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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_ 용기 내어 하는 말 9
6월 1일 시 차와 침 15 6월 2일 에세이 보호자-되기/보호받기 19 6월 3일 에세이 이토록 짠 31 6월 4일 에세이 이렇게 명랑 37 6월 5일 시 환승과 수락 43 6월 6일 시 카드와 뺨 47 6월 7일 시 냄새와 동물 51 6월 8일 에세이 비인간적 장면 셋에 대한 인간적 감정 하나 55 6월 9일 짧은 소설 우리들의 새로운 도시 67 6월 10일 대화 백년 중에 하룻저녁 75 6월 11일 시 좋음과 싫음 95 6월 12일 시 유월과 생일 99 6월 13일 에세이 3호선 내러티브 103 6월 14일 시 단지와 역사 115 6월 15일 시 분류와 대조 119 6월 16일 시 욕망과 허구 123 6월 17일 에세이 야구, 좋아하세요? ……아니요. 네. 127 6월 18일 에세이 아마도 당신은 137 6월 19일 에세이 제 친굽니다 141 6월 20일 짧은 소설 운하에서 147 6월 21일 시 엔딩과 앤드 157 6월 22일 편지 받는 사람 없음 159 6월 23일 에세이 사직동 165 6월 24일 시 사주와 영업 175 6월 25일 시 유리와 파전 179 6월 26일 짧은 소설 물구나무를 서다 183 6월 27일 시 꿈과 대화 195 6월 28일 에세이 뜻밖에도 201 6월 29일 시 산과 집 207 6월 30일 에세이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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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네 시간 넘게 소요됐다. 경과는 나쁘지 않았고 차차 회복되어갈 것이라는 판단을 의사는 들려주었다. 아내는 병원 침대에서 아이와 함께 생활했다. 나는 직장과 병원을 오가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했다. 보호자가 둘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몸에 붙인 줄을 떼고, 입으로 분유를 먹고, 가끔 옹알이도 하는, 환자복을 입은 삼십 일 아기를 함께 바라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휴게실에서 즉석밥과 컵라면을 교대로 먹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이는 회복되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회복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아빠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의 보호자는 명백히 아이였다.
--- pp.26-27 「6월 2일 보호자-되기/보호받기」중에서 한 인간이 완성되는 데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 인간이 파괴되는 데에는 수십 초의 시간도 어쩌면 길다. 한번 파괴된 인간이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한번 누군가를 파괴해본 인간더러 여전히 인간이라 해도 되는 걸까. 인간 대 인간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가만, 만약에 우리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하늘의 별을 세며 길을 찾는 존재가 처음부터 아니었다면, 모든 게 괜찮지 않았을까. 그게 더 나은 게 아닐까. 나무를 베어 펄프를 가공해 화학물질을 발라 책을 만들지 않아도 됐지 않았을까. 우리가 굳건한 나무였다면, 우리가 약한 짐승이었다면, 우리가 고양이였다면! 선생님, 이 댓글은 고양이가 남긴 것입니다. 이 별점은 고양이의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용서할 수 있었을 텐데, 인간은 인간을 비로소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인데. 물론 독자에게는 책을 평가할 권리가 있다. 오늘은 놀랍도록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책의 독자 의견란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이다. 원래 생각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인간이라서 생각이란 걸 하게 태어나버리는 바람에. --- pp.65-66 「6월 8일 비인간적 장면 셋에 대한 인간적 감정 하나」중에서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겠지요. 당신이 여행을 떠난다면, 치밀한 계획을 짜는 사람입니까,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까? 모르겠다고 하지 마세요. 무엇이든 답하세요. 그렇군요. 당신은 주저하는 사람이군요. 세상 사람을 주저하는 사람과 단호한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답니다. 당신은 주저하는 마음으로 결정한 주말여행의 계획을 치밀하게 설정했습니다. 출발하는 시간과 도착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사이에 들를 곳과 먹을 데를 빠짐없이 메모장에 썼습니다. 세상 사람을 기록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계획한 시간에 맞춰 도착한 갈치구이 맛집은 노키즈존이었고, 당신의 세상은 뼈째 발라졌습니다. 세상 사람을 키즈와 노키즈로 나눌 수 있을까요? 어쩌면요. 어쩌면 세상 사람은 영원히 서로를 찌르고 베고 할퀸 채 둘로 나뉘고, 그 둘은 또다시 목을 조르고 콧잔등을 내리치고 머리칼을 잡아당겨 둘로 나뉘고, 그 둘은 역시나 눈알을 찌르고 손톱을 빼고 살점을 으깨어 둘로 나뉠 수 있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수학의 영역이군요. 