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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오랑은 사람 우탄은 숲 13 아이들 15 스타팅 라인 17 윤달 19 포천 20 사월 22 사과는 조금 좋다 24 개구리극장 25 연천 28 여름 촉감 29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32 풍경 34 혜미의 아파트 36 여름 방학 38 봄이 아니야 40 새해 42 스키 캠프 45 2부 이 세계를 걱정하는 방법 49 우리 영혼의 바닥까지 줄을 내려 사랑을 길어 올리는 동안 52 오늘의 한가운데 55 무릉리 무릉도원집 58 동지(冬至) 61 작게 말하기 63 새에 대한 믿음1 66 불가능 도시 68 타임 코드 71 쎄쎄쎄 74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 77 잘 지내고 있습니다 78 수요일의 사람 80 천사가 아닌 82 생일 85 3부 새해 89 생활과 비생활 91 폭염 94 괴산에서 96 용이게이트볼클럽 98 새에 대한 믿음2 100 몸. 조망되기. 102 오후 104 공원 색칠하기 105 黑 108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 111 가을 인사 114 산책 116 설탕 기둥 118 과적합 120 사랑의 경로 123 해안 순환 버스 126 작품 해설- 박혜진(문학평론가) 129 추천의 글- 이원(시인)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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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수 없는 것을 사랑한다는 건
다행인 일이지만 밤새워 달리는 두 마리의 말은 언제나 가슴 속으로 돌진해 오며 --- 「오랑은 사람 우탄은 숲」중에서 할아버지를 이장하는 날 엄마가 말했다 크게 놀라지 않아도 된다 안 썩었을 거야 등과 엉덩이 살이 반 이상 남아 있었다 그 이후로 엄마에게 꿈 이야기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 여름 과일에서 단맛이 났다 --- 「윤달」중에서 떼어 낸 심장이 식염수 속에서 한동안 혼자 뛰는 것처럼 떨어져 나온 슬픔이 미처 다 걸어가지 못하고 멈추기 전에 낚아야 해요 내가 나를 본 적도 있을까요? 개구리이기 이전에요 영화 속 불운은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을 때요 나는 극장에서 사람 구경을 자주 해요 사람들이 어둠 뒤에 숨어 울고 웃는 걸 반짝이는 죽음이라고 이름 붙였거든요 영화 좋아해요? 극장에 올래요? --- 「개구리극장」중에서 날이 무더워지기 전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초여름 장독대 안에는 분명 매실이 있습니다 --- 「이 세계를 걱정하는 방법」중에서 한편에는 기도하다가 잠든 내가 있고 그런 나를 깨워 묻는 내가 있지 편지는 다 썼느냐고 --- 「잘 지내고 있습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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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안을 맴도는 단어들
모종은 방울토마토 흑토마토 생활은 액자, 안마기 가져가세요 - 「사과는 조금 좋다」에서 마윤지의 시를 읽다 보면 단어들이 자꾸 맴돈다. 입안에서 말들을 굴려 보게 된다. 방울토마토 흑토마토 블루베리 딸기 같은 제철 과일. 액자 안마기 사탕 산책 같은 생활의 말들. 포천, 연천, 괴산, 지명과 수요일, 가을, 동지(冬至) 같은 시기. 여름 방학 운동회 스키 캠프 소원 약속 같은 어린 시절 전부였던 말들. 마윤지 시인은 익숙한 단어들을 꺼내서 새롭게 발음해 보도록 만든다. 되뇌는 동안 생경한 감촉으로 떠오른 단어들은 읽는 이를 낯선 데로 데려간다. 기억 속에 가라앉은 장면들이 상연되는 극장으로. ■ 죽음을 상영하는 극장 나는 극장에서 사람 구경을 자주 해요 사람들이 어둠 뒤에 숨어 울고 웃는 걸 반짝이는 죽음이라고 이름 붙였거든요 - 「개구리극장」에서 개구리극장은 시인이 독자들을 데려가는 장소다. 죽은 사람이 개구리가 되어 만나는 이곳에서는 “언제든 자신의 죽음을 다시 볼 수” 있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어두운 극장에서 어린 시절에 했던 천진한 약속이 그때와 같은 무게로 떠오르고 오롯한 슬픔이 떨어져 나온다. 고요하고 생기로운 개구리극장에는 울고 웃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이가, 그걸 “반짝이는 죽음”이라고 이름 붙이는 시인이 있다. 