다이웰 주식회사』,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창작 동화집 『나무가 된 아이』, 소설 『봄의 목소리』, 『가시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 등이 있다. 『다이웰 주식회사』에 수록된 단편 「국립존엄보장센터」는 2019년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 10월호에 번역,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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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08g | 122*188*16mm
ISBN13
9791199326200

책 속으로

죽이고 싶다. 그 순간 제 머리에 든 생각입니다. 벼락에 맞은 느낌이 이럴까요? 뭔가 번쩍하면서 회백질에 저 다섯 글자가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글자들은 기생충처럼 구불거리며 변형되더니, 어느새 ‘죽여야 한다’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죽이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고양이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결국 죽게 되겠지요. 고통스러운 시간을 연장하는 것뿐입니다. 혹시나 해서 학생들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 애들도 귀엽다고만 할 뿐 현실은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자든가, 내가 돌봐줘야겠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 p.9 「살」 중에서

눈을 감아버리고 싶으면서도, 계속 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신음을 삼키며 ‘쇼’를 지켜봤다. 주방장이 실밥을 뽑아낸 소녀의 상처를 집게로 조심스레 벌렸다. 시뻘겋게 벌어진 겨드랑이 안쪽에 매끈하고 하얀 물체가 보였다. 만두였다. 주방장이 상처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아기 주먹만 한 크기의 만두를 꺼냈다. 그리고 피고름이 묻어있는 만두를 냄비에 담가 국자로 휘저은 다음 건져냈다.

“손님, 직접 보니 어떠십니까? 화영루의 자오쯔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제가 개발한 이 만두의 이름은 사실 자오쯔가 아닙니다. 사람의 살 속에 품은 채 서서히 숙성시킨다고 해서 ‘품은만두’라고 부른답니다.”
--- p.64 「품은만두」 중에서

“…돌아가야 해.”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깜빡 졸았나 보다. 이번에야말로 꿈을 꾼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일까. 왜 남편도 A도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을까. 완전히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강선사유적박물관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사진 찍는 것도 잊은 채 그 안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토기가 있는 전시관과 창이 늘어선 원통형 공간과 동굴을 지나 움막이 있던 전시관으로 갔다. 움막 옆의 살구색 웅덩이가 더 커져있었다. 웅덩이에서는 악취가 났다. 정육점에서 나는 동물의 지방, 피, 살점의 냄새와 비슷했다.
--- pp.105-106 「고강선사유적박물관」 중에서

“어머니, 왜 이러세요?”
“속옷을 입지 말랬더니, 말을 안 들었구나.”
“네?”
“우리 아들이 먹고 싶은 게, 이깟 제사 음식이겠니?”
시어머니가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어요. 광대뼈가 살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웃음이었죠. 젠장, 이 여자는 미쳤어. 저는 옷을 벗기려 달려드는 시어머니를 뿌리치고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미쳤어, 미친 게 분명해.
머릿속이 윙윙거렸어요. 눈물은 나오지 않았죠. 아들이 죽은 뒤 우울해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미쳐버릴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어요.
--- pp.142-143 「시어머니와의 티타임」 중에서

기억이 더 필요하다. 나는 주의사항을 무시하고 캔 커피를 땄다. 잠시 망설이다가 단숨에 마셨다. 다음 순간 나는 구멍 앞에 서있었다. 정확히는 구멍 앞에 서있는 기억이 난 거였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내가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맨홀 구멍인가? 노란 장화를 신은 내 발이 보였다. 우비 위로 세찬 비가 쏟아졌다. 나는 맨홀 안을 내려다봤다. 맨홀 바닥에는 기이한 각도로 목이 틀어진, 또 하나의 나, 나의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 으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기억 밖으로 튕겨 나왔다. 닫혀 있던 기억의 문이 활짝 열렸다. 물론 열어서는 안 될 문이었다.
--- p.187 「기억의 커피」 중에서