세상 사람은 수학을 할 줄 아는 사람과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이러한 추세라면 세상 사람들은 영원 --- pp.120-121 「6월 15일 분류와 대조」중에서 아이는 중턱에서 숨을 고르며 이제 집에 가면 안 돼요? 묻는다 집에 가야지 하지만 정상이 곧이야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아깝지 않니 집은 언제든 갈 수 있고 정상은 오늘이 아니라면 또 언제 가보겠니 하지만 아이는 솔방울처럼 보채고 아이의 목소리가 작고 따갑다 어째서인지 산은 점점 멀어진다 (……) 집을 생각하니 산이 높기만 하다 영영 높아질 것만 같다 그곳에 닿지 못할까봐 두렵다 집이 없을까봐 무섭다 그만 내려갈까? 그 말을 하지 못해 메스껍다 아이가 나의 실패를 목격할 것이 두렵다 아이가 나의 두려움을 알아챌 것이 무섭다 아이에게 좋은 집을 학원가를 학군을 공원과 호수와 강이 보이는 집을 미래를 주지 못할 것 같다 무릎에 양손을 대고 허리 굽혀 숨을 몰아쉬니 솔방울이 말을 건다 아이가 아까 참에 집에 갔다고 가고 싶은 집이 있어 다행이지 않으냐고 나는 타박타박하는 소리를 부러 내며 정상을 등지고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등을 쓰다듬으려 --- pp.208-210 「6월 29일 산과 집」중에서 많은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상상하거나 걱정하듯 저 또한 그렇습니다. 은재가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엊그제에는 은재 학교 숙제로 가족들의 응원 메시지를 쪽지에 적어 오는 게 있었어요. 그걸 학교 복도에 설치한 희망 나무에 건다고 하더군요. 저는 거기에 은재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하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은재에게 말하니 은재가, 이 써! 노래하듯 따라 합니다. 그러면 저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모든 게 노래가 되면 좋겠습니다. 은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의 무엇이든 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노래일 수도 있겠죠. 그럼 우리는 서로를 노래하듯 부를 텐데요, 마치 은재가 아빠를 부르는 것처럼. 수만 가지 멜로디와 리듬과 화음을 갖고서요. 적당한 몸짓도 섞어가면서. 그건 춤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참 귀할 것 같습니다. 그것참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가끔은 슬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이 노래라면, 시가 노래라면, 우리가 노래였다면. --- pp.213-214 「6월 30일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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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편집자로, 삶을 읽고 씀으로 살아내는 그이니 6월 한 달 서른 편의 글 면면은 다양합니다. 시와 에세이의 뼈대 사이사이 인터뷰와 편지가 있고, 세 편의 짧은 소설도 담았습니다. 다만 꾸림과 벼림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여서일까요, 하루는 시고 다음날은 에세이인 자유로운 흐름 가운데 이것 분명 한 권의 책이고 하나의 이야기구나 알게 됩니다. 어느 꼴이든 이 모두 ‘삶’의 단면인 거지요. 절반을 뚝 자르면 보이는 진짜 얼굴, 때로는 소소하게 때때로 절실하게 살아내어 살아가는 이야기. 그도 분명 그렇겠습니다. 언제나 『좋음과 싫음 사이』에 있는 것, 삶이기도 하니까요.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써나갔다. 빈 문서 앞에서는 늘 용기가 필요하다. 아까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이 용기의 뜨거운 원천이 된다.마흔이 넘었으니 이제 생의 절반이나 왔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평균이라는 걸 따져보니 얼추 그렇다. 지난 절반을 바라보며 용감해졌다. 앞으로의 절반을 내다보며 무쌍해지려 한다. 그다음 다시 손을 펴볼 일이다. 무엇이든 묻어 있으면 좋겠다. ─본문 중에서 좋음과 싫음, 엔딩과 앤드 책 속에는 참 많은 이가 등장합니다.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나의 보호자” 첫째와 나의 ‘쌍둥이’ 둘째, 손맛과 짠맛으로 기억될 할머니, 자랑스러운 나의 소설가 친구만 아니라 “뜻밖에도” 재회한 이십 년 전 만남도 있지요. 고향인 광주, 유년의 공간 사직동, 삶의 터전인 서울 3호선을 따라 살았던 집들과 살 수 없었던 아파트를 지납니다. 그러니까 6월 한 달에 한 시인의 삶, 그 궤적이 통째 담길 수도 있겠습니다. 절반이란 돌아봄에 적절한 때이니까요. 지난 절반을 바라보며 용감해진 시인은 앞으로의 절반을 내다보며 무쌍해집니다. 절반이란 다짐에도 적당한 때로구나 합니다. 많은 시의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이어질 듯 끊어진 시는 끊긴 듯 이어지는 날들로 향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남은 이야기가 있는 거지요. 그 모두 끝없고 어김없는 질문들이어서, 답과 답 아닌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혹은 우왕좌왕 흔들리거나 흐르거나 합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다음이 있는 것이겠지요. 