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인의 이번 시집은 등고선과 닮았다. 인간이 만든 규칙 사물 구조를 깨트리지도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겹겹”의 세계를 “거듭거듭” “가닥가닥” 펼친다. 현실을 이탈하지 않은 결과로 “온몸이 주름이 된 노파”, 번번이 내 것을 너에게 내어주는 나, 그런 내 안에서 끝나지 않는 “마트료시카 엄마”와 “아빠”는 같은 높이에, 같이 위치한다. 이 부조리를 심각이 아닌 담담으로 만드는 것은 김경인의 기법일까, 갱신일까.
김경인의 등고선을 클로즈업하면 방금 잘린 나무 냄새가 난다. 막 드러난 나이테에 대고 ‘조용한 삶’이라고 불러보게 하는 김경인의 시편을 ‘생활의 윤리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오래 반복되면 생활이 된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능성을 닫은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끝내 생활하는 사람의 편인, 그런 관점.
“나는 살아 있다/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그러니 아무도 용서를 빌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는 사람을 삶의 순례자로 멈추게 하는 여기에 “모자”가 있다. 모자가 감추고 있는 것은 “새로 돋아/아름다운 귀”. 새싹 귀를 가질 수 있다는, “허름한 미래의 모자” 안에도 별이 돋아날 수 있다는 믿음. 김경인의 시적 여정은 이제 거기를 가리킨다. 그것은 이 시집이 우리 모두의 보고서라는 걸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