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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서초동 사는 잉그리드 버그만 김상혁 〈늑대와 춤을〉 가족 시네마 유재영 〈라 붐〉 〈라 붐 2〉 참 얄궂은 프랑스 양파 수프 이명석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를 ‘말한다’는 것. 그 기분 좋은 무력함에 관하여 송경원 〈미이라〉 우물 이야기 김남숙 〈신밧드의 대모험 호랑이 눈깔〉 그날 만났던 괴물들을 또다시 만나다 박사 〈인디아나 존스〉 모험이 날 그렇게 했다 이다혜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라이온 킹〉 〈라이온 킹〉 〈십계〉 〈우뢰매〉 처음 본 것들의 꼬리를 잡고 서효인 〈패왕별희〉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를 만드는 것들 박연준 〈페드라〉 여전히 봄이어서 꽃 몸살을 앓는 너에게 강수정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권민경 불법 클래식 테이프와 심야 라디오 김겨울 이방의 노래 김목인 지금도 꺼지지 않는, 오래전의 붐! 나푸름 링고의 정원 민병훈 언더그라운드의 언더그라운드 서윤후 동경 송지현 내 사랑 내 곁에 유희경 겨울, 맨 처음에 놓인 늘 마지막 음악 이기준 음악의 형태 이희인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우리는 〈연극이 끝난 후〉를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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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주말의 명화’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곡이 토요일 늦은 밤 TV에서 흐를 때면 내 심장은 터져나갈 듯이 뛰었고, 그토록 흥분했다는 사실을 가족이 아는 건 어쩐지 싫었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의 방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어서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 p.10 심지어 그 방에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동안만은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깊은 애정마저 느꼈던 것 같다. 영화에 빠져 있을 때 가족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 않는 그들의 옆모습이 나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주곤 했다. --- p.20 비디오 대여점의 첫인상은 좀 어둡고 습했다. 그 느낌은 연소자 관람가에서 중학생 이상 관람가와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가 뒤섞인 구역을 지나고 미성년자 관람불가에 다다르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황급히 연소자 관람가 코너로 돌아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 p.28 형이 비디오플레이어 앞으로 가서 되감기 버튼을 누르자 맹렬한 소리를 내던 기계는 잠시 뒤 테이프를 토해냈고 문을 열고 머리를 내민 테이프에선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뒤에 생소한 장면을 하나 더 목격했다.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 p.32 내가 살던 읍엔 극장이 하나 있었다. 항상 영화를 틀지는 않았고, 정치 집회나 약장수 공연 같은 걸 하면서 간간이 철 지난 필름을 걸었던 듯하다. 옛날 신문을 뒤적이니 지구당 대회에 깡패들이 들이닥쳐 수십 명이 다치는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어쨌든 방학식을 하는 날엔 만화영화를 틀었다. --- p.41 〈더티 댄싱〉의 춤을 따라 하는 남고생들과 〈라 붐〉을 본 뒤 비를 맞고 걸어가는 남고생들 중에 어느 쪽이 더 징그러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 p.44 나의 첫 영화를 떠올리면 말의 무기력함이 먼저 생각난다. 신비로움이라고 해도 좋겠다. --- p.56 영화는 물질이 아니다.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는 내용도 아니다. 그날의 날씨, 영화를 보러 가기까지의 시간, 극장의 분위기, 낡고 불편한 극장 의자의 삐거덕거림,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극장 밖을 나섰을 때 뇌리를 스치는 생각까지, 모든 체험이 영화다. --- p.62 여자에게는 〈미이라〉 영화표 두 장이 들려 있었고, 여자의 눈에서는 포스터 속의 브렌든 프레이저와 레이첼 와이스보다 더 깊은 우물이 보였다. 그러니까, 우물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우우무울이라고 말할 정도의 슬픔이 여자에게서 느껴졌다. 여자는 왜 매번 우물이 아니라, 우우무울이었을까. 나는 해앵복한데, 여자의 우우무울을 생각하면 나는 자아아꾸 조용한 아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 p.74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마음을 가라앉힌 엄마는 내게 “영화는 어땠어?”라고 물어봤다고. 나는 간명하게 세 줄로 영화를 요약했다. “막 달려가는 거야. 막 쏘는 거야. 그리고 막 죽는 거야.” 