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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 011
오경 029 미림 104 북해의 슬픈 왕 126 미림 134 오경 138 나선 149 작품해설 154 작가의 말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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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와 폭발로 바깥이 해가 떠오르는 새벽녘처럼 밝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정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찾아보니 신발장이 있던 자리의 천장이 무너져 돌과 먼지 아래 현관 입구가 파묻혀 있었다. 간신히 한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었지만 몇 분 뒤에도 그 공간이 무사히 남아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서둘러. 다 무너질지도 몰라.” --- p.31 * 군인은 큰 키의 거구였고 그 역시 오경을 마주치기 전부터 달리고 있었다. 오경은 그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지만 얼굴을 금세 잊어버렸다. 눈 코 입의 생김새도 표정도 기억나지 않아서 오경은 그 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명백한 의미를 가진 것은 오직 그의 손에 들린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긴 소총이었고 서서히 오경을 향해 올라오는 총구였다. 오경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고 군인도 방향을 틀어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한 사람은 쫓고 다른 한 사람은 쫓기는 상태가 되었다. 마치 이 술래잡기가 그들 이 만나기 오래전부터 이미 시작됐던 것처럼. --- p.35-36 * 그는 정말 매일 아침 오경에게 비스킷을 하나씩 건네주기 시작했다. 암흑 속에 잠겼던 수로에 아 침 햇살이 차오르면 오경은 시계도 없이 눈을 뜨고 그대로 가만히 기다렸다. 군인은 오경이 깨어났는지 묻지 않고 즉각 기계처럼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그때가 정확히 들어맞았다. 신기하게 여겼지만 내심 오경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 시간은, 비스킷을 나누고 그것을 먹는 시간은 둘에 게 하루를 여는 시간이자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의 전부이며 또다 시 내일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 p.61 * 그러다 폐허가 된 도시 한 골목에서 홀로 죽어가는 노인을 보았다. 그는 곧 죽을 운명이었다. 천 년 동안 세상을 떠돈 북해의 왕은 갑자기 자기 안에서 샘솟는 낯선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깊은 연민이었다. 북해의 왕은 그 노인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랜 옛날 성당에 벽돌을 옮기다가 떨어져 평생 다리를 절게 된 아이였다. 북해의 왕은 노인에게서 아이를 볼 수 있었기에 점점 슬퍼졌다. 그 노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의 마음에 잠시 깃들었다. 그와 한마음이 되었다. --- p.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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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폐허가 되어도 끝없이 변화하는 모든 것
삶과 죽음 속 이해할 수 없는 세계, 북해에서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들이 우연으로 만들어졌으며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기미들이 구성한 신비의 세계임을 포착해낸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 미로처럼 얽힌 꿈과 현실에서 아름답게 펼쳐지는 영원의 순간들을 그려낸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두 편의 소설집을 통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세계를 정돈된 문체로 전개해나가며 그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내고 있는 우다영의 이번 신작은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북해’라는 미지의 공간, 그 안에서 삶의 사투를 벌이는 인물들의 극적인 사건이 액자소설 구성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직업 군인 ‘나선’의 아버지는, 장교 제자들을 자주 집으로 초대한다. 아버지가 그들을 집으로 부르는 건 7년 전 사고로 사망한 공군이던 아들의 죽음 뒤에 오는 슬픔을 잊기 위해서이다. 그들과 자리를 하며 북해에 살던 시절의 추억을 나누는 아버지. 그러나 나선은 죽은 아들의 삶을 복원시키려는 아버지에게 또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되고, 반복되는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자리하던 중위 하나가 그의 할머니 ‘오경’이 열다섯 살 시절 북해에서 겪은 전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바다가 된 북해. 오경은 세 명의 언니들과 황급히 몸을 피하지만 결국 홀로 살아남는다. 생존을 위해 저 너머 북해를 향해 무작정 달리던 오경은 자신을 뒤쫓는 듯한 군인과 추격전을 벌이고, 굉음과 함께 수로 속 돌무더기에 갇히고 만다. 정신을 차린 오경에게 돌 벽 사이 너머 인기척이 들리고, 오경은 그 소리의 주인공이 함께 달리던 적군임을 알고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언니들을 죽이고 자신마저 죽이려 했던 적군과의 수로 속 35일, 오경은 그와의 삶을 연장하기 위한 처절한 삶을 이어간다. 살아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이 무의미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결이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의미를 찾기 이전에 ‘숭고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