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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손뼈 세기 …… 13 김현 걷기 …… 51 김선오 눈과 몸 …… 73 안미옥 어디에든 무엇으로든 …… 93 유치를 잃는 시간 …… 105 듣는 빛 …… 109 김복희 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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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사랑. 손은 먼 곳. 인간의 가지. 빛을 향해 끝 모를 듯 자라는 식물들처럼. 무한히 생장하고 무한히 꿈꾸며 살고 싶었다. 타인에게 가닿을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그 능력이 실체화된 것이 손이라면, 나는 그 손으로 밥을 푹푹 떠주고 싶었다. 김이 펄펄 나는 쌀밥을 지어 큰 주걱으로 밥을 푹푹 떠서 돌김과 건네고 싶었다. 한참을 그걸 씹으며 떠들고 싶었다. 가끔 쌀알이 입가에 붙으면 떼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도 손끝을 내밀고 싶었다.
고명재 --- 「손뼈 세기」 중에서 떠나 왔으니 멈추는 게 중요하다. 걷다가 멈추기.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 들어가는 것. 빠져나오는 것. 그 검푸른 생각의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기. 가끔은 내가 어떤 흔적을 남기며 걸어왔는지도 되돌아보면서. 필요하면 뒷걸음질 쳐서 다시 그 자국을 따라 걸어보는 것. 그러다 자국을 지우기도 하고 부러 다른 자국을 만들어보기도 하는 것.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모든 행위가 나아감으로 연결되게 하는 것.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나아감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멈춰 서기는 하나의 나아감이다. 김현 --- 「걷기」 중에서 너에게 ‘보기’란 장면으로부터 기억을 걷어내려는 노력에 가깝다. 이는 네가 너로부터 너 자신을 걷어내고 싶어 한다는 말과 같다. 을지로 풍경을 뒤덮는 서울에서의 모든 기억. 서울에서의 모든 사랑. 서울에서의 모든 절망. 서울에서의 모든 너. 서울에서 나고 자란 너를 이루는 모든 것을 잊으려는 노력. 너는 네가 너를 잊을 때 가능한 보기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있다. 너무나 있다. 여기 없는 것만이 잊힌다. 있는 것을 잊을 수는 없다. 김선오 --- 「눈과 몸」 중에서 귀는 참 열린 곳입니다. 잠든 당신의 귀에 누군가 독을 부을 수도 있고 벌레가 기어들어갈 수도 있고, 시 또는 다른 글을 부을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을 부어둘 수도 있겠지요. 찰찰 넘치게 하세요.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김복희 --- 「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떤 문장은 내가 말로 꿰매어 놓은 둥지 같다. 내가 만들 수 있을지 몰랐던 것인데, 내가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있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그 안에서 한참을 더 살게 되기도 한다. 문장이 읽는 사람을 살게 할 수 있다면, 우선은 쓴 사람이 그 문장으로 인해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문장을 만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숨을 쉬게 하는 안전함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완벽함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말을 했을 때만 가능하다. 무엇에도 끄떡없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는 재봉새의 나뭇잎 둥지처럼. 안미옥 --- 「어디에든 무엇으로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