아쉽게도 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아마도 내 인생의 첫 번째 영화였을 텐데. --- p.84-85 모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낯설고 신기한 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미지의 땅, 미지의 보물, 미지의 인연. 책도 영화도 그래서 좋아하기 시작했다. --- p.96 영화가 끝나면 신나고 나른한 기분에 취하는데, 지구 끝까지 달리고 싶다가 나의 모든 꿈과 희망을 말하고 싶다가 했다. 그런 나를 데리고 극장을 다니신 어머니와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영화를 볼 때마다 주인공의 직업을 갖고 싶다고, 영화에 나오는 장소에 가보고 싶다고 혼이 빠져 수선을 떠는 어린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p.100 지금은 당연한 일이 예전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많은데 영화관의 자리가 그러할 것이다. 한때는 먼저 앉은 사람이 그 좌석의 임자가 되었다. 상영관 문이 열리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종종걸음을 하거나 뛰고, 심지어 가방을 던졌다. --- p.119 내가 기억하는 첫 영화는 없는 것 같다. 허망한 결론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첫 영화는 아마도 할머니인 듯하다. 랄프와 바넬로피처럼 랜선과 와이파이를 타고 온 세계를 떠돌면서 당신이 있는 요양원에는 가지 못한다. 내게 가장 이타적이고 그래서 가끔 이기적이었던 당신의 그곳 자리는 과연 명당일는지, 알 수 없어서 가끔 마음의 스크린이 시커멓다. 시커멓게 잊은 채로 시간이 간다. --- p.121-122 우리가 본 영화들은 우리를 통과해 지나가지만, 모두 다 지나가는 건 아니다. 어떤 장면, 어떤 대사, 인물의 눈빛, 목소리, 배경, 음악, 그리고 그 영화를 보던 시간이나 장소,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문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를 만든다. --- p.126 누군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를 물어보라. 이야기 중에 그를 이루는 구성 성분 중 ‘씨앗’을 보게 될지도 모르고 그가 자란 시대의 얼굴, 문화의 흐름이 ‘같이’ 따라와 개인의 풍경을 보여 줄 수도 있을 테니까. --- p.132 그리고 실제로 세어볼 수 있다면 알게 뭐람, 아흔두 번째이거나 백스물일곱 번째일지도 모를 〈페드라〉는 누가 뭐래도 나의 첫 영화였다. 유치원부터 따지든 어른이 되어서든 몇 명을 스치고 만나고 사귀었으면 무엇 하랴. 첫사랑은 따로 있는 것이다. --- p.142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삶이 음악 같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음악도 삶도,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고 언젠가 끝날 테지만, 1절과 2절, 간주 중을 겪으며 플레이된다. 가끔 씹히거나 튀거나 끊기거나…. --- p.8 아무리 세상이 발달해도 ‘늘어진 테이프 플레이어’는 발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p.14 어느 바다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잊으면 어떡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바다였는지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멜로디가 떠올랐던 순간의 기분뿐이다. --- p.25 여기에는 바다가 있었고 기타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를 격려해 준 마음이 있었다. 나와 기꺼이 작업을 함께해 준 친구의 환대가 있었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는 성실이 있었다. 이 곡 속에서 나는 조금도 이방인이 아니었다. --- pp.30-31 그 곡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이런 느낌이다. 필름이 거꾸로 감기며 시간이 1990년대의 어느 오후로 옮겨가고, 비디오를 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영화는 슬프고 노래는 신나는데, 문득 마음속의 무언가가 움직인다. 유년 시절 내내 움직이지 않던 무언가가. --- p.35 너무 경쾌해 미키마우스 만화처럼 느껴지던 리듬과 노래. 〈붐!〉의 사운드가 해맑은 만큼 거기에는 유년 시절이 그렇게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진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는 씁쓸한 진실이 스며있었다. --- p.45 폭풍이 부는 바깥과 상관없이 고요하고 따듯한 바닷속 문어의 정원을 떠올린다.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다고, 그러니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행복하고 안전할 거라고 믿는다. 그때의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리라 여겼다. 어쩌면 조금 왜곡된 형태로. 보다 좋게 혹은 그에 비하지는 못하게 말이다. 그건 사실이었다. --- pp.57-58 희망만을 말하는 가사는 어쩐지 현실성이 없다고 여겼다. 함께 행복하고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꿈들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소망하는 이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 p.59 그 시절 진열대에서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던 느낌을 잊지 못한다. 