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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마을에서 병원에서 역전에서 링에서 등산로에서 선산에서 교실에서 시내에서 기숙사에서 저수지에서 연병장에서 안방에서 호수에서 빌라에서 병원에서 6인실에서 아파트에서 강변에서 신도시에서 에세이 : 거기에서 만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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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앞에 잠시 서는 버스를 잡아타고
떠나려 해도 이곳의 모든 행적은 돌고 돌아 다시 이곳에 모였다 거기에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을에서」중에서 그 세계에 그날 본 어린 시신은 없었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자 바깥에 있는 구불구불한 세계 나는 글자를 읽기 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글자를 모르는 것은 몸을 구부리고 양수에 숨어 있는 기분이지 않을까 까만 평화가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잘린 엄지손가락의 지문 그것을 글로 쓰려면 한 시대가 걸리겠지만 그렇게 글을 아는 사람은 글로 써야 하겠지만 ---「역전에서」중에서 등산로의 살얼음이 우리를 비추었다 새로 뜬 해가 녹일 수 있는 게 없었다 살얼음 아래에는 진짜 얼음이 차이가 있는 불행을 모두 쓸어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실족사라 불렀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언제나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완전히 새로울 가능성이 줄어든다 ---「등산로에서」중에서 그가 죽기 직전 끌려다니던 길에서 그가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두 발로 가보려고 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남긴 발자국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우리가 다져지는 중이다 무참한 일상이고 슬픔이고 다 합쳐서 이상한 자랑인 길바닥에 발바닥을 문대면서 ---「시내에서」중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두 발로 딛고 선 죽음을 잊으려 한다 더 멀리 뛰지도 않으려 한다 대신에 더 오래 기다리려 한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채로 ---「병원에서」중에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이 계속해서 입을 헹구게 하는 원동력이다 돈을 벌고 쓰고 갚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내가 이렇게 세상 전부를 다 가진 사람이다 옆 차선에서 외제차가 무리하게 끼어들지만 이마저도 무참한 사람이라고 치자 ---「강변에서」중에서 아이는 아이의 속도대로 천천히 말을 한다.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유려한 말을 사랑했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삶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아마도 둘 다 잘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둘 다 해낼 것이다. 잘한다는 게 다 무언가? 어떤 말은 큰아이보다 내가 더 못하는 것 같다. 가령 이런 말이다. 나의 딸은 다운증후군입니다, 역시 어렵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래, 죽으면 안 된다는 의지가 더욱 강력해졌다. (…) 나는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의 염치를 가늠할 여지도 없이 그렇다. 삶의 염치는 이러저러한 죽음을 기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대부분은 염치없이 삶을 지속하는 셈이다. ---「거기에서 만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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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마흔한 번째 출간! 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마흔한 번째 시집, 서효인의 『거기에는 없다』 를 출간한다. 장소에 관한 정념을 담은 시집 『여수』로 〈대산문학상〉과 〈천상병시문학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시 세계를 다져온 서효인 시인은 피하지 못한 내면의 분노와 슬픔을 그만의 시적 언어로 잘 담아냈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가 다섯 번째 내놓은 이번 시집 『거기에는 없다』 에는 시간의 기억으로 점철되는 심연에 존재하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와, 시공을 가로지르는 그 삶의 편린들이 확장되어 담겨 있다. 순식간에 덮쳐오는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완성시킨 시인은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 아름다운 운율미를 간직한 시 20편과, 시간적 경험이 곧 예술이 된 감동적인 에세이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말은 뜨거웠지만 애초에 작가가 의도해둔 방백처럼 차고 고요”(이소호 시인)한 시를 통해 독자들은 내부와 외부가 혼재하는 묘한 부딪침을 경험하게 된다. 오은경의 시집 『산책 소설』로 시작한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Ⅶ』은 박상수, 장수진, 이근화, 서효인과 더불어 이혜미 시인이 함께해 보다 넓은 시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서효인 시집 『거기에는 없다』 서효인 시인의 시는 잘 만든 한 편의 ‘페이크다큐’를 보는 것 같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시 속의 화자에 이입한다. 