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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회화 12
리부트월드 13 리버스림버스 16 미자나빔 23 속삭이는 시 31 입석 34 비바리움 36 알람 37 구유에 담긴 시 38 죽 45 열린 해변 47 검은 해변 49 홀 50 토리노의 새 64 환영의 안쪽 - 에게 66 이마고데이 74 빵집이 사라진 자리 76 추구체 78 1029 85 원과 영 88 같다 89 난지도 91 봄날 95 사모바르 - 에게 98 원영영원 100 더블 105 떠오르는 공 106 애프터눈 110 검은빛에서 114 기억과 상실의 모형 116 노르웨이 영화 118 아포스티유 125 귀리와 콩 감자와 호박 127 세 번째 새집 128 시드볼트 133 채석장 138 여름에서 142 에스키스 143 인스톨레이션 151 리버스데이 154 디졸브 161 가정회화집 163 ∀ 168 검은 회화 170 검은 바탕에 흰 글씨 - C로부터 174 검은빛 177 검은 양 세기 178 검은 양털 깎기 - Recoding Film 182 검은회화 183 쓰인 순서 186 작품 해설-정명교(문학평론가) 189 추천의 글-김선오(시인) 224 |
김종연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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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는 게 있다
멈췄을 때 흔들리는 게 있다 이미 열려 있어서 영원히 열 수 있는 이미지 그림자의 광원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채로 물성을 얻는 물질 무생물이 이룩하는 생물의 세계로 사물의 물성을 의심하면 사물의 의심을 받는다 --- 「리부트월드」 중에서 모르는 것을 알 수는 없어요 아는 것을 더 아세요 무른 돌 파쇄되고 있는 돌 한 번 열면 도저히 닫을 수가 없는 미래의 끝 상상하지 않는 삶 --- 「리버스림버스」 중에서 낙천적인 슬픔처럼 2091년까지 남은 보험처럼 다리 달린 환영은 여전히 복도를 걸어 다닌다 환영의 취미는 마음에 드는 문의 손잡이를 쥐었다가 벼락같이 옆문을 열어젖히는 것 --- 「환영의 안쪽」 중에서 차에 치이지 않으려면 차가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망설이지 말고 멈추지 말고 건너가세요 그러면 어느새 건너편에 도착하게 됩니다 --- 「추구체」 중에서 시를 읽는 지금은 다시 잠들기엔 아직 일러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반대로 검은 양을 재워 봅니다 한 번에 한 마리씩 세어 보는 검은 양이 되어서 검은 사람 한 마리 검은 사람 두 마리 잠옷을 입은 채로 불려 나온 검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채로 기뻐하고 슬퍼하며 점점 하나의 구체로 뭉쳐져 지구처럼 거대한 물풍선이 되어 갑니다 --- 「검은 양 세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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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직시하기
집에 사는 식물은 목이 마르면 사람을 부른다 창밖에 고요히 흔들리고 있는― 「비바리움」 『검은 양 세기』에서 프레임은 ‘벽’이 아니라 ‘창’이다. 『검은 양 세기』의 존재들은 표면을 통해 서로를 알아챈다. 유리 수조를 의미하는 ‘비바리움’ 속 식물의 시선이 사람을 향할 때, 그 시선으로부터 인간과 식물을 나눈 유리와 식물의 내면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처럼.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밖으로 절대 새어 나오지 않는 것들, 사람 안에 든 “따뜻하고 쓸쓸한 것”, 슬픔이 품은 “알록달록한 속” 또한 ‘사람’과 ‘슬픔’이라는 표면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풍경과 창을 동시에 보려면 창으로부터 물러서야 하듯, 김종연의 시는 표면으로부터 몇 걸음 물러선 곳에서 시작된다. 표면과 표면 너머,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 물러선 자리에서 『검은 양 세기』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경계를 넘어오는 대신 경계 안에 머물며, 경계의 표면을 통해. 그러므로 그 너머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표면을 직시하는 것이다. 김종연의 시는 집요하게 표면을 본다. 과거나 미래, 다른 어떤 방향으로 달아나 우회하기를 우리에게 허락지 않는다. 오직 우리 앞에 있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그 방식 그대로 보도록 이끈다. 보이는 것을 더 보도록, 아는 것을 더 알도록 우리를 현재에 붙든다. 프레임을 초과하기 바깥으로 모든 바깥의 바깥으로 동시에 열리는 문 문밖에 서 있는 네게 나를 보여 주려고 이 시는 너를 읽기 위해 쓰이고 있다고 ― 「에스키스」에서 『검은 양 세기』에서 기억은 대체로 망가진 프레임이다.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은 망각과 오류로 가득하다. 기억의 텅 빈 구멍으로 느닷없이 착각과 환상이 생겨나고, 더 먼 과거의 기억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스며든다. 그러나 그토록 훼손되어도 프레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훼손을 통해 제 기능을 한다. 이 망가진 프레임들은 쉽게 지워지거나 뒤집히고 서로 겹치거나 넘어서며 의식의 바깥을 향하는 통로를 만든다. 그러므로 김종연의 시에서 프레임은 그릇이나 몸처럼 명확한 물성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시집 가장 앞에 적힌 “動中動”(‘움직임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이 외피로 삼는 ‘움직임’처럼, 김종연의 시는 물성 없는 것들의 물성을 붙든다. 이 물성은 곧 시의 제목으로도 드러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덧씌워 세계를 재건하는 「리부트월드」, 빛에 의해 끊기며 ‘뒤집히는 가장자리’ 「리버스림버스」, ‘그림 속의 그림’처럼 윤회하는 생 「미자나빔」, 캔버스를 초과하는 ‘거대한 밑그림’ 「에스키스」처럼. 붙드는 동시에 사라지는 것들, 나타났다 흩어지는 형체들 가운데서 우리들은 “내내 흔들리고 있는 윤곽”이 되어 무의식 깊은 곳, 환영의 더 깊은 안쪽에 도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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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연의 시에서 세계라는 스펙트럼은 꿈과 현실 사이를 유유히 배회하는 ‘검은 양’의 형상으로 마침내 정박된다. 양을 세며 잠드는 행위가 양을 재우는 상상으로 전복되는 순간 부서진 환상은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변형되고, 우리는 그 부서짐 속에서 감각과 사고를 새로이 조합하는 참여자가 된다. 영원을 “영과 원”으로 분절하고, 이를 “원과 영”으로 배치하거나 “원영영원”으로 재조립하듯이 균열은 새로운 연결의 시작점이 된다. 『검은 양 세기』는 우리를 굴절시켜 환영의 더 깊은 안쪽으로 데려가고, 그곳이 우리를 환대하고 있음을 알린다. 부서지고 재건되며 계속되는 환상 속에 머무르기, 그것이 『검은 양 세기』를 “사랑의 산물”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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