나는 음악을 ‘갖고’ 싶었다. CD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구석에 쌓아두면 그날은 새벽 출근도 버겁지 않았다. 그 일련의 과정들, 퇴근길 꽉 막힌 도로와 레코드숍의 부산스러움, 침대에 누워 CD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 --- p.69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다. 편집된 것처럼 통째로 사라진 시절. 그때 들었던 음악은 위로나 응원이 아닌, 그렇게 그 시절을 지나가도 된다는 수신호 같았다. 너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일종의 대답 같은. --- p.71 간절한 마음 하나가 잘 포개져 있는 노래를 들으면 나 역시도 차분해졌고, 내 절박함에 조급해하지 않고 나를 건강히 다룰 수 있었다. --- p.83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자신의 눈금이 생긴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깊이 새긴 자신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은 내가 동경하는 사람의 이름이고, 그 이름에 귀를 기울이면 종소리가 들리는 노래가 흐르고 있다. --- pp.87-88 아빠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둘도 없는 친구로 여겼다. 산부인과에서 나를 데려와 아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헤드폰으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준 것이었다. 그 장면은 아직 사진으로 남아있어, 나는 헤드폰에서 어떤 음악이 재생되었을지 상상해 보곤 한다. --- p.95 그럴 때면, 이런 작은 순간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작은 순간들이, 그런 것을 기다리며 사는 게 그게 어쩌면 행복이라면. --- p.101 어떤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의 음악을 떠올렸다. 나는 피식 웃음처럼 소파에 몸을 던진다. 소파에 구겨진 채로 그 시절의 음악이 고작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이라니. 비웃는다. 하고많은 음악 중에서. 아니야. 그것은 마침내 꺼지는 극장의 불빛. 무언가 시작된다는 신호. 그래서 나는 그 음악을 잊지 못하는 거야. 그 음악을 떠올리고 마는 거야. 그것은 내 한 시절의 끝. 그리고 첫 음악. --- p.112 그날 이후 그해가 저물 때까지 나는 닳도록 그 노래를 들었다. 어떤 마음인지, 어떤 감정인지 그런 것을 살피지 않았다. 더는 들을 수 없을 때까지 들으면서, 그가 알려준 것과 내가 듣고 있는 것 사이 어떤 닮음이 있는지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지.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처럼 십이월이 지나고 나는, 다시는 그 음악을 듣지 않았다. 무언가 뚝, 하고 끊어졌으며 다시는 이어지지 않았다. --- p.116 나를 압도한 이 모든 걸 합친 것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밴드의 로고와 앨범 표지였다. 변화무쌍한 글자 모양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 p.123 ‘표지만 보고 골랐는데 알고 보니 명반’이 여럿 있다. 디자인이 좋은 표지에 끌리는 건 아니었다. 모든 요소가 어리숙하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음반도 있었다. 그 끌림에 작용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있었다. 어떤 사람한테 어울리는 표정이나 옷이 있듯이 음악에도 걸맞은 형태가 있음이 분명했다. --- p.128 노래자랑이 흐를수록 술자리의 한국 대중음악사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정태춘을 넘어 조용필로, 또 송창식으로, 어쩌다 김민기나 양희은으로, 종종 박인희로, 그러다 한대수나 신중현으로. 노래방이 없던 그 시절, 우리들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가사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던가. 얼마나 다양한 창법과 개성 넘치는 곡 해석이 난무했던가.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노래도 있지만, 노래방이 죽인 낭만과 즐거움은 얼마나 허다한가. --- p.146 그 노래는 몇 달 뒤, 다시 온 정열과 눈물과 한숨과 긴긴 기다림의 시간을 다 바친 또 한 편의 공연을 무대 위에 무사히 올리고, 또 마치고서야 부를 수가 있다. 그 시절 우리에겐 성스러운 노래였다. 그런데, 나는 그 노래를 몇 번이나 목이 터져라 불러 보았던가? --- p.150 |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첫 영화에는 가족이 있었다. 혹은 없었다 -김상혁의 첫 영화 이야기 열두 살 그는 처음 ‘우리집’으로 이사한 후 처음 맞는 토요일 밤 ‘주말의 영화’를 고작 몇 장면만 기억하지만, 그 가을 집 안팎 풍경과 사정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사한 새집에도 그의 방은 따로 없어 어머니와 함께 마루에서 지냈지만, 간헐적으로나마 독차지한 할아버지의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본 영화들은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던 그의 유년에 유일한 선물이었다. -유재영의 첫 영화 이야기 1992년 여름 어느 일요일, 외출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 비디오플레이어가 들려 있었다. 