그리하여 각자의 삶을 투영하고 분절하여 과거와 현재를 끈질기게 이어 붙인다. 말과 글의 힘을 아는 화자는 자신의 고향 광주를 떠올리며 외지인에서 현지인으로 편입하기 위해 언어를 조금씩 다듬어나간다. 화자에게 고향은 “떠나려 해도 이곳의 모든 행적은/돌고 돌아 다시/이곳에”(「마을에서」) 모일 수밖에 없는 기이한 공간이다. 벗어나려 할수록 붙잡히는 세계이며, 폭력과 공포로 얼룩진 “문자 바깥에 있는 구불구불한 세계”(「역전에서」)이다. 화자는 어린 시절 신작로 구석에 처박힌 파란 트럭과 함께 널브러져 있는 어린 시신을 목격(「마을에서」)한 이후 벗어날 수 없는 잔상에 사로잡히며, 무수한 폭력이 깃든 일상 속에 내던져진다. 아이들을 곤죽이 될 정도로 체벌하던 수학 선생은 “김대중과 해태를 좋아했겠으나”(「교실에서」) 자신의 기분에 따라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을 향해 야구방망이를 무참히 휘두르며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다. 결국 화자는 고향을 떠나 신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쓰면 쓸수록 어디까지가 나의 이야기인지”(「신도시에서」) 혼란을 느낀다. 어떨 때는 자신이 파란 트럭에 치인 어린아이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수학 선생인 것 같다가도, 식당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오공청문회를 보며 점심을 해결하는 누추한 일꾼인 것 같기도 하다. 발설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을 것 같이 거침없는 문장을 쏟아내는 시인의 이야기는 곧 반성으로 점철된 문학이 된다. 그는 직면하는 모든 상황 속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이/계속해서 입을 헹구게 하는 원동력”(「강변에서」)이라는 다짐으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독자들은 시인이 이어붙인 자신의 내면화된 세계 안에서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살아가는 자의 용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핀 시리즈 공통 테마 에세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붙인 에세이는, 시인의 내면 읽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출발한다. 이로써 독자들이 시를 통해서만 느꼈던 시인의 내밀한 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이 에세이가 ‘공통 테마’라는 특별한 연결고리로 시인들의 자유로운 사유공간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서로 다른 색채로, 서로 다른 개성으로 보여주는, 깊숙한 내면으로의 초대라는 점은 핀 시인선에서만 볼 수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다. 서효인 시인의 에세이 「거기에서 만난」은 한 공간에서 벌어진 죽음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그가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대하는지 보여준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민주화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길가에서 파란 트럭에 치여 널브러진 사내를 보았으며, 식구들의 밥상을 챙기던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운영하던 함바집 티브이를 통해 보았던 오공청문회의 한 장면을 복기한다. 같은 공간과 같은 말투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시인에게는 모든 죽음이 지나칠 수 없는 잔상으로 남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 대해, 염치없이 삶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래, 죽으면 안 된다는 의지가 더욱 강력해졌”으며 그러한 염치없음으로 “이러저러한 죽음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서효인 시인에게 시는 수많은 죽음을 뒤로 하고도 살아야 할 생의 의지에 대한 표명일지도 모른다. 그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인 시 쓰기를 통해 잘하지 못해도 의지만으로 해내는 일을, 죽지 않아 다행인 모든 삶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독자들은 온기 어린 그의 문학으로 폭력과 평화, 죽음과 삶을 체험하며 다정한 위로를 받게 된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채지민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특색을 갖춰 이목을 집중시키는 핀 시리즈 시인선의 이번 시집의 표지 작품은 최근 건축적 요소를 통한 공간성 위에 인물과 상황의 어긋난 이미지 등을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한 화면을 보여주며,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채지민 작가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구성된 독창적인 시인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시편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시와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 채지민 Jimin Chae 1983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및 런던 첼시대학 석사 졸업. 서울, 런던, 뉴욕, 상하이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그룹전 개최. 국립현대미술관, 홍콩 현대캐피탈 등에 작품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