철용 씨는 그를 제 자식처럼 돌봐주었다. 그는 자식보다는 연인이 되고 싶었다. 그는 철용 씨를 사랑하고 있었다. 자신을 누구보다 아껴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 내장과 피부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법을 아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철용 씨는 여덟시 반에 그를 찾아왔다. 철용 씨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고, 일자로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간간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는 걸까. 그의 몸속 보관 통을 어루만지는 철용 씨의 섬세한 손길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는 아무런 쾌감을 느낄 수 없었다. 철용 씨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묵묵히 그의 배꼽에 열쇠를 꽂아 돌렸다.
--- p.204 「자판기와 철용 씨」 중에서

나는 내가 죽기 전날로 가기로 했다. 나 같은 인간은 혼자 죽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게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 유전자를 후대에 남겨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혼자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혼자 죽고 싶지는 않았다. 내 마지막 순간에 내 곁에 있어줄 사람이 나라니, 제법 낭만적이지 않은가. 유산도 물려받으면 더 좋고.

나는 37년 후에 죽는다. 74세라니 요절이다. 원인은 인공심장에 대한 면역거부반응이라고 한다. 10년 전 수명예측센터에 갔을 때, 결과를 보며 당황하던 검사원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해지던 초기, 몇몇 사업이 반짝 성행했다. 수명예측도 그중 하나였다. 기존의 수명예측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뤄지므로 사고 등 외부 요인을 고려할 수 없었다. 시간여행 시대의 수명예측은 실질적인 사망선고나 다름없었고, 유행은 곧 사그라들었다.)
--- pp.222-223 「내가 죽기 전날」 중에서

덩어리의 표면에서 기포가 마구 솟아올랐다. 발진처럼 부풀어 오르던 기포들이 풉, 풉 소리를 내며 터졌다. 나를 비웃는 것처럼.
“권태다.”
“뭐요?”
“지루하단 말이다. 나는 지루하고, 너는 거기 있었다. 그것이 이유다.”
권태?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 댁에 갔던 지루한 오후, 마당에서 개미굴에 물을 부어 개미들이 버둥대는 모습을 보던 그런 감각인가?
“첫 번째 수수께끼다. 네 아내와 어머니가 물에 빠졌다. 너는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 누구를 구하겠는가.”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실제로 입안에 쓴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수수께끼가 아니다. 아내가 했던 질문이다.

--- pp.265-266 「사유지」 중에서

줄거리


나는 새끼 고양이를 죽였다. 그 후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주변 사람들이 왜애웅,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가 하면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는 목이 잘렸고 침대에는 죽은 고양이가 있었다.

품은만두
나는 동료 곽을 따라 화영루에 갔다. 그곳에는 기가 막힌 만두, 품은만두가 있었다. 그 만두가 소녀의 몸속에서 숙성된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군침이 돌고, 식욕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강선사유적박물관
나의 남편은 어느 날 실종되었다. 나는 남편이 실종된 지역인 부천에서 열리는 괴담 공모전 준비를 위해 고강 선사유적공원을 방문한다. 그곳에 자리한 고강선사유적박물관에서 실종된 남편을 닮은 밀랍 인형을 보게 되었다.

시어머니와의 티타임
어느 날 남편이 죽자, 나는 끔찍한 주술을 준비하는 시어머니와 맞서게 된다. 아들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불러온 시어머니의 광기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기억의 커피
나는 우연히 편의점에서 ‘기억의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자 머릿속에 번개처럼 기억이 파고들었다. 기억의 암흑 속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판기와 철용 씨
자신의 주인인 철용 씨를 사랑하는 자판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 날 철용 씨가 고등학생에게 칼에 찔려 죽고 만다. 그 뒤로 자판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복수를 꿈꾼다.