처음으로 가본 세탁소 옆 비디오 대여점에서 중학생 그는, 온 가족이 ‘다 같이 볼만한 영화’를 고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고등학생 형의 눈빛에서 읽는다. 아이스크림과 소주와 함께 가족 시네마가 개봉하였고, 되감기가 끝난 뜨거운 비디오테이프를 기계가 토해내는 생소한 장면과 함께, 그는 생소한 장면 하나를 더 목격한다.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김남숙의 첫 영화 이야기 그날 일곱 살 그는 여자와 처음 손을 잡고 처음 영화관에 갔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인파가 많은 곳에서만 여자의 손을 잡고 나머지는 빠르게 걷는 여자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았다. 그 당시 여자는 그의 말에 잘 대답해주지 않아서 그는 눈물이 왈칵 나왔지만, 이제 그는 어딘가에 여자를 여자라고 쓸 때면, 여자를 조금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박사의 첫 영화 이야기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아빠의 무릎께나 키가 닿던 나이에, 영화가 끝나면 짜장면을 사 준다는 아빠의 약속에 그는 중국집에 먼저 가 아빠를 기다렸다. 그를 혼자 로비에 내보내고 ‘막 달려가서, 막 쏘고, 막 죽는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젊은 아빠가 얼마나 피가 마르도록 그를 찾았는지, 엄마에게 얼마나 야단맞았는지 그는 듣지 못했다. 혼자 찾아낸 짜장면집이 단성사 근처였다는 건 기억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그 영화의 제목은 기억하지 못한다. -서효인의 첫 영화 이야기 그의 첫 영화는 문화 회관인지 단관 극장인지도 모를 곳에서 본 몇 탄인지도 모르는 〈우뢰매〉이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가 기억하는 첫 영화는 ‘할머니’이다. 먼저 앉은 사람이 그 좌석의 임자가 되는 영화관에서 어린 손주를 위해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어른의 모습을 보였던 할머니. 지금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의 자리가 명당일는지, 다 자란 손주는 알 수 없어서 가끔 마음의 스크린이 시커멓고, 시커멓게 잊은 채로 시간은 간다. 나를 눈뜨게 한 첫 영화를 만나다 -이명석의 첫 영화 이야기 서울보다 삼사 년은 시간이 늦게 가는 소읍에 살았던 그는 고3 비 오던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대구로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를 보고 센티해진 그는 비를 맞으며 학교로 돌아간다. 20대가 된 그의 첫 유럽여행은 나선형 계단 호텔과 카페오레와 크루아상이 있는 카페테리아에서의 식사로 영화를 따라간다. -송경원의 첫 영화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오후마다 있던 영화부 단체 관람 첫 영화에서 그는 한 장면을 기억한다. 이 장면의 두 주인공의 얼굴에 떠오른 형상을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영화를 말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동시에 이 온전히 영화적인 체험, 이 묘한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싹튼다. -이다혜의 첫 영화 이야기 그의 십 대 내내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들은 그의 취향의 핵심을 형성한다. ‘지구 최고의 속편’까지 나온 할리우드 모험 영화들은 그를 지구 끝까지 달리고 싶게 했고, 이야기의 패턴, 캐릭터의 패턴을 경험하게 했고, 수많은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게 했다. 비록 지금 그가 그 시절 그 영화들의 ‘막무가내의 낙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지라도, ‘세상 해맑고’ 싶을 때는 모험의 세계를 상상한다. -박연준의 첫 영화 이야기 열네 살 그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는 그에게 지나치게 높고, 어둡고, 심오했지만, 그는 이야기가 이야기로 흘러가는 순간을 어둠 속에서 지켜봤던 일을 기억한다. 영화는 그를 통과해 지나갔지만, 모두 다 지나간 건 아니다. 영화가 가져온 마음의 일렁임은 그 안에 머물러 있다. -강수정의 첫 영화 이야기 첫사랑을 기억하는 그에게 첫 영화는, 실제로 세어보면 아흔두 번째이거나 백스물일곱 번째로 본 영화일지라도 단연 첫사랑의 열병에 관한 영화이다. 그의 첫 첫사랑 영화는 그에게 다시 한번 첫사랑을, 혹은 지금의 사랑에게서 또다시 첫사랑을, 느끼게 한다.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제법, 그들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시인 권민경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어린 시절 엄마가 대처에 나가 구해 오신 리어카표 카세트테이프는 ‘G 선상의 아리아’가 1분 30초에 끊기고 곡목과 작곡가가 잘못 적혀있기도 했지만, 거기서 흘러나온 클래식 음악은 그의 깊은 잠 속 꿈 같았다. 