떨어져 나온 슬픔을 늦지 않게 낚아 올리려는 다정하고 찬찬한 시선이다. ■ 보이지 않는 곳부터 보이지 않는 데까지 묻어 놓는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 무엇보다 많이 만져 보는 거지 나중엔 번쩍 번개가 되는 거지 오렌지색 같은 하늘이 된다 맛도 향기도 - 「동지(冬至)」에서 “보이지 않는 곳부터 보이지 않는 데까지”를 보는 시선은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감각한다. 시인은 스타팅 라인에 선 아이의 “심장의 출발”을, “도착과는 상관없는 일”을 일러 준다. 땅 아래 묻힌 죽음을 생각하며 여름 과일의 단맛을 곱씹는다. 말을 아끼고 차분하게 바라보는 시선 끝에 예감처럼 좋은 순간이 온다. “묻어 놓는 것은 숨기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많이 보고 만지기 위함이라는 태도는 그것들이 “번쩍 번개”가 되고 “오렌지색 같은” 맛과 향을 낸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바람이 불 것이고, 분명 무언가 남아 있을 것이다. ‘장독대 안의 매실’ 같은 작지만 단단한 것이. 오래 귀 기울인 이들에게 찾아온 약속이다. “나타나기 전에 이미 닿아 있는”, 마윤지의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찾아올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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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윤지의 시를 읽는 동안 내 유년의 ‘방학’ 같은 시간을 자주 떠올렸다. 내 인생의 침묵하는 신비. 유년기의 나는 매일 밤 침대 위에서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죽음을 관람했더랬다. 당시에는 천장에 야광 별이 박힌 벽지가 유행이어서 내 방 천장에도 야광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불을 끄면 잠깐 환하게 빛나던 별들은 시간이 지나면 이내 빛을 잃었다. 질 낮은 야광 도료였기 때문이 분명하지만 그때는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빛이 마치 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멀어질 공간이 있다는 건 여기 이곳이 우주처럼 넓은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별들 사이로 죽은 내가 둥둥 떠다니는 상상이 조금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그밤 또 그밤, 내가 버리고 싶었던 이름의 세계는 무엇이고 가닿고 싶었던 존재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기억의 구석에 숨죽이고 있던 나를 만나니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너 매미가 언제 우는지 알아?” 그 시절 그 별이, 빛을 잃어 가던 천장이, 내게는 ‘개구리극장’이었다. 지금 내게는 별이 빛나는 천장 따위 없다. 그러나 이젠 별도 천장도 필요치 않다. 이 시집이 천장이자 열쇠 구멍이다. 이름의 세계에서 존재의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 “매미”는 이름일 뿐이다. 물건들이 바보이듯. 내 대답은 이것이다. “난 네가 언제 우는지 알아.”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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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윤지의 시는 간결하고 깨끗하다. 읽고 나면 알싸하다. 연천 괴산 충주 그릇 돌담 메아리 방울토마토 흑토마토, 둥글게 굴리던 사탕이 남아 있다. “개구리 극장”처럼 “해안 순환 버스”처럼 돌고 돈다.
몸은 어른인데 미성년의 발성이다. 어른의 세계에서 아이를 잃지 않는 화자는 구분 없이 본다. 숨김 없이 쓴다.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언어는 사라지거나 지워진 존재들을 복원시킨다. 마땅한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에게서 멀리 걸어 나온 발”만이 닿을 수 있는, ‘살리는’ 자리, 마윤지가 있는 곳이다. 무해함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무해하고 순정한 마음이 모이면 세상에 빛이 될 수 있을까? 마윤지 시는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보이지 않는 곳부터 보이지 않는 데까지” 희망의 노동을 멈추지 않는 이 시편들을 ‘새로운 윤리’라고 부르자. - 이원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