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마음의 문 13 박사의 사랑 15 이면들 17 겨울의 자그마한 불구경 18 비디오 상영회 22 소녀밴드 24 희수의 낮 26 생활 사전 29 성경의 고백 32 화창한 방식의 싱크홀 34 아주 작은 기복을 가진 36 네덜란드 수업 38 안드로이드 기술관 40 얇은 유리로 덮어 둔 편지 42 수영장에서 45 위태로운 낭독회 48 너에게 1이 있을 때 나에겐 0이 있었고 50 [경기 기록] 51 2부 초라한 감각 55 사랑도 없이 특급호텔 56 도시 차양 60 돌과 해부학 65 나의 인터넷 친구 68 요가 강습 71 무명 화가와 무제의 플래시 74 끝 여름의 보물찾기 79 섬망 해체 82 물에 대한 삽화 86 공통적 개인사 87 여름 안의 동양 88 야간산행 92 3부 일요일에 샐러드 먹기 97 도시적 상상력 98 명상실 창문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100 해피데이 101 라이프 스타일 102 라스트 타워 104 개인학습 106 나쁜 실험 110 리조트 112 가상의 비 115 4부 실재의 거실 121 웨딩밴드는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올 것이다 122 친애하는 블로거에게 125 탱자가 닿는 자리 128 진화론 130 미드나잇 볼케이노 132 귀여운 물리의 목격 136 핑크타운 138 진화론 140 영원히 식물원 언제까지나 동물원 142 러브러브 다마고치 144 작품 해설-선우은실(문학평론가) 147 |
|
그 애의 작은 뇌가 담긴 유리병을 깨트리는 것
설산에 묻힌 연구소의 일조량 열린 문틈으로 도망치는 작은 뇌를 어쩌지 수첩 안에는 낯선 광물과 불 이야기가 있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눈앞으로 내일이 올 수 없을 거예요 마음의 조흔과 …… 결정을 기록합니다 --- 「겨울의 자그마한 불구경」 중에서 창문을 보니 외로운 외계인 하나가 박사를 보려고 벽을 오르고 있었다. 긴 손을 뻗어 창틀을 잡고 실험실 안쪽으로 조금 들어왔을 때, 박사는 안경을 올리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요 속, 하나의 발견이 박사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 「박사의 사랑」 중에서 공룡처럼 죽고 싶어 왜 뼈가 남고 자세가 남고 내가 연구되고 싶어 몸 안의 물이 마르고 풀도 세포도 가뭄인 형태로 내가 잠을 자거나 울고 있던 모습을 누군가 오래 바라볼 연구실 사람도 유령도 먼 미래도 아니고 실패한 유전처럼 석유의 원료가 된대 흩어진 눈빛만 가졌대 구멍 난 얼굴뼈에서 슬픔의 가설을 세워 준 사람 가장 유력한 슬픔은 불 꺼진 연구실에서 흘러나왔지 --- 「야간산행」 중에서 네가 있는 화면을 꾹 눌러 본다. 네 화면으로 내가 조금 나왔을까. 우리가 손을 잡는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가 되진 않지, 응 알지. 복도를 걷는 동안 네가 나의 가설이라 슬퍼지고 전시실 건너편에서 너를 보면 여긴 멸종 위기의 사이버, 마지막 통신이라고 믿게 된다. --- 「안드로이드 기술관」 중에서 나에게 작은 외계인이 있다 아카시아 꽃잎 가시가 빛난다 여기는 숲이에요 미래이기도 해요 꿀로 만든 약 한 숟갈 말도 안 되는 눈빛으로 내가 크네 안녕? 안녕? 안녕? 이제 내 차례의 폭탄을 끌어안을게 그럼 이렇게 터진다 포옹! 하면서, 쏟아져 내린 잔해 좀 봐 너에 대한 은유들이란 말이야 --- 「러브러브 다마고치」 중에서 |
|
네가 되려는 마음
카메라로 서로를 담을 땐, 카메라 안에 카메라 안에 카메라…… 우리는 서로의 컷이 되었다. (……) 그런 거 모르지 친구야, 나는 너에게 들어가고 싶었다 - 「비디오 상영회」 인간은 불투명하다. 불투명하기에 속을 알 수 없고, 그렇게 창출된 내면은 인간의 고유함이 되었다. 그러나 여한솔 시의 화자들은 마치 파인애플 속을 파내듯이 상대의 내면을 샅샅이 파악하려 한다. 카메라나 망원경 등의 렌즈를 경유하여 쏟아지는 관찰의 시선은 ‘너’의 마음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표본으로 만든다. 이때의 시선은 주체 고유의 권력과는 다르다. 내면의 물질화는 ‘너’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를 찍는 ‘너’를 찍는 ‘나’의 모습을 상영하는 것. 나아가 마음을 표본으로 만들어 연구하는 것. 스스로 다마고치가 되는 것. 이는 대상을 향한 궁금증에 더해, 그의 시선으로 보는 ‘나’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궁금증 또한 포함하는 것이다. 이제 마음을 물질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선명해진다. 네가 되어 나를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모두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네가 되려는 마음은 그러므로 나의 것만은 아니다. 너 또한 나에게 ‘네가 되려는 마음’을 품었으면 하는 것, 이것이 여한솔의 시가 보여주는 마음의 역동이다. 셀 수 있는 마음 이것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코드를 만들었으니까요 (……) 어떤 정원이나 인터넷은 길을 잃기 쉽지만 배롱나무 이파리처럼 내려앉는 사랑이란 단어는 셀 수 있어요 거기에 누군가 있습니다 나는 그냥 믿고 있는 것입니다 - 「나의 인터넷 친구」 ‘사랑해’라는 코드는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이 마음을 수신했는지 발신자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다만 믿는다. 사랑이란 단어가 내려앉는 곳에 누군가가 있어서, 내가 보낸 마음이 유실되지 않았을 거라고. 여한솔이 보내는 마음의 코드는 초대장과 같아서 실시간 응답과는 거리가 멀다. 즐겨찾기를 통한 다른 사이트로의 이동에도 ‘철컥’ 하고 문고리 여닫는 소리가 들리는 여한솔의 인터넷 세상은,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사이버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날로그 감성을 보여준다. 셀 수 없는 명사인 사랑이 하트의 개수로 치환되는 세상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하트의 개수가 아니라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는 일이다. 『나의 인터넷 친구』가 주는 아날로그함은 이러한 시차에서 비롯한다. 길을 잃기도 하고, 마음을 전한 뒤 오랜 기다림을 견디기도 하는 장소로서의 인터넷은 MZ 세대의 노스텔지어를 자극할 것이다. 인스타그램 하트 백 개보다 싸이월드 일촌 한 명의 방명록을 더 소중하게 기억하는 이라면 더더욱. |
|
자연이 이미 거기에 있듯 우리의 사랑도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그것을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의 새삼스러운 환기는, 우리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당하는 존재로 있음을 ‘그냥 믿는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가 자신을 남과 같이 사랑하고, 남을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은 아닐까. 진열된 것의 마음을 읽기, 그것의 사랑-당함 가까이에 가는 식으로. -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