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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집
양장
여태천
민음사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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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네가 가난한 이 집의 영혼을 말리는 동안 13
집으로 가는 길 16
다크 나이트 18
집 아닌 집 20
생각의 집 21
별들의 집 22
겨울의 집 24
시간의 집 26
늙은 천사의 집 28
묘비명 30
텅 빈 지옥 32
밤이면 어느 희망의 집에서 33
어쩌다 그 집에선 36
불빛 환한 집 38
그 후로 오랫동안 그 집에서는 40
집을 위한 엘레지 43
집으로 돌아오는 길 47

2부

어제까지의 시 51
밥을 먹다 말고 52
손님은 언제 오는가 54
피도 눈물도 없이 56
횡단보도 58
갇힌 사람 60
도망갈 곳이 없다 62
한강 철교 - 최정례의 「개미와 한강 다리」에 부쳐 64
악마의 생활난 67
다시, 바다에서 70
어떤 사람들은 73
나는 걷는 중이지만 7 6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78
숨 쉬지 않는 시 81

3부

포비아 - 아침 85
포비아 - 저녁 86
포비아 - 진심 88
포비아 - 기원 90
포비아 - 문턱 92
포비아 - 패밀리 94
포비아 - 그림자 96
포비아 - 이웃 98
포비아 - 목줄 101
포비아 - 페이스워크 103
포비아 - 일인용 105
포비아 - 고해성사 107
포비아 - 있다 110
포비아 - 에니그마 112
포비아 - 희망 114
포비아 - 망각 116

작품 해설-김수이(문학평론가) 117
추천의 글-안태운(시인) 146

저자 소개1

余泰天

197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여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스윙』, 『국외자들』이 있으며, 제2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지은 책으로 『경계의 언어와 시적 실험』, 『미적 근대와 언어의 형식』, 『김수영의 시와 언어』, 『현대시론』(공저), 『춘파 박재청 문학전집』(편저), 『김달진 시선』(편저), 『오상순 시선』(편저) 등이 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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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0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24*210*20mm
ISBN13
9788937409523

책 속으로

늦었네.

겨우 한 뼘 햇살이 드는 창가에 서서
두 손을 말리며 너는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지.
그게 마지막 인사인 줄 몰랐네.
--- 「네가 가난한 이 집의 영혼을 말리는 동안」 중에서

친구여, 때가 되면 말할게.
저 많은 글자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때를 놓쳐 끼니를 걸렀을 때
몰빵하느라 길을 잃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이 질병 때문에 죽듯이
생각 때문에 죽기도 하겠구나.
--- 「묘비명」 중에서

혼자 남은 식탁에서 식어 가는 음식을
누군가를 기다리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살아 있는 것들이 죽어 가도 모를 시간이다.
--- 「밥을 먹다 말고」 중에서

당신은 매일 아침 두려움을 벗어나려 애쓰고
당신은 매일 저녁 두려움에 대해 쓴다.
놀랍도록 당신은 무섭게 쓴다.
쓰는 동안 당신은 무서움이 된다.
늦은 밤 쓰기를 멈추고 화들짝 놀라는
당신이 있다.
정말 저 무서움을 내가 썼단 말인가 하고 깜짝 놀라는
당신이 있다.
--- 「포비아 - 있다」 중에서

손톱을 깎다가 손거스러미를 그냥 두는 것처럼
남겨지는 시간이 있다.

내일이면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제가 온다.

--- 「포비아 - 망각」 중에서

출판사 리뷰

안개로 지은 집과 친구

어떤 사물의 마지막 예가 사라지면
그것과 더불어 그 범주도 사라진다는 것을
사랑하는 이의 이름처럼
― 「다크 나이트」에서

『집 없는 집』의 1부는 ‘집’에 대한 꿈같은 형상들로 가득하다. 1부에 모인 시의 제목인 ‘생각의 집’, ‘별들의 집’, ‘겨울의 집’, ‘시간의 집’, ‘늙은 천사의 집’, ‘불빛 환한 집’, ‘희망의 집’ 등이 보여 주듯 『집 없는 집』의 ‘집’은 구체적인 삶의 면면보다 희미하고 추상적인 형상으로 제시된다. 그 형상은 주로 안개나 먼지, 얼음과 흙처럼 부서진 잔해의 이미지로 거듭 그려졌다가 지워지는데, 그래서 여태천의 ‘집’은 차라리 ‘폐허’에 가까워 보인다.

폐허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사람이 떠난 후 오직 시간만이 남은 장소다. 존재했던 모든 것이 시간의 힘으로 흔적조차 사라진 후에 오직 ‘사라졌다는 사실’만이 선명한 곳. 바로 그곳을 여태천의 시는 ‘집’으로 삼는다. 이제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사람과 사물, 사라진 존재들의 ‘집’이다. 그리고 시인은 기꺼이 그 폐허의 일부가 된다. ‘친구’도 소환한다. 친구는 나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 같기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영원한 타인 같기도,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나의 영혼 같기도 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친구와 함께 여태천의 시는 점차 폐허가 되어 갈 삶의 모든 순간을 한 걸음 한 걸음 통과한다.

존재보다 구체적인 생활

자식은 아무리 크게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노인이 원망스럽다. 언제고 세상이 답답하지 않은 적 있었을까. 노인도 자식도 저녁이면 악마가 된다. 누구나 일 분이면 악마가 된다.
― 「악마의 생활난」에서

『집 없는 집』에서 폐허를 꿈처럼 거니는 초연함은 1부에서 그친다. 2부부터는 생활의 면면이 구체적인 물성과 냄새로 불현듯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식어 가는 음식, 이발소의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간판과 무뎌진 가위,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이의 젖어 가는 몸은 그 자체로 무섭도록 매정한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 일상의 장면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속절없이 붙들린다. 육신만큼이나 무겁고 구체적이며 지리멸렬한 먹고사는 일, ‘생활’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은 전화벨 소리처럼 불쑥 끼어들어 나를 흔든다. 옆구리를 훅 찌르는 칼처럼 나를 갑자기 붙들고 길을 물어보는 모르는 사람이나, 치매 앓는 부모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느닷없이 지르는 비명처럼. 생활은 우리가 표정을 감출 새도 없이 “누구나 일 분이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 끝에 16편의 ‘포비아’ 연작 시가 고해성사처럼 이어진다. ‘아침’에 깨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일인용’의 고독을 느낄 때도, ‘가족’과 ‘이웃’에게 부대낄 때도, ‘있음’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진심’에도 불안을 느낀다는 것에, 그 무엇으로도 불안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며. 시인은 쓴다, 시간의 잔해 같은 ‘기억 곳곳의 어둠’을 들여다보며.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두려움보다 무섭게, 쓴다. 무섭게 쓰는 동안 시인은 “무서움”이 된다. 기억 곳곳의 어둠마저 품는 거대한 ‘집’이 된다.

추천평

이 글자들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문득 걸어 나와서 존재하는 듯한,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그저 글자로서 움직이고 있는 듯한. 흡사 영혼의 몸 같은 걸 읽으면서는, 그 글자들이 또각또각 집으로 들어오는 듯도 하고 집인지 집 아닌지 헤매는 듯도 하고 결국 그 집을 그 자체로 놓아두기 위하여 일부러 집을 떠나는 듯도 하다. 그러니까 그대로 두기 위하여. 나는 이 시집을 안개의 처음과 끝처럼 느낀다. 만졌다가 만질 수 없음으로 퍼져 나가는, 만질 수 없다가 만짐으로 머물러 있는. 그리하여 불현듯 되울리는 안개의 말이라고. - 안태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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