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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기초
2부 색조 3부 보디 4부 클렌징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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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90년대 생에 관해 설명해놓은 책에서 보니까 우리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집단문화를 싫어하고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대.”
“개소리네.” “개소리지.” 워라밸 따위 개나 줘버리고 집단문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물질이 제일 중요하다.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나 보니 그렇다. 마치 우리를 외계인처럼 묘사해놓은 것은 본인들 편하자고 그러는 것 같다. 지구인들이 외계인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 아무렴 우리와 다르게 생기고말고. 스스로 안도하는 것처럼. --- p.119 해외 브랜드를 살펴보다 보면 브랜드 네임이 곧 창업자 이름인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가브리엘 샤넬의 이름을 딴 샤넬이 있고 이브 생 로랑이 있으며, 엘리자베스 아덴, 에스티 로더, 조 말론, 헬레나 루빈스타인, 바비 브라운, 버츠비, 조르지오 아르마니, 슈에무라 등등. 하지만 한국 화장품 브랜드 이름은 대부분 외국어 합성 단어들이다. 내가 다니는 페이스페이스 브랜드의 경우도 face + space의 합성어이다. ‘얼굴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시작되는 스토리텔링’을 의미한다. 그럴듯하다. 옥탑방에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하오와 소민의 옥탑방. 줄여서 하소옥. 설렁탕집 이름 같네. --- p.38 하오를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 산후조리원에서다. 하오와 나는 바로 옆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기억은 안 난다. 엄마의 구술 기록에 따르면 그렇다. 그 후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2년 후 극적으로 어린이집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또한 기억에 없다. 사진 자료에 의하면 그렇다. 한번은 대중목욕탕에서 만난 적도 있었다. 하오가 여탕에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남탕에 갔을 때다. 어쩌자고 아버진 딸을 남탕에 데려간 것인지 우리는 탕 속에서 눈이 딱 마주쳤고 어릴 때지만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후 나는 하오가 나를 남탕에서 봤다는 걸 소문이라도 내면 어떻게 하나 학창 시절 내내 걱정했지만 지금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는 의리 있는 녀석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랄친구가 되었다. --- p.104 발가락에 뭔가 걸려서 보니 오렌지 계열의 아이섀도다. 이름은 ‘오픈금지판도라’. 요즘 화장품 이름은 서정적이다 못해 관념적이다. 이름만 봐서는 좀처럼 무슨 색인지 종잡을 수 없다. ‘내마음속선인장’ ‘햇살비친낙엽’ ‘사랑은모래성’ ‘카페라테우유많이’ ‘불금브라운’ 뭐 이 정도야 그렇다 치고. ‘키싱미키싱구라미’ ‘불가사의한불가사리’ ‘고백을도와줘’ ‘그녀의과거’ ‘미지의세계’ ‘시럽빼고테이크아웃’ ‘휘핑빼고샷추가’ ‘브라이덜샤워’ ‘키작은돌하르방’ ‘하트브레이커해피더스트’ ‘수줍은손깍지’ ‘레이트체크아웃’ 등은 도대체 무슨 색이냔 말이다. 화장품업계 연구원들의 문학성에 깊은 경의를 표하려 하는데 갑자기 소리가 났다. 화장실이었다. 분명 부스럭 소리를 들었다. 이 집에 누군가 있다. --- p.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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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고용하는 1인 기업 청춘들이 사는, 소민과 하오의 옥탑방
줄여서 ‘하소옥’ 설렁탕집 이름 같긴 하지만 시종일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겨우 들어간 직장에서 단박에 해고되었는데도 웃음이 나고 줄줄이 친구들도 갑자기 백수가 되는데도 여전히 웃음이 터진다. 모두 작가 때문이다.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찌질한 상황에서도 유머가 넘친다. 그런 작가의 화법이 이 마이너리티 청춘 성장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제 고작 서른 살이 되었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고 대한민국 명동의 거리는 냉정하기만 하다. 화장품 매장만 백여 개가 들어선 코스메로드. 코스메틱과 로드를 합친 말이다. 내가 한국의 직장에 다니는 것인지 외국의 직장에 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족과 한족들은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까지 구사하는 엘리트들이다. 그런 인재들은 삼성에나 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명동에 있었다.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르는 주인공 소민은 인센티브도 늘 꼴찌다. 그런데 정직원을 넘어 점장까지 꿰찼다. 그건 다 친구 강하오 때문이다. 인스타 셀럽 드래그퀸 ‘버거’가 내 친구 강하오라니. 드래그퀸이란 예술이나 유희를 목적으로 여장을 하는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이런 횡재가 있나! 어렵사리 뷰티 동영상 하나만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니 하오가 고작 내세우는 조건은 페이스페이스 화장품을 직원가에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정말 쉬운 남자다. 소민은 통 크게 공짜로 제공해주기로 한다. 하오와 찍은 뷰티 동영상은 그야말로 떡상을 했다. 하지만 인생이 그리 순조로울 리가. 순식간에 터진 버거의 게이설 때문에 하오는 페이스페이스 본사 정식모델 계약이 어그러지고 소민도 아예 해고되었다. 설상가상 부모님의 고깃집 한편에 환전소를 차렸던 단짝친구 유화도 갈 곳이 없다. 그럼 어떡해?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되지, 뭐. 그렇게 시작된 뷰티 유튜브 크리에이터. 코스메로드에서 벌어지는 신나고 유쾌한 청춘들의 성장담 소설집 《어쩌다 가족》 출간 이후 석 달 만에 선보이는 《나를 구독해줘》는 김하율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이 출판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것에 이어 이번 《나를 구독해줘》는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아르코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이미 문학성과 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검증받은 《나를 구독해줘》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007로 출간되었다. 나는 그냥 인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라면이나 끓여 파는 인생을 살면 안 될까? 천국에 있으니 속세의 이야기가 와닿을 리 없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럼 게스트하우스에서 관광객들에게 라면을 끓여 팔자, 생각했다. 그렇게 대책 없이 인도에 남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백수인데 뭐. 이렇게 내 뜻을 밝히자 메일로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박사가 끓인 라면은 개도 안 먹는단다. 돌아오너라(저는 박사수료인데요). 그리고 당시 화장품 로드숍을 운영하고 있던 친오빠도 말했다. 점장이 나갔다. 와서 카운터를 보거라. 오빠는 감언이설로 오지에 남으려는 나를 꼬셨고 마침 돈도 떨어졌다(천국이지만 이상하게도 돈이 술술 나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