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도깨비도 해녀도 아니지만
빈 몸 / 숲길에서 / 희망의 입도 / 김포공항에 굴 연결하기 / 존재감에 대하여 / 시루야 놀자 / 귤은 귀엽다 / 안개 속의 소 / 백록담 정기받아 대작가 되자 / 제주공항에서 우두망찰 / 이 몸 입장 / 독자와 집중해서 만나기 / 성산일출봉 신비 체험 / 그 사진에 왜 우리는 없는지 / 길은 어디에서나 잃을 수 있다 / 용서할 수 없는 마음 2부 나는 오늘 새가 될 것이다 겨울 메모 / 가을 메모 / 여름 메모 / 봄 메모 / 내 아들이 돌이 된다면 / 잘 살아도 내 덕 못 살아도 내 덕 / 소나무도 있지만 수선화도 있다네 / 지옥에 간 사람들이 받는 벌 / 절대로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자원은 무엇일까요 / 백지 만들기 / 간절함은 끝없이 추구할 수 있다 / 까마귀 거느린 강림 도령 보시오 / 죽어서 새 되는 이야기 / 내가 썼지만 내가 안 쓴 것 / 도깨비 만나게 해주세요 에필로그 나는 섬 출신이다 |
ㄱㅂㅎ
김복희의 다른 상품
|
시인으로서 나는 도깨비도 아니고 해녀도 아니다. 심방처럼 애써서 자신을 열어 남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역할이다. 듣는 일은 가만히 나 죽었소, 하고 듣는 게 아니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 귀를 열게 된 이후로 나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특별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게 됐다. 시 쓰는 것이 즐거워졌다.
---pp.34-35 세 번의 등산 끝에 드디어 만나게 된 백록담. 그 백록담에 하늘과 구름이 비치고 있었다. 흰 사슴이 어울렸다. 하산 후 사흘 내내 다리를 질질 끌고 다녔지만 후회는 없었다. 산 위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과연 백록담이 내게 대작가가 될 기를 주었는가 하면, 주었다 믿겠다. 소망이 근거다. ---pp.53-54 시처럼 살았다는 말이 늘 낭만적이고 행복하게 지냈단 말은 아니다. 아직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시는 행복한 사람을 위한 장르가 아니다. 하지만, 행복한(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도 시를 읽으면 아, 내가 아주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구나, 알게 해준다. 이게 나쁜가? 지금보다 제주에 가기 힘들었던 시절, 젊은 부부들이 제주로 신혼여행을 가던 시절, 그때의 사람들 반 이상이 지금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사진을 내려놓았다. ---p.75 누가 보는지 누구에게 소용되는지 알 수 없는 꽃을 심는 지난한 일, 아름다움에 복무하지만 아름다운 일인 줄 모르는 텅 빈 일, 불합리의 일부이며 전체가 되는 일이 지옥에 간 사람들이 받는 벌이다. 이 지옥을 상상한 후 마음이 차분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가 증오했던 사람들도,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던 불구대천의 원수들도 죽어서는 같이 꽃을 심고 있을 것이다. ---p.125 시는 현실 논리로는 설득하기 어려운 진실을 망상으로 잘 덮어 우리에게 내어준다. 피와 땀으로 걸러진 생생하고 괴로운 사실을 언어라는 실로 짠 후 추위에 떨지 말고 덮으라고 준다. 우리는 그 얇은 이불을 덮고 때로 그 이불을 기우며 그 이불을 덧대 다른 사람들을 들이고 함께 잔다. 이런 것을 망상의 좋은 일이라고 하면 안 되나. ---p.158 섬 출신이라는 구체적 진실만큼이나 섬적인 상태 추구라는 추상적 지향도 한 인간의 근본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또 어떤 것을 쓰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섬이 있으니까. 쓸 수 있겠지. 쓰겠지. 무엇이든. ---p.178 |
|
· 나의 희망은 제주도에 있다
시인의 희망은 제주에 있다. 그건 시인의 친구 이름인 ‘희망’이기도 하고, 사전적 의미의 희망이기도 하다. 시인의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 염치 불고 희망의 집에 머물면서 시루와 놀고, 책을 읽고, 각종 글을 마감한다. 화급한 마감이든 여유로운 마감이든 상관없이 제주에서는 어떻게든 쓸 수 있다. 그것이 시인에게 희망일 것이다. 시인은 백록담의 정기를 받아서라도 대작가가 되고 싶다. 하나 정작 제주도의 자연 앞에서는 그저 경외에 휩싸이고 만다. 그 자연의 일부가 되느라 바쁘다. 시인은 제주에 기대어 자신의 시를 말하기도 한다. 친구 희망과의 대화가 시가 되고, 반딧불이 숲 체험이 시가 된다. 4·3을 생각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시가 된다. 그 시들은 제주에서 최대한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대작가라 하기에는 무척 소소한 일이겠으나, 시란 원래 그런 것임을 제주의 바람이 시인에게 고요하고도 단호하게 일러주고 있다. · 그 섬은 아름다움으로 꿈틀거린다 시인은 제주의 산과 바다에만 들르지 않는다. 시인은 무가와 설화, 서예와 사진을 두루 넘나들며 제주의 곳곳을 ‘놀러’ 다닌다. 시인은 ‘영실 탐방로’의 기암을 보며 〈오백장군〉 설화를 들려준다. 500명의 아들이 본인들을 줄 죽을 끓이던 어미가 큰솥에 빠져 죽은 줄도 모르고 어미가 고기가 되어버린 그 죽을 먹고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시인은 내처 위 모티프로 만들었다는 ‘제주돌문화공원’에까지 간다. 가서 이러저러 공연한 생각에 빠진다. 〈가믄장아기〉 설화도 시인에게 인상 깊은 이야기다. 시인은 어떤 일이든 온전히 내 덕이라 말하는 가믄장아기의 꿋꿋함과 결연함에서 지금 세상의 많은 여성을 떠올린다. 〈설문대할망〉과 〈지장아기씨〉까지 제주의 이야기는 시인을 거쳐 독자에게 시가 되어 도착한다. 이 밖에도 제주에 유배와 예술가로 길이 남은 추사 김정희, 외로움과 평화를 간절함으로써 사진에 담아낸 김영갑까지 제주의 모든 게 김복희에게 놀이이고, 시이다. 시인은 말한다. 도깨비를 만나더라도 재밌게 놀 자신은 있다고. 그 놀이는 바로 시일 것이다. 그 놀이의 과정과 규칙이 바로 이 책, 『백록담 정기받아 대작가 되자』에 적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