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어떤 일요일에 전하는 안부 인사
퐁당 지우 연우 선우 베티의 마지막 파티 아무도 몰랐다 모두 잘 지내나요 작가후기 |
김서령의 다른 상품
9jedit
제딧의 다른 상품
|
결혼을 하겠다고, 그러니 돈을 내놓으라고 말짱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두 백수를 두고 양쪽 어머니들은 처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한마디씩은 했다. 우리 엄마의 입에서는 “미친년”이, 승호 어머니의 입에서는 “미친 새끼”가 나직이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승호와 나는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 120만원짜리 카페를 얻겠다는 야무진 사업계획서를 양쪽 어머니들에게 내밀었다. 대학가의 해 잘 드는 2층 점포라는 것, 아래층이 그 동네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갈빗집이라는 것을 부각하며 어머니들을 설득했다. 승호 어머니가 먼 데를 보며 크지 않게 중얼거렸다.
“또라이 새끼들. 갈빗집에 손님 많은 거랑 2층에 점빵 내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우리 엄마는 못 들은 척하고 앉아있었지만 전격 동의하는 얼굴이었다. --- 「어떤 일요일에 전하는 안부 인사」 중에서 엄마는 물에 살짝 헹군 짠지를 잘게 썰어 참기름에 무쳤고 밥상머리에 앉으면 마루의 괘종시계가 딱 일곱번 종을 쳤다. 찬물에 밥을 말아 짠지 한조각 올려 먹던 연정동의 저녁 시간. 밥 대신 사발면을 먹겠다 우겨보지만 엄마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던 그때. 내 이름은 연정이었다. 서울시 연정동 연정유치원에 다니는 김연정. --- 「퐁당」 중에서 “누나들 많다고 너도 걱정할 건 아니다. 많이 배운 누나들이라 점잖고 괜찮단다.” 준규 어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교사 출신 그의 어머니 말투는 몹시 고상했다. 우리 엄마는 배웠느니 마느니 말을 늘어놓는 준규 어머니가 아니꼬운 모양이었지만 잘 참아내고 있었다. 엄마는 당신이 중졸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삼남매가 그 말을 믿은 적은 없었다. 엄마가 여중생인 적이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몇번의 이사를 거치며 진주국민학교 29기 졸업앨범을 본 적은 있으니 국졸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큰올케와 작은올케는 내가 듣는 데서 이죽거렸다. “형님. 어머니 중학교 나오신 거 아니죠?” “중학교는 무슨.” “하긴, 안 나오셨을 거야. 가끔 보면 말씀을 너무 막 하셔.” 둘은 깔깔대다가 잠깐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말이 잘 통하는 시누이처럼 따라 웃었다. 안심한 그녀들이 한참을 더 웃었다. --- 「지우 연우 선우」 중에서 “헤어지는 중이야?”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빠. 내가 이 친구 잘 아는데, 그냥 끝내.” 최가 홍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연애는 쌍방합의 하에 하는 거야. 한쪽이 끝났다면 끝난 거야. 오빠가 이러면 상상연애가 되는 거라고. 상상임신은 죄가 아니지만 상상연애는 죄야. 그러니까 관둬.” 최는 가방을 들고 베티를 나가버렸다. --- 「베티의 마지막 파티」 중에서 열여덟살에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른여덟살이 되도록 떼어내지 못하는 지지부진, 지리멸렬한 사랑. 그런 걸 이제 끝장내고도 싶었다. 정말 사랑을 하기는 하는 건지, 이런 것도 사랑이라 쳐야하는 건지, 누가 좀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명원의 대거리는 시시했고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진주는 이제 정말 끝내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의자를 끌어와 명원의 얼굴을 마주보고 앉았다. 고개를 든 명원은 가여운 아기곰 같았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입술을 옴짝이던 진주가 내뱉은 말은 이거였다. “그냥…… 결혼하자. 이럴 거면, 이렇게 살 거면.” 명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명원도 입술을 옴짝이다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냥 그래 버리자.” --- 「아무도 몰랐다」 중에서 대학을 막 졸업했던 나는, 흐지부지 살고 있는 영화감독지망생 선배가 소속된 흐지부지한 영화사엘 들어갔다. 딱 보아도 흐지부지했다. 두세명이 사무실에 앉아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개봉을 앞둔 다른 영화사의 영화를 씹거나 유명 감독의 사생활을 저만 알고 있는 듯 떠벌이거나 아직 나오지도 않은 시나리오의 캐스팅을 쓸데없이 고민했다. 나는 그다지 영악한 졸업생이 아니었으나 한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다가는 나도 흐지부지하게 인생을 낭비하게 되겠구나. --- 「모두 잘 지내나요」 중에서 |
|
“이런 연애도 정말 연애이긴 한 거야?”
“이따위 연애, 이젠 진짜 다 집어치우고 싶어!” 십년을 만나도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 몰라 머리통을 긁적이는 연인들이 있다. 머리통만 긁적이면 다행이지. 울화가 치미는 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헤어질 수는 없다. 사랑은, 연애는 때로 의리이기도 하잖아. 너를 지켜본 시간이 얼만데. 너를 따라 내가 자란 그 날들이 얼마나 긴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희들의 연애도 참 예쁘다 서툴러서 예쁘고, 다정해서 예쁘고, 찌질해서 예쁜 우리 시대의 연애 6편을 담은 김서령의 신작 소설집. 어쩌자고 이렇게 하나 같이 하자투성이인지. 그래도 가만히, 정말 가만히 들여다봐야 예쁜 구석이 보이는 그들의 연애를 지켜보자. 그 연애의 결말이 어찌 되는지. 생각과 실전은 달라서 사실 사랑엔 영 젬병인데, 겁도 없이 소설집 제목을 『연애의 결말』이라 붙였다. 내가 연애에 대해 무얼 안다고. 게다가 결말이라니. 끝장을 본 연애가 있기는 했던가. 언제나 어설프게, 뒤에 서서 웅얼웅얼 미련만 들켰으면서.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여섯편의 소설 모두 결혼 이야기가 섞였다. 『연애의 결말』이라 제목을 붙인 건 그 때문이었다. 긴 연애 끝에 더는 할 게 없어서 하는 결혼, 서로가 구원인 줄 알았으나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아 접어버린 결혼, 백번 양보해 사랑까진 한다 쳐도 그게 같이 살기까지 할 일인지는 몰라 골치가 아픈 결혼. 어떤 결혼은 허랑방탕하고 어떤 결혼은 공연히 애틋하고 어떤 결혼은 ‘연대’여서, 내 여섯편 주인공들은 소설이 끝난 다음에도 여전히 처연하다. 그들은 몽땅 나를 닮아 때로 안아주고 싶기도, 미워지기도 했다. 내가 만들고서 예뻐하고 가여워하고 미워하기까지 하다니. 그러고 보면 소설가란 참 맹랑한 직업이다. __작가 후기 중에서 (김서령) 소설을 읽을 때마다 누군가의 생애를 가만히 지켜보는 기분입니다. 글을 읽고 그림을 보는 우리도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새벽이네요. __작가 후기 중에서 (제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