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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
임솔아
자음과모음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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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금빛 베드 러너
도희의 한 시간
쉴 곳
에세이 내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
해설 회전하는 극장 — 전청림

저자 소개 1

LIM SOLAH,林率兒

소설가·시인.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시 부문)과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중편소설 『짐승처럼』, 장편소설 『최선의 삶』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등을 펴냈다. 신동엽문학상·문지문학상·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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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16*183*11mm
ISBN13
9788954474931

책 속으로

“지윤아, 웃어야지.”
지윤에게 웃음은 피아노의 영역이었다. 건반을 조금만 안 쳐도 손가락이 굳듯, 조금만 웃지 않고 지내도 웃음은 지윤을 떠나버렸다. 그러니까 웃음은 지윤이 쉬지 않고 의식하며 노력해온 증거 중 하나였다. 표정이 웃음밖에 없다는 검사자의 말은 지윤의 노력이 무언가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지적처럼도 들렸다.
---「금빛 베드 러너」중에서

“우리 지윤이는 웃는 표정이 참 이쁘다.”
엄마는 알 수 없는 표정을 또 짓고 있다. 앞으로도 지윤은 엄마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놓칠 것이다. 지윤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짙어질수록 모르는 것들로 휩싸인다. 지윤은 희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엄마의 어깨 위로 끌어당겨준다. 모르는 것들을 이불처럼 덮고서 지윤은 엄마의 기침 소리를 듣고 있다. 조금씩 잦아드는 소리.
---「금빛 베드 러너」중에서

등교를 할 때마다 새로 개통된 KTX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수녀님도 그러지 않느냐고 물었다. 노수녀에게 관심을 더 받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고 보니 그 편지에 자신이 숨겨왔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수녀는 답장을 보내왔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적혀 있었다. 도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도 적혀 있었다. 도희의 꿈에는 지금도 종종 노수녀가 나온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구나.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도희의 한 시간」중에서

“그래서, 이 칸은 어디로 가는데요.”
“포항으로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노수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진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반대 방향으로 가면 되느냐고 노수녀가 물었다. 다른 칸으로 건너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못 건너가요. 막혀 있어요.”
“언제부터.”
“처음부터요.”
---「도희의 한 시간」중에서

정화와 민기의 집은 환했다. 민영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민영은 긴장감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살아본 적도 없는 집을 이토록 아늑하게 느낀다는 것이 이상했다. 민영은 없는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었다.
---「쉴 곳」중에서

“언니, 해볼래? 자기가 운전하면 멀미가 안 나.”
“안 한 지 오래됐는데.”
“그냥 해 봐. 달걀 꺼내듯이.”
그럴까? 라고 말하며 정화는 활짝 웃었다. 민영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정화와 자리를 바꿨다. 차는 천천히 나아갔다. 잔뜩 긴장한 듯 정화는 운전대에 상체를 바짝 붙였다. 차가 크게 휘청였고 정화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웅덩이였다. 정화의 손이 떨려왔다. 민영은 비상등을 켰다. 한쪽 손을 정화의 손 위에 포갰다.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아.”
---「쉴 곳」중에서

요즘 나의 강아지는 함께 산책을 나갈 때마다 여름 냄새를 맡느라 아주 바쁘다. 같은 골목인데도 여름의 골목에는 매일 새로운 냄새들이 자라는가 보다. 그래서 더 좋은가 보다. 너는 어떨까. 여름을 좋아할까. 네가 아주 조금은 여름을 좋아하면 좋겠다. 그래서 여름에는 바깥을 한껏 즐기느라 새까매지면 좋겠다. 어느 날 우연히 바깥에서 우리가 마주칠 수 있었음 좋겠다.
---「내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중에서

출판사 리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들


소설과 시라는 문학의 두 큰 경계를 꾸준히 오가며 “특별하지 않은 소재를 특별하게 만”(박성원 소설가)듦으로써 “체급 자체가 다른”(신형철 문학평론가)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정립하고 있는 임솔아의 신작 소설집, 『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이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은 ‘정상’이라는 폭력적인 선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바라보는 타인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동안 임솔아가 여러 작품 속에서 꾸준히 천착해온, 사회적 약자들의 심신적 면면들을 여러 층위에서 들여다보는 시선과 그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세 소설과 에세이 속 작가의 단상들을 통해 다시 한번 펼쳐진다. 일상 속에서 별것조차 아니게 치부되는 작은 것들을 덤덤하게 끊임없이 기억하고, 되뇌고, 돌이키는 것으로 상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소리 없이 드러내는 이들의 목소리들 또한 담겨 있다.

들어가는 소설「금빛 베드 러너」의 주인공 ‘지윤’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엄마와 함께 서울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엄마가 여행 중 기침을 시작하자 대형 쇼핑몰에서 엄마에게 잘 듣는(다고 지윤이 굳게 믿고 있는) 특정 약을 찾아 구입하는 데 몰두하느라 저녁을 먹기도 전에 진을 다 빼고 만다.

특정 약을 찾아 쇼핑몰 곳곳을 헤매는 지윤의 모습과 지윤에게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내리며 표정이 웃음만 있다고 지적하는 검사자의 말, “지윤아, 웃어야지”라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지윤의 혼란 속에서 반복적으로 혼재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윤은 병명을 들음으로써 ‘진짜’ 자신이 명명된 느낌에 오히려 안도하기도 한다.

특정 약을 사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지윤은 숙소로 돌아가 추워하는 엄마에게 옷을 잔뜩 입히고 베드 러너까지 두르게 한 후 함께 식사를 한다. 방에 돌아온 둘은 나란히 누워 어릴 적 살던 집에 달려 있던 도어 벨 이야기를 하고, 그때 지윤은 비로소 두 사람이 일방적으로 감정을 퍼붓는 사이가 아닌, 감정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관계임을,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도 이 교감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느낀다.

