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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르셀로나에서
2. 세비야에서 3. 그라나다에서 4. 마드리드에서 5. 다시 한국에서 발문 범유진 경계의 상실과 회복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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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여행지로 스페인을 고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하루 종일 소을의 콘텐츠를 편집하며 도규에게 반복해서 들었던 말들. 그 안에 담긴 모욕의 감정을 지우기 위해서 직접 그곳에 가야만 했다. 혜성은 형편상 여행을 가지 못했을 뿐인데, 내내 무언가 잘못된 사람으로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억울했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일이, 혜성에게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 상처는 피한다고 사라질 리 없었다. 자신은 대표의 말처럼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 pp.21-22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서쪽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성당 내부를 붉은빛과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반대편 동쪽 유리창은 푸른색과 초록색 계열이라 색의 대조가 또렷했다. 거대한 기둥들이 숲처럼 솟아 있고, 사이사이로 색색의 빛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 장엄한 분위기에 휩쓸린 혜성은 종교가 없음에도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했다. 지효가 안전하길 빌었고, 자신의 여행이 무사히 끝나길 바랐다. --- pp.49-50 혜성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에 넋을 놓고 보면서도 옆에 앉은 길우를 종종 의식했다. 길우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을 선명하게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너무 빨리 길우를 좋아하게 될까봐 마음의 고삐를 쉴 새 없이 잡아당겼다. --- pp.74-75 길우의 얼굴이 가까워지다 혜성에게 입을 맞추자, 혜성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길우가 사과를 해 왔고, 혜성은 “아니에요. 제가 미안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엔 혜성이 먼저 길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건 혜성이 꿈꾸던 여행의 모습도, 기대했던 로맨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길우가 싫은 것도 아니었다. 방향을 잃은 마음이 혜성을 불안하게 흔들었다. --- p.81 많은 여행객이 스페인에 오면 알람브라궁전만은 반드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입장권은 한 달 전부터 예매해야 한다는 말에 혜성 역시 여행 일정에서 가장 먼저 날짜를 정해 예약해두었던 곳이다. 하지만 혜성은 이제 자신이 저곳에 끝내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 생각 때문이었을까. 한밤중에 바라본 알람브라궁전은 화려하기보다 유난히 쓸쓸해 보였고, 그 모습에 복받쳐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이 알람브라궁전을 보고 감상에 젖은 탓인지 엉망이 된 여행 탓인지 아니면 여기까지 와서도 마주해야 하는 자신의 나약함 탓인지 알 수 없었다. --- pp.121-122 ‘도대체 정체가 뭐야? 사이코? 연쇄살인마? 로맨스 스캠?’ --- p.131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 앉아 몇 시간을 돌려보며 편집하던 영상 속의 그곳에 와서 추로스를 입에 넣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화면 너머로 보던 것의 실체를 마주하자 그 진실이 생각보다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첫 여행도,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서글퍼졌다. --- pp.158-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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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영상 회사에 재직 중이던 스물아홉 살 혜성은 대표의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퇴사하고, 남자친구하고도 성인지 감수성 차로 헤어진다. 두 가지 상실을 겪은 혜성은 이 상처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기’ 위해 퇴사 여행 차 전 재산의 절반을 털어 스페인 여행을 떠난다.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 불안해 유럽 여행 카페를 통해 동성 또래의 여행 동행자를 구하지만, 정작 만나기로 약속한 바르셀로나 공항에 동행자 지효가 나타나질 않는다. 