늘어지도록 들은 이 테이프를 돌리던 카세트플레이어는 라디오기도 했는데, 심야 음악 방송에서 듣던 노래의 가사에서 어린 그는 어떤 멜랑콜리를 익혔다. -유튜버 김겨울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어디서나 이방인이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디서든 이방인이었던 시절, 도망치듯 떠났던 제주의 어느 바다에서 멜로디가 떠올랐다. 첫 곡이라서, 친구와 함께 만들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 살면서 단 한 번 가질 수 있는 그것 속에서 그는 조금도 이방인이 아니었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10대 시절 어느 오후, 슬픈 영화 속 경쾌한 스윙곡이 ‘쿵’ 하며 그에게 들어왔다. 그 스윙 리듬은 이후 그가 겪은 상실의 경험들과 함께했고 오래오래 음미되고 재발견되었다. 그 곡의 사운드는 유년의 해맑음이 계속되지는 않으리라는 진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는 씁쓸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소설가 나푸름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낯선 도시에 지쳐가던 여행길에서 그는 해체 위기에 놓인 비틀스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었던 링고 스타의 마음이 담긴 곡을 듣고 또 들었다. 고통과 슬픔, 갈등과 외로움에서 도망친 도피처에서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소설가 민병훈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추상적인 현실감을 갖고 방황했던 스무 살 시절, 우연히 들은 앨범에 그가 기댈 수 있는 희미한 자리가 있었다. CD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은 새벽 출근도 버겁지 않았다. 그에게 그때 그 음악은 위로나 응원은 아닌, 그렇게 그 시절을 지나가도 된다는 수신호 같았다. 너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일종의 대답 같은. -시인 서윤후를 닮은 첫 음악 이야기 그때 그에게 음악은 동경이었다. 그는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동경하는 방식이나 방향, 혹은 대상이 같으면 기뻐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그에게 그가 동경하는 대상은 꿈이나 희망이라는 개념의 구체적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노래와 삶의 궤적은 초조한 그를 달래고 위로하고 건강하게 했다. -소설가 송지현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그의 아빠는 그를 둘도 없는 친구로 여겼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아빠는 헤드폰으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아빠와 함께 들었던 음악은 사랑이 언제나 곁에 머물기를 바랐지만, 아빠와의 헤어짐은 사랑을 떠나보낸 첫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떠난 뒤에도 남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숨을 참지 않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시인 유희경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그에게 음악은 한 시절을 끝내고 한 시절을 시작하는 시그널이었다. 어느 해의 겨울, 그는 누군가 제목을 일러준 노래를 닿도록 들었다. 누군가 알려준 것과 자신이 듣고 있는 것 사이 어떤 닮음이 있는지도 알려 하지 않고 더는 들을 수 없을 때까지 그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시는 그 음악을 듣지 않았다. 그해의 풍경은 뚝, 하고 끊어졌다. -그래픽 디자이너 이기준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열두 살에 그는 음악을 보았다. 그가 처음 본 음악은 그의 일상을, 그의 일생을 바꾸었다. 그는 음반 매장에서 레코드판을 뒤적거렸고 새로운 놀이를 고안했다. 밴드의 이름을 짓고 로고를 그리고 구성원을 그리고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그리고 기타 모양을 디자인했다. 그때 그는 ‘로고’나 ‘디자인’이라는 용어조차 몰랐지만 앞으로 그런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카피라이터 이희인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온 정열과 눈물과 한숨과 긴긴 기다림의 시간을 다 바쳐 한 편의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리고 또 무사히 마치고서, 그는 그 노래를 불렀다. 뒤풀이 자리의 소란과 말썽은 그 노래로 정화되었다. 그 노래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었고 그 시절 그에겐 성스러운 노래였다. 지금 그는 목이 터져라 그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그립다. 제법, 당신을 닮은 첫 음악 이야기 에세이집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과 함께, 독자들은 자신들의 첫 음악을 읊조려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닮은, 그 시절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