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의 『사계절 시네마』를 읽으며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영화는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이었다. 얼마 전 또 한 번 개봉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난 뒤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겨뒀다.
〈에너지! 에너지! 에너지!〉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와 함께 감독의 사랑 영화 3부작을 이루는 이 작품에서 배우 드니 라방이 분한 알렉스는 거리의 부랑자이자 불을 뿜는 곡예사로, 불현듯 찾아온 사랑에(미셸) 모든 걸 건다. 그리하여 그는 최후에 가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 발사됐어야 할 숨겨둔 총알로 자기 손가락을 날려 버리기에 이른다. 마시고 뛰고 재주넘고 춤추며 타오르던 그가 불길이 꺼져버린 눈으로 눈 쌓인 퐁네프 다리 위에서 희미하게 짓던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영화는 보여주지 않지만, 그 〈알렉스-드니 라방〉은 이제 불을 뿜는 거리의 곡예사가 아니라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시를 쓰는 〈불구-시인〉으로 거듭났을 것이다(그가 미셜에게만 알려줬던 사랑의 밀어를 보라!).
시와 영화, 시인과 곡예사를 디졸브하며 나는 조심스레 예감했다. 근래 한국 시단에서 희박해진 불순-과잉-낭만의 에너지를 정경훈이, 그의 시편들이 채워줄 것이라는 걸. 그가 〈시단의 드니 라방〉으로 자리매김하여, 시대의 공기(감수성)에 조응하면서도 〈실험적인 컷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기를 바란다. 당신의 로케이션이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