내가 죽기 전날
나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이 당첨되어 시간여행을 가게 되었다. 37년 후의 미래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만났다. 그리고 남자 간병인과의 하룻밤을 보낸 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유지
나는 6년 전 양재천 근처의 빌라로 이사 온 뒤 줄곧 그곳으로 지나다녔다. 어느 날 사유지에 갇히고 괴물을 만나고 만다. 괴물은 나에게 사유지를 다닌 대가로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사 리뷰

실화 필터로 보는 그들의 시간
“너도, 죽이고 싶지?”
극한의 개인주의 시대, 내 안의 괴물을 응시하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이 이야기들이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혔다. 실화라는 장치에 둘러싸인 서사는 이야기를 허구라는 틈으로 빠져나가게 하지 않고, 진실에 가둬버린다. 똑같은 참담한 사건이라도, 실화라 하면 더 큰 타격감을 주기 마련이다. 마치 사건의 현장에 소환하듯 독자들을 생생한 고통의 현장으로 이끈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볼 때, 허구라고 여기며 짐짓 마음을 추스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잔혹한 실화를 소설로 드러내며 인간의 근원과 시대의 고독을 탐구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우리 주변 어디서라도 볼 수 있는 인물과 사물 등으로 나타난다. 한없이 무해한 그들이지만, 비극은 쉼 없이 생성된다.

이 소설집을 여는 작품 「살」에서 주인공은 새끼 고양이를 죽인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죽인 적이 없는 정상적인 보통 사람에 속했다. 기껏해야 하루살이를 잡거나, 개미를 밟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를 본 순간 ‘살(殺)’을 참지 못하고 죽이고 만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살’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함께 그렸다. ‘살’을 참지 못하고 저질러버린 주인공의 행보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도, 나처럼 죽이고 싶지?” 하는 심기 불편한 질문을 말이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을 멈추지 못하는 주인공은 어쩌면 우리의,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의 티타임」에서도 ‘살’은 진행된다. 주인공은 결혼과 동시에 아들에 대한 비정상적인 애정을 보이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남편이 죽고 나자, 그녀와 시어머니는 살기 어린 긴장감에 휩싸인다. 「자판기와 철용 씨」에서는 사랑하는 철용 씨를 죽인 자를 향한 복수를 꿈꾸는 자판기가 등장한다. 나름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들의 ‘살’은 우연한 계기로 세상 밖을 비집고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드러난 ‘살’은 휘황찬란하게 움직이며 생명을 박살낸다. 이들의 ‘살’은 과연 비판받아 마땅한가? 어쩌면 나라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내 안에 숨은 ‘살’을 꿈틀거리게 한다.

「품은만두」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동료를 따라 가게 된 화영루에서 만두를 먹게 된다. 잊을 수 없는 그 맛있는 만두의 비결은 소녀의 몸속에서 숙성된 것에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걸 알고도 만두를 먹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은 식욕과 쾌락 등이 혼재된 욕망을 보여주며 ‘살’이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서사를 그려간다. 독자들로 하여금 일그러진 욕망에 대해 수긍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도 윤리에 대한 판단을 작동시키는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체험을 안겨준다.

작가는 개인의 일상에 주목한다. 등장인물들의 평온한 삶에 차분한 서사로 차곡차곡 균열을 내며 미궁을 제조한다. 미궁에 포획된 등장인물들의 삶은 어둠이 드리운다. 그런 그들에게는 구원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스한 온기를 나누며 상호작용할 대상 또한 마땅히 없다. 동거인이나 가족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혼자가 되며, 그들은 오로지 혼자 속으로 침잠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대가 덕목이 되지 못하는 극한의 개인주의 시대, 많은 사람이 혼자의 시간을 택하거나 이에 고립되고 있다. 남유하 작가는 홀로인, 혼자가 되어가는 등장인물들의 폭력과 욕망, 쾌락 등을 꺼내 보이며 우리 앞에 도래한 비극에 대한 윤리를 생각해보게 한다.

실화 필터로 보는 그들의 시간
고요한 개인의 시간에 스며든 균열과 공포

「고강선사유적박물관」에서 소설가 주인공은 ‘부천 괴담’ 공모전 준비를 위해 고강 선사유적공원에 가기로 한다. 하지만 부천에 가는 일이 선뜻 내키지는 않는다. 그녀의 남편은 10년 전 부천에서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오래전 첫 만남 데이트 때 “…돌아가야 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이 사라진 후 그녀와 함께 살게 된 A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또한 “…돌아가야 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침내 고강 선사유적공원에 가게 된 주인공은 고강선사유적박물관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남편을 닮은 밀랍 인형을 보게 된다.