불안에 휩싸인 찰나, ‘우연히’ 만나게 된 서른둘의 남성 길우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혜성을 도와준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동행, 그러나 혜성이 지효에 대해, 길우가 튀르키예를 여행한 시기에 실종된 한국인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길우의 태도는 못내 싸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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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세비야, 그라나다, 마드리드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도착한 알람 그 순간 ‘낭만’이 눈을 가린 ‘불안’이 깨어나고 여행은 영원토록 이어진다 여정의 끝에 우리는 어디로 도착할 것인가 『나의 낯선 동행자』는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며 영어도 서툴고 여행이라는 행위에도 미숙한 혜성이” 만나기로 한 동행자가 나타나지 않는 황당한 “사건을 마주하는 새벽”, 낯선 공항의 “그 막막한 불안의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시작된다. ‘혜성’은 ‘지효’에게 메시지를 남긴 뒤 혼자 바르셀로나 시내로 향하나 호텔에서 듣게 된 말은 청천벽력과 같다. ‘지효’가 전달해준 호텔 “예약 확정서”가 버젓이 있는데도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것. ‘혜성’은 이미 ‘지효’에게 여행 일정 전체에 해당하는 숙박비의 절반을 입금한 상태이다. 늦은 밤, 오갈 데 없이 홀로 타국의 거리에 남겨진 혜성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두려움에 떨며 그나마 안전한 공항으로 되돌아가고자 공항버스를 기다린다. 이윽고 도착한 버스에서 한국인 남성이 내리는 것을 본 ‘혜성’은 처음으로 말이 통할 상대를 봤다는 반가움에 달려가 도움을 청한다. ‘길우’는 ‘혜성’에게 어떤 사연도 묻지 않고 도와주고 이를 계기로 지효가 부재한 “자리에 길우가 들어”오게 되며 둘은 ‘동행자’가 된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파밀리아대성당,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볕, 달콤 쌉싸래한 오렌지 나무의 향, 멀리서 들려오는 플라멩코의 선율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골목 틈새로 보이는 그라나다 알람브라궁전……. 낯선 남성 ‘길우’와 함께하는 스페인 여정은 낭만으로 가득한 “긴장감과 미묘한 들뜸”으로 흥분된 연속이다. 그럼에도 “너무 빨리 길우를 좋아하게 될까봐 마음의 고삐를 쉴 새 없이 잡아당”기는 와중, 이유를 알 수 없이 지속되는 불안감은 ‘혜성’을 잠식한다. 이 불안은 단순한 예감일까, 혹은 직감일까. 둘의 감정이 로맨스로 무르익어가는 순간마다 “알 수 없이 불길한 기운”이 번지고 혜성은 스스로의 긴장을 늦추지 않게 단속하지만 상황은 끝끝내 모든 것을 의심하게끔 만든다. 결말부에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귀국해 안심한 찰나, 울리는 ‘혜성’의 휴대폰 알람은 독자들에게 다시금 경각심을 곤두세우게 한다.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으며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짜 여행의 시작일지” 모른다. 『나의 낯선 동행자』는 결말부에 다다라, 한 여정의 끝을 ‘일상’이라는 또 다른 여행과 덧대어 삶 전체로 그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이른다. 그러나 “소설은 두 번 읽을 수 있지만 인생은 두 번 읽을 수 없으므로” “삶은 언제나-미리 불안하고 설레는”(박다솜) 한 편의 ‘스릴러’로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이 ‘삶’이라는 스릴 넘치는 여행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 것인지는 『나의 낯선 동행자』가 우리에게 남겨놓는 지문指紋이 아닐까. 작가의 말 수월하고 아름답기만 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통과하고 버텨내며 그 시기를 지나는 것이 아닐까. (…) ‘앞으로 행복해질 거야’라는 다정한 위로보다 ‘인생은 원래 고난과 함께 가는 거야’라는 말이 더 단단한 위로가 될 때가 있는 것처럼. 실제로 『나의 낯선 동행자』를 쓰면서 혜성에게 그런 종류의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나의 낯선 동행자』의 혜성은 흡사 알에서 깬 병아리가 처음 본 상대를 어미로 인식해 쫓아다니는 듯 길우의 일정을 궁금해하는데, 의존 대상인 그와 있어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곧 로맨스와 혼재된다. 혜성은 무뎌지기를 바라나 지효에 대한 걱정이 그것을 막는다. 길우는 지효에 대한 혜성의 걱정을 부정한다. 혜성은 쉴 새 없이 자신을 부정하는 상대와 함께하느니, 혼자 여행을 하는 게 낫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의존이 종료되었음을 뜻한다. 이제 혜성의 불안은 온전히 혜성의 것이다. (…) 경계는 고정되지 않고 변화한다. 그 변화가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침범에 의한 것일 때 무력해지는 경험이 누구나 한 번은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무기력한 내 모습과 마주하는 게 가장 낯설고 힘들었다. 혜성도 그렇지 않았을까. 혜성이 여행하는 동안 가장 낯설게 느꼈던 건, 어쩌면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_범유진 「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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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의 독서를 위해 쓰이는 작품들이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던/못했던 장면들이 두 번째 읽는 순간 징그럽도록 선명해지는 이야기들. 『나의 낯선 동행자』는 분명 그런 작품 중 하나다. 따라서 우리는 소설을 두 번 읽게 될 것이다. 처음은 순진하게, 두 번째는 경악하면서. - 박다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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