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연의 시에서 세계라는 스펙트럼은 꿈과 현실 사이를 유유히 배회하는 ‘검은 양’의 형상으로 마침내 정박된다. 양을 세며 잠드는 행위가 양을 재우는 상상으로 전복되는 순간 부서진 환상은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변형되고, 우리는 그 부서짐 속에서 감각과 사고를 새로이 조합하는 참여자가 된다. 영원을 “영과 원”으로 분절하고, 이를 “원과 영”으로 배치하거나 “원영영원”으로 재조립하듯이 균열은 새로운 연결의 시작점이 된다. 『검은 양 세기』는 우리를 굴절시켜 환영의 더 깊은 안쪽으로 데려가고, 그곳이 우리를 환대하고 있음을 알린다. 부서지고 재건되며 계속되는 환상 속에 머무르기, 그것이 『검은 양 세기』를 “사랑의 산물”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