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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장 3장 4장 5장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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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날개떡볶이에서 일을 하다 나왔을 철규씨는 맨발에 슬리퍼 바람이었어요. 11월은 맨발로 다닐 계절이 아닌데.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루이뷔통 가방을 안고 있었어요. 그 가방을 안은 채로 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왔어요.
“저기요, 철규씨. 다음에 얘기하자니까요.” 그는 듣지 않았고 눈동자를 어디에다 두고 온 사람처럼 텅 빈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어요. 내 방은 1층, 여섯 걸음만 가도 되는 곳이었지만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한대리님을 사랑한 거 말고, 제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어요?” 달아나도 안 되고, 웃어 보여도 안 되는 그 순간이 오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지더라고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어요.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게 잘못한 거야! 왜 니 마음대로 나를 사랑하고 말고 해? 너 돌았니? 나한테 왜 이래, 이 미친 새끼야!” 그가 언뜻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몸을 홱 돌려 뛰기 시작했는데…… 더는 안 붙잡을 줄 알았는데. --- p.58 엄마와 아버지가 영안실에 들어섰을 때 그곳엔 과장님이 있었어요. 과장님은 푸들푸들 떨고 있었어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머리통이 3분의 1이나 으깨진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수정아, 한수정 대리야. 이러지 마. 일어나. 아마 그런 말을 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과장님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어요. 엄마의 입은 그보다 더 굳게 닫혀 있었어요. 울지 않으려고, 아니 눈물이 눈에 가득 차 내가 안 보일까 봐 눈을 더 크게, 더 크게 뜨며 엄마는 나에게 걸어왔어요. 눈을 너무 크게 홉떠 엄마는 엄마 같지 않았어요. 천천히 한 걸음씩, 이 상황이 너무 두렵고 무서워 후다닥 다가갈 수도 없다는 듯이 엄마는 느리게 걸어와 내 목을 한 팔로 감싸 안았어요. 그리고 나머지 손을 내 등에 넣은 다음 나를 일으키려 했어요. “가자. 집에 가자, 내 새끼…… 내 강아지. 집에 가야지. 여기 너무 춥다.” 누가 엄마를 잡아 흔들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마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다 알아들었지만요. 나를 일으키려는 엄마를 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는 끝내 나를 일으키지 못했어요. 엄마의 팔은…… 지푸라기 같았거든요. --- p.64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되었을 때 나는 과장님을 쳐다보았어요. 황달이 든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과장님의 눈알이 노래졌어요. 나를 죽였는데 고작 징역 6년이라는 사실에 내가 놀랐듯 아마 과장님도 놀라서 그랬을 거예요. 흡,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지만 곧 조용해졌고, 지점장님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육…… 녀, 언?” 했지만 누군가 지점장님의 어깨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속삭였어요. “아무 말도 마세요. 누가 들어요. 저 새끼 출소해도 서른둘이에요. 조심하셔야 해요.”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지점장님을 붙안은 걸 보면 강계장이었을까요. 욕설을 씹어뱉을 것 같았던 지점장님의 입술이 닫혔어요. 모두가 지점장님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재판정을 빠져나갔어요. 과장님은 노래진 눈으로 오래오래 앉아있었고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수민이와 윤지는…… 말하기 싫어요. --- p.72 “아, 여자 쪽에서도 싫다 하진 않았지. 싫었으면 맨날 떡볶이 먹으러 왔겠어? 줄도 안 섰어. 여기가 얼마나 손님이 많은데. 그 박작박작한 속에서도 줄 안 서고 그냥 들어와서 아무 데나 앉았지. 돈도 안 냈어. 김사장이 공짜로 내줬지.” 그 인터뷰는 아마도 날개떡볶이 연변 아줌마였겠죠. “바닷가에서도 데이트 종종 하던데요? 언제지? 여튼 밤에 본 적 있어요. 백사장에서.” 그날 밤 우리를 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어요. 또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더라고요. “그냥 김사장이랑 살지, 뭘 그리 쟀나 몰라. 