좋음 혹은 싫음으로 딱 떨어지지 않고 뚝 맺지 않는 질문으로 시인은 다음을 살고 다음을 씁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전철을 타며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보았는지. 대략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 한강의 윤슬처럼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삶은 추악한 것이라고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처럼 무심히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광고 판넬은 답을 주지 않을 것이었다. 역은 다음 차례의 역을 부르고 시간은 다음 순서의 시간을 부를 것만이 확실했다.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전철에 잘도 서 있는 사람들처럼 끝내 이동하며 살 것이었다. 답을 쉬이 찾지 않으며, 답을 믿지 않으며, 그러나 답을 갈구하며. ─본문 중에서 가끔은 슬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인에게 야구를 좋아하는가 물으면 “네니요”라 대답합니다. 아픈 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일은 아이로부터 보호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고, 고향이란 언제나 복잡하게 슬프고 온전히 자랑스러운 나의 동네입니다. 이토록 삶은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것. 그것은 사는 동안, 죽을 때까지 그러할 테고요. 물이 반이나 남았네 혹은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물 절반 담긴 잔 앞에서, 물 대신 흔들리는 것 아무래도 마음이고 삶입니다. 다만 기왕 떠둔 물이니까요, 좋지만도 싫지만도 않은 삶의 가운데, 시인을 따라 지난 절반과 앞으로의 절반, 두 손바닥 반씩 모아 기도할 수는 있겠습니다. 복잡하고 혼란한 삶의 한가운데서, 오직, 평화를 빕니다. 이건 우리 둘째(또!) 이야기. 녀석은 요즘 죽음에 골똘하다. 멀쩡하게 주말을 보내놓고는 잠들기 전에 엄마도 아빠도 언젠가는 죽는 게 아니냐며 운다. 구슬프게 울다 잠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우스의 아들과는 다르게 생의 의지가 솟구친다. 아프지 말아야지 다짐도 한다. 결국은 불가능한 일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그럴 때 삶이 싫지만은 않지만, 언젠가 끝날 거니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그저 그 사이에 있다. 하지만 당신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복잡하고 혼란한 삶의 한가운데서, 오직 평화를 빕니다. ◎ ‘시의적절’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시詩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제철 음식 대신 제철 책 한 권 난다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 이름하여 ‘시의적절’입니다. 시인에게 여름은 어떤 뜨거움이고 겨울은 어떤 기꺼움일까요. 시인은 1월 1일을 어찌 다루고 시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맞춤하여 틀림없이, 매일매일을 시로 써가는 시인들의 일상을 엿봅니다. 시인들에게 저마다 꼭이고 딱인 ‘달’을 하나씩 맡아 자유로이 시 안팎을 놀아달라 부탁했습니다. 하루에 한 편의 글, 그러해서 달마다 서른 편이거나 서른한 편의 글이 쓰였습니다. (달력이 그러해서, 딱 한 달 스물아홉 편의 글 있기는 합니다.) 무엇보다 물론, 새로 쓴 시를 책의 기둥 삼았습니다. 더불어 시가 된 생각, 시로 만난 하루, 시를 향한 연서와 시와의 악전고투로 곁을 둘렀습니다. 요컨대 시집이면서 산문집이기도 합니다. 아무려나 분명한 것 하나, 시인에게 시 없는 하루는 없더라는 거지요. 한 편 한 편 당연 길지 않은 분량이니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가벼이 읽으면 딱이겠다 합니다. 열두 달 따라 읽으면 매일의 시가 책장 가득하겠습니다. 한 해가 시로 빼곡하겠습니다. 일력을 뜯듯 다이어리를 넘기듯 하루씩 읽어 흐르다보면 우리의 시계가 우리의 사계(四季)가 되어 있을 테지요. 그러니 언제 읽어도 좋은 책, 따라 읽으면 더 좋을 책! 제철 음식만 있나, 제철 책도 있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기획입니다. 그 이름들 보노라면 달과 시인의 궁합 참으로 적절하다, 때(時)와 시(詩)의 만남 참말로 적절하다, 고개 끄덕이시라 믿습니다. 1월 1일의 일기가, 5월 5일의 시가, 12월 25일의 메모가 아침이면 문 두드리고 밤이면 머리맡 지킬 예정입니다. 그리 보면 이 글들 다 한 통의 편지 아니려나 합니다. 매일매일 시가 보낸 편지 한 통, 내용은 분명 사랑일 테지요. [ 2024 시의적절 라인업 ] 1월 김민정 / 2월 전욱진 / 3월 신이인 / 4월 양안다 / 5월 오은 / 6월 서효인 7월 황인찬 / 8월 한정원 / 9월 유희경 / 10월 임유영 / 11월 이원 / 12월 김복희 * 2024년 시의적절은 사진작가 김수강과 함께합니다. 여전히 아날로그, 그중에서도 19세기 인화 기법 ‘검 프린트’를 이용해 사진을 그려내는 그의 작업은 여러 차례, 오래도록, 몸으로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시간으로 그리는 사진과 시간으로 쓴 시의 적절한 만남은 2024년 열두 달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