고강선사유적박물관은 실체가 없다. 그곳은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장소이다. 홀로 그곳에 가게 된 주인공은 남편으로 추정되는 밀랍 인형을 발견하고 그게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믿어주는 사람도, 목격한 사람도 없다. 혼자만의 시간, 철저히 고립된 영역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비밀스러운 소멸과 회귀를 다룬 이 작품은 극도의 개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립을 떠올리게 한다.

미지의 공간은 한 개인의 기억에서도 발견된다. 「기억의 커피」에서 송유영은 기억의 커피를 마시고 어릴 적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쌍둥이 동생의 존재를 알게 된다. 까맣게 지워진 과거를 복구하며 동생이 소환되자 그녀의 일상은 뒤틀리고 만다. 핏빛으로 흥건한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된 그녀를 기다리는 건 동생과의 합일이자 잔혹한 파괴이다. 나에 대한 온전한 기억이 나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닌 끔찍한 공포로 이끌고 마는 것이다.

「내가 죽기 전날」에서는 시간여행으로 자신의 미래에 방문하는 한윤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기 전날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며 남자 간병인과 친밀한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예상할 수 없었던 자신의 미래를 목격한다. 이는 기묘하게도 그녀의 현재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녀는 현재와 미래가 뒤섞인 어떤 미지의 순간 속에서 자신이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제 앞으로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떠올리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당도할 미래, 새로 맞이할 고통의 스케치를 보는 듯하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혼자의 시간 속에서 미지의 영역을 발견해내며 실체가 없는 것들에 실체를 부여한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박물관에 방문하거나, 잊혀진 기억들의 조각, 미지의 순간 등에 관계한다. 미지의 영역은 그들과 케미스트리를 일으키며 새로운 무엇이 된다.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공포와 두려움을 보여주는 듯한 그 무엇들은, 개인주의 시대 안전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혼자의 시간을 위협한다. 결국 우리는, 혼자여도 편할 수 없다. 혼자의 시간은 더 이상 안온한 피난처가 아니다.

픽션이 된 실화, 실화가 된 픽션
사유지에서 보내온 마지막 이야기


이 소설집을 닫는 작품 「사유지」에서 주인공은 6년 전 양재천 근처의 빌라로 이사 온 뒤 건물 사이에 있는 사유지의 길로 다닌다. 어느 날 갑자기 셔터가 내려오고 길이 막혀 갇혀 버린다. 그는 사유지의 건물에 들어간다. 404호로 들어간 그는 회반죽 덩어리 같은 생물체를 만난다. 괴물은 그에게 사유지를 다닌 대가로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라고 한다. 괴물은 문제를 낸다. 아내와 어머니가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단 한 사람만 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그는 결국 아내와 어머니 둘 다 구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 둘은 죽는다. 그것은 그의 선택이었다고, 괴물은 말한다. 그리고 다음 수수께끼가 시작된다.

사유지에서 주인공은 괴물이 낸 수수께끼에 답하며 가족을 죽이게 된다. 괴물이 벌인 일인지, 그의 바람으로 이루어진 일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사유지에서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죽었다. 그는 이곳에 갇힌 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며 혼자가 되어간다.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 이야기를 실화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 이야기는 실화로 박제됨으로써 서사에 드러난 고통이 현실로 확대 재생산되는 효과 아닌 효과를 거두고 있다.

“나는 사유지에 있었다. 내가 「사유지」의 배경으로 썼던 바로 그곳. 당황할 시간은 없다. 셔터는 열려있다. 전속력으로 달려 사유지를 통과하려는데 셔터가 내려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유지에 갇혔다. 부디 이 책을 읽은 여러분이 나를 사유지에서 꺼내주길 간절히 바란다. 괴물이 내게 수수께끼를 내기 전에.”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소설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작가가 갇힌 사유지의 실체는 무엇일까? 작가는 사유지의 셔터가 열려있음을 알리며, 독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는 곳, 혼자가 되어가는 곳. 여러분의 방문은 고독한 이 시대의 새로운 실화를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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