엄마도 재가해서 몸 기댈 데도 없다며? 돈 많지, 성실하지, 심성 곱지. 김사장이랑 연정에서 자리 잡고 살면 좋았겠고만, 거참.” “남자들이 원래 다 그렇잖아. 마음 줄 거 다 줬는데 그리 안 받아주니 회까닥 돈 거야. 딱해라, 딱해. 젊은 놈이. 그 늙은 엄마는 어쩌누? 이제 누가 돌봐?” 경찰들은 모든 CCTV를 살폈어요. 은행에서 나는 철규씨에게 내내 방긋방긋 웃었고 심지어 원룸 건물 앞, 망치가 든 루이뷔통 가방을 감싸 안고 나에게 바짝 붙어섰던 그날 밤에도 CCTV 속 나는 웃던걸요.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가 원룸 건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는데. 웃다니. --- p.78 떡볶이에서는요, 골목 냄새가 나요. 골목 냄새가 뭐냐면, 담 낮은 집들이 쭉 늘어섰고 고무줄놀이도 겨우 할 만큼 좁은 골목들이 막 엉켜 있는데요, 초입에 붉은 포장을 친 떡볶이집이 있거든요. 합판을 몇 장 겹쳐 만든 긴 의자에 올라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며 백 원짜리 동전 몇 닢을 아줌마에게 건네면 비닐을 씌운 멜라민 접시에 빨간 떡볶이를 가득 담아줘요. 이쑤시개로 밀떡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면 참 달콤도 하지. 종이컵에 부어주는 어묵 국물 후후 불어 마시면 등 뒤로 저녁 바람이 스쳐요. 노을 묻은 저녁 바람 아시죠? 주홍색 바람. 원피스 등 자락으로 파고들기도 한다니까요. 박쥐가 낮게 날기도 했어요. 섀앵, 하고 빠르게 나는데 저러다 공중의 전깃줄에 걸리면 어쩌나 싶기도 했어요. 녀석들, 절대 안 걸려요. 그렇게 떡볶이를 집어 먹다 보면 엄마가 왔어요. 실은 내가 엄마 퇴근 시간을 알아서 거기서 기다린 거거든요. 엄마는 포장마차에 앉은 나를 보면 활짝 웃으면서도 눈을 흘겼어요. 저녁 먹어야 하는데 또 떡볶이를! 하는 거였죠. 겨드랑이에 낀 핸드백을 야무지게 고쳐 쥐고 엄마는 나를 반짝 안아서 의자에서 내려줬어요. 나 혼자 깡총 내려와도 되지만 그냥 엄마만 보면 아기가 되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런 거 있잖아요. --- p.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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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고 참신한 소설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여덟 번째 책 《수정의 인사》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이다. 소설 시리즈를 론칭한 지 2년 만에 폴앤니나는 참신하고 발랄한 소설을 원하는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수정의 인사》는 수오서재에서 발간한 테마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에 실렸던 단편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에서 출발했다. 단편 분량으로 다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새롭게 경장편에 담았다. 2021년 출판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 크라우드펀딩 매칭지원 선정작이다. 당연하게도 안전한 세상을 매일 꿈꾸는 사람들 김서령 작가님이 그랬다. 본인의 떡볶이는 좀 매울 거라고. 그런데 작가님의 말에 토 달아본다. 아니요, 그냥 매운 게 아니라 씁쓸하게 매워요. 쿨피스 말고 아주 차가운 생수로 입을 헹궈야할 것처럼 세상이 맵고 속이 쓰려요. _리뷰 블로거 마곰님 떡볶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정말 인상 깊었다. 작가가 참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다. 뉴스 틀면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사건을 다루어서 같은 여성으로서 정말 가슴 아파하면서 읽었다. 떡볶이에 정말 쓰디쓴 쓴맛도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렸다. 만약 작가님이 이 글을 본다면, 당신이 보듬어주지 못한 수정이를 내가 깊이 안아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수정이를 잊지 않겠다고도. 그러니 수정이한테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_리뷰 블로거 수리수리님 소설은 맵다. 매운 고춧가루를 마구 풀어놓은 떡볶이처럼 맵다. 세상이 그렇게 매웠다. 나를 죽인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 집에 돌아가 포근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눕는 일상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작가 김서령은 누울 곳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 주변을 돌아보는 수정에게 못다 한 인사를 전하라고 독자들을 떠민다. 그리고 미처 전할 틈 없었던 수정의 마지막 인사말을 들어보라고도 권한다. 우리는 누구나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작가는 나직하게 그렇게 소설 속에서 말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