상담사의 재검사 제안이 지윤에겐 선택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자폐스펙트럼의 범주로 들어갈지, 범주를 거부할지. 내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는 이 순간, 지윤은 자신에게 자폐스펙트럼과 관련된 아무런 증상도 없다고 여긴다.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잘 알아차리고,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35쪽)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아.”

범주로 들어갈지, 범주를 거부할지,
내키는 대로 해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손들


두 번째 소설 「도희의 한 시간」의 주인공 ‘도희’는 지윤처럼 어떤 명확한 병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나 의미 모를 불안감과 싸우고 있다. 그는 기차에 올라 자기 자리에서 자고 있는 이를 깨우는 대신 한 노수녀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어릴 적 가족이 다 함께 PC방 콘셉트의 기차에 탔을 때의 경험, 아빠를 두고 엄마와 단둘이 기차를 탔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함, 수녀원이 있는 학교에 다니던 중 무작정 수업을 빼먹고 새로 생긴 KTX에 올라 서울 곳곳을 방황하던 기억 등을 돌이킨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데리고 집을 나왔던 엄마가 더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갔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도희 또한, 정신적으로는 그때의 엄마와 마찬가지라는 것도.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황급히 내렸으나 다시 도희가 있는 객실로 돌아오고 만 옆자리 노수녀, 검표하러 온 승무원에게 그제야 자신의 티켓이 내일 티켓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도희의 모습은 현실을 살고 있지만 그 현실에 발을 제대로 딛고 있지 못하다는 기분을 느끼며 매일을 살아가는, 사실은 계속해서 “정말 그대로”이기에 그것을 가리고자 일부러 “가벼워 보이”는 척을 하는 현대인의 감정과 이어진다.

도희는 휴대폰을 꺼냈다. 엄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대전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는 없는데, 기차를 갈아탔던 기억도 없다고 적었다. 그때 어디에서 기차를 갈아탄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일을 기억하느냐고 엄마는 되물었다. 기억한다고 도희는 답했다. (74쪽)

마지막 소설 「쉴 곳」의 주인공 ‘민영’은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후로 사람들과 마주하면 몸이 떨려온다. 그래서인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오빠 부부의 집을 찾은 민영은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어릴 적과 달리 이제 그저 사소한 투닥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일들도 언젠가는 지금처럼 사소한 일에 불과해지리라고 생각하며. 그 후 민영은 넘어져서 부러졌다고 들은 오빠 민기의 코뼈가 사실은 스스로 부순 것임을 새언니 정화에게 듣는다. 민영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한 오빠에게서 두려움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고, 그런 오빠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정화에게는 면밀한 편안함을 느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화에게 연대의 손길을 뻗는다.

이렇게 멀리 나가는 게 아주 오랜만이라고 정화는 말했다. 정화와 함께 어디로 가야 할까. 어쩌면 정화는 영영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민영은 생각했다. 민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08쪽)

분간되지 않는 꿈과 현실에서 쏟아지는
타인이라는 경이로운 세계


『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의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셋은 모두 한 지점, ‘함께의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 처음에 세 주인공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부탁하고, 요청하고, 때로는 요구하면서 상대, 즉 ‘타인’ 혹은 ‘세상’을 ‘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에게 쉬이 답을 주지 않는다. 이때 지윤과 도희, 민영이 내리는 결론은 도리어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한 층위 위로 올라가 상대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도록 상대 그 자체를 ‘이해해가는’ 길을 걸어간다. 또 그런 상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가다듬고 용기를 낸다. 현재와 과거를 지나, 타인이라는 세계 속에 녹아드는 미래로 나아간다.

이렇게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이들의 손에는 작은 키워드들이 들려 있다. 지윤 모녀는 도어 벨이라는 시각-청각이 이어지는 공감각적 물건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유대감을 느낀다. 도희는 기차를 매개 삼아 어릴 적에는 도착하지 못했던 결론에 닿고, 비로소 그때의 엄마에게 공감한다. 그리고 두 소설을 지나 「쉴 곳」에 도착하면 마지막 키워드인 운전대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연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민영에게 오빠 부부의 집은 쉴 수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약간의 불편함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민영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파괴적으로 행동한, 민영과 ‘다른’ 오빠의 곁에 있던 정화가 끝 무렵, 민영의 권유에 긴장하면서도 운전대를 잡는다. 민영과 정화가 잡은 운전대는 도피용이 아니다. 시작과 끝에 나오는 “자기가 운전을 하면 멀미를 안” 한다는 민영의 생각-말처럼,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자신 그 자체로 온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도구이자 과거 혹은 괴로움을 뒤로하고 그들의 의지로 직접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그렇게 핸들 위에 포개진 두 손, 유사 모녀의 연대는 민영(과 정화)의 새로운 ‘쉴 곳’이 된다.

민영과 정화처럼,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자동차를 타고 저 먼 곳으로 달려갈 수 있다. 우리의 시선 밖에 있었던 지윤과 도희 그리고 민영의 장면들을 눈과 마음에 담은 지금, 우리는 그들과의 연대감을 시작점 삼아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쥐고 길 앞에 서 있다. 이제 액셀을 밟아 타인과 접촉사고를 낼 시간이다.

작가의 말

나의 꿈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나는 J와 Y를 만나본 적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나는 만나본 적 없다.
당신이 보고 있는 장면은 현실인가.
아니면 꿈인가. 아니면 기억인가.
당신은 어떤 장면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장면을 보고 있지 않은가.
_에세이 「내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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