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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
성혜령
문학동네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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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우리 시대의 불완전한 자화상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불안을 저마다 안고 산다. 그 심리와 관계를 잘 표현하는 젊은 작가 성혜령의 신작. 수록된 이야기 모두 속도감 있는 전개와 까끌까끌한 결말이 연이어진다. 훌륭한 사회소설의 표본이 될 작품집.
2026.09.04.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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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임장 _007
하악 _037
대부호 _069
운석 _105
나방파리 _135
독재자의 오른발 _169
원경 _207
베인 _235

해설 | 이소(문학평론가)
비성년 서사 _271

저자 소개 1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버섯 농장』 『산으로 가는 이야기』 등이 있다. 2023년, 2025년 젊은작가상, 2024년, 202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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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133*200*20mm
ISBN13
9791141603564

책 속으로

맞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물어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장」중에서

자인은 늘 빠듯하게 살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가끔, 혼자 술을 마실 때면 스스로가 뿌듯할 때도 있었다. 삶이 내게 준 것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살인자가 되지도 않았고 패륜아가 되지도 않았어.
---「하악」중에서

비록 우리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일찍 영영 모르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우리는 가족 같았다. 그게 행운인지 저주인지, 흐름을 뒤바꾸어놓은 패인지 순조롭게 만든 패인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이나 머릿속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도 엄마의 몸만은 내가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려 했다.
---「대부호」중에서

아직 어린 벚나무의 성긴 그늘을 지나며 하천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그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운석」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처럼 이따금씩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아니겠냐고 물었다.
---「나방파리」중에서

“참, 사람이 아프다는 게 뭔지. 아픈 사람 마음은 정말, 아무도 모를 거예요. 제가 이 일을 오래할 수 있는 것도, 제 자랑 같아서 말은 잘 안 하지만, 항상 아픈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독재자의 오른발」중에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그 사람이 가지고 올 불확실한 미래까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면, 신오는 지금까지 누구도 사랑해본 적 없었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기란 불가능할 것이었다.
---「원경」중에서

눈앞에서 누가 총을 맞고 쓰러져도,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 상처가 더 아픈 게 인간이야.

---「베인」중에서

출판사 리뷰

“혁명이다!
혁명을 외치면 카드의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다.
혁명이 일어나면 모두가 놀랐고, 웃음이 터졌다.
그런 행운이 자주 오지는 않았고,
혁명을 일으킨다고 꼭 대부호가 되리란 법도 없었지만.”

단 한 장으로 세상을 뒤집는 카드 게임처럼
타인의 이해를, 고통의 의미를,
그리고 나를 전복하는 여덟 편의 이야기


소설집의 문을 여는 「임장」은 뭐 하나 특출난 것 없는 ‘나’가 “자기만의 집을 홀로 마련해야 하는 직장인 여성”(12쪽)으로 이루어진 부동산 임장 모임을 다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나’는 자신과 달리 똑 부러지고 프로페셔널한 모임장 민연 언니를 선망하게 되는데, 어느 날 그런 민연 언니가 갑자기 모임에 나오지 않고 행방이 묘연해진다. ‘나’는 다른 모임원들과 함께 민연 언니를 찾아 나섰다가 이내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도한다.

「임장」 속 사라진 민연 언니의 행방을 좇는 ‘나’처럼 성혜령의 소설 전반에는 어딘가로 향해 가거나 사라진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인물들의 모습이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하악」은 마흔 살의 여성 자인이 각각 발달장애인 동생 태인, 조카 서린을 만나기 위해 “낮에는 북쪽으로, 저녁에는 다시 남쪽으로 이동”(39쪽)한 기록이다. 장애가 있는 동생을, 그리고 집에서 가출해 임시로 얹혀 지낸 조카를 더이상 책임지지 않기로 결정했던 자인의 과거가 차츰 밝혀지며 절정에 다다르는 이 소설은 위선보다 차라리 자기 직시가 윤리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알려주는 강렬한 문제작이다.

「하악」이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결코 건너지를 수 없는 심연이 있음을 보여준다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대부호」는 가족 간의 몰이해 속에서 발견되는 어떤 소통의 실마리를 그린다. 「대부호」는 불의의 사고로 아빠를, 또 산재 사고로 오빠를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여성 ‘나’가, 종일 정치 선동을 하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 시위까지 나가기 시작한 엄마를 맞닥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호’란 ‘나’가 엄마와 함께하는 카드 게임으로, 같은 숫자로 된 네 가지 무늬 카드를 동시에 내면서 ‘혁명’을 외치면 판도가 달라지는 규칙을 지녔다. 너무 다른 세계에 자리한 두 사람이 비로소 서로의 상처를 한자리에서 마주보게 하는 ‘대부호’ 게임은 그 자체로 관계의 커다란 혁명이며, 읽는 이의 마음을 진동하게 한다.

“비록 우리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일찍 영영 모르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우리는 가족 같았다. 그게 행운인지 저주인지, 흐름을 뒤바꾸어놓을 패인지, 순조롭게 만든 패인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_「대부호」, 84쪽

한편, 「운석」과 「나방파리」는 누군가의 죽음, 혹은 그와 맞먹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 상실을 다룬다. 남편과 사별하게 된 주인공 백주가 남편의 동생이면서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설경에게 받은 운석에서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의미심장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운석」은 이해 불가능한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일이 삶이자 애도라는 메시지를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고조되는 슬픔을 담아 전한다. 반면 「나방파리」는 한때 서로의 힘든 처지에 이입해 친구가 되었다가 어떤 사건으로 멀어진 ‘나’와 종희 언니의 이야기로, 아주 약한 힘으로도 짓이겨져버리는 미물 ‘나방파리’의 이미지를 통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어진 관계의 흔적과 그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죄의식을 그려낸다. 「운석」의 독특한 환상성과 「나방파리」의 비극적인 이미지는 독자의 마음속에 잔상처럼 오래 남아, 상실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애도의 감각과 종결된 관계 앞에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을 생각하게 한다.

군더더기 없다! 대범하다!
단순한 응징이 아닌
뒤틀린 윤리 그 자체를 무대에 올려
독자라는 관객을 시험하는 스릴


「독재자의 오른발」은 진화한 성혜령표 서스펜스를 맛보게 하는 압도적인 작품이다. 입주 간병인으로 살아가는 병옥이 한 노인의 집에 들어가고, 그 노인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보안사에서 일했던 악명 높은 고문관 김무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서사를 그렸다. 간병인 병옥, 환자의 딸 이선, 그리고 환자 무언이라는 세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보호자인 병옥과 피보호자인 무언 사이에 오가는 기묘한 알력을 보여주는 한편, 그 사이에 낀 방관자 이선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조금씩 밝혀지며 충격을 더한다. 악인을 향한 단순한 응징의 서사가 아니라 뒤틀린 윤리 그 자체를 무대에 올려 독자라는 관객을 시험하는 대범한 스릴러이다.

「원경」은 유방암 가족력이 있다는 이유로 연인 원경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신오가 자신이 암에 걸린 뒤 다시 그녀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원경이 이모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 산속의 집까지 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경을 대하는 신오의 뻔뻔함과 비겁함을 포착하는 작품으로, 불행을 피해 달아나려 할수록 오히려 그 불행과 가까워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고전적인 아이러니를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로 펼쳐 보이는 수작이다.

「독재자의 오른발」과 「원경」이 누군가를 돌보거나 혹은 방임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윤리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면, 「베인」은 우리가 과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소설이다. 고등학교 시절 신장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복학한 유급생 ‘나’는 거식증 증세에 시달리면서도 초연하기만 한 친구 의연과 가까워진다. 반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단둘이 지내는 두 사람의 우정은 그러나 어느 날 등장한 보건교사의 존재와 그녀를 둘러싸고 생겨난 오해로 깨어지고 만다. “눈앞에서 누가 총을 맞고 쓰러져도,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 상처가 더 아픈 게 인간”(264쪽)이라는 서늘한 주제를 던지며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는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때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여운 깊은 연민으로, 때로는 차가운 자기 직시의 시선으로, 또한 때로는 봉착된 상황을 일거에 풍자하는 블랙 유머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대부호』는 단편 하나하나가 작가만의 남다르고 새로운 서스펜스의 힘을 느끼게 한다. 어느 한 작품 빠짐없이 놀라운 흡인력으로 읽히는 이번 책은 성혜령 소설세계의 찬란한 전환점이자 2020년대를 기억하는 하나의 이정표 같은 문학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훌륭한 사회소설은 풀어야 할 매듭을 여럿 남기면서도 결코 수다스럽지 않다. 성혜령의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에 대해 말하면서도 사회만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_해설, 이소(문학평론가)

“『대부호』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에도 어쩔 수 없이 나의 맹목적인 공포와, 모자란 이해와, 이기와 좁은 시야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들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들을 쓰는 동안 나와 닮았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려 노력했던 흔적이 같이 읽힐 수 있다면, 기꺼이 애쓴 흔적을 부족한 부분과 함께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내겐 그 어떤 기적보다 감사한 일이다.” _‘작가의 말’에서

추천평

성혜령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2020년대 한국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된다. 사회경제적 격차가 사적 관계에 남기는 균열과 그 틈에서 서서히 소외되고 고립되어가는 개인의 영혼이 섬세하면서도 서늘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스릴러와 서스펜스의 외피 아래, 이곳을 건너는 청년 세대의 불안은 구체적인 얼굴을 얻는다. 『대부호』는 이제 성혜령의 소설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겨울 꽝꽝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처럼 차갑고 투명하던 하드보일드에 낯선 빛이 스며든 것이다. 반투명한 흰빛, 수면에 스포이트로 똑 떨어뜨린 우유 한 방울 같다.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일지라도 어딘가엔 작은 가능성이 스며들어 번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평행선을 걷던 인물들이 문득 스치듯 서로를 마주보는 찰나, 저릿한 슬픔이 밀려와 긴 여운을 남긴다. 한 작가가 한 걸음씩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동시대 젊은 소설을 따라 읽는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자 특권이 분명하다. -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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