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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007
우리의 고난을 아이에게 알리지 말라 / 011 지금 〈매트릭스〉는 왜 재미가 없을까 / 019 권선징악 혹은 복수의 황금률, 그리고 그 너머의 무엇 / 027 서랍 속으로 들어간 〈미드나잇 인 파리〉 / 035 화 권하는 사회 / 043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 / 051 자식 사랑하는 마음 / 059 돈과 공동체 / 067 시종일관 해피엔딩 / 075 죽음에 관한 덜 나쁜 엔딩 / 081 나는 신이 아니다 / 089 지평과 유리창 / 097 해변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 109 어떤 장르의 어떤 엔딩 / 117 비극의 카타르시스와 행복한 일상 / 125 이토록 통쾌하고 흥분되는 쇼 / 133 비밀과 결말 / 145 아주 달콤한 문학 / 155 배드엔딩과 부드러운 마음 / 163 이 책이 소개한 ‘엔딩’들 / 171 |
김상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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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산타는 한파 속 멀고 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선물을 건넸고 그를 돕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희생을 감내하였다. 하지만 선물이 도착하기까지의 그러한 사정은 정작 그 혜택을 받게 될 아이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영원한 비밀로 남는다. 방금 하비 슬럼펜버거는 아무런 부채감 없이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아이는 유독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행복할 수 있었다.
--- pp.16~17 어른인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헨젤과 그레텔》과 같은 부류의 결말이다. 다양한 판본의 《헨젤과 그레텔》 그림책을 접하며 내게 떠오른 근본적인 의문은 ‘악인에 대한 적절한 처벌 없이 해피엔딩은 가능한가?’였다. --- p.30 결국은 평생 다른 일은 다 싫고 시만 쓰고 살겠다고 결심해버린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내가 돈에 연연하지 않는 건 시인이기 때문이지, 글을 쓰는 게 돈을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야. 그런 식의 궁색한 기만이 내게는 필요했다. 그럼에도 시 쓰기는 내가 손에 쥐고 싶었던 가장 특별한 빛이었다. --- pp.54~55 인생의 99%를 실험실도 전쟁터도 아닌 일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부모들이 진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란 아이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도 버릴 수 있는지와 같은 물음이 아니다. 식탁 건너편에 앉은 아이가 말을 걸어올 때 당신은 스마트폰 대신 아이 얼굴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어줄 수 있는가? … 새로 산 니트 위에 실수로 토마토소스를 쏟은 아이에게 화내지 않을 수 있는가? … 부모의 사랑에 관하여 우리가 받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란 실은 이런 것들이다. --- pp.64~65 10년 전 아르네이즈는 노예 농장 근처에 매장되었으며 동시에 그를 사랑했던 에이널의 가슴에 묻혔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에이널과 토르핀의 삶을 폐허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 인물이 망자를 가슴에 품고도 씩씩하게 살아남았기에, 먼 훗날 그들은 아르네이즈를 전혀 모르는 개척지 주민들에게까지 아르네이즈라는 의미를 전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이 죽음을 다루는 가장 나은 엔딩 중 하나라 믿는다. --- pp.87~88 타자를 향한 윤리적 행위와 접속을 가능하게 만드는,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 부르는 기적은 가장 선정적인 얼굴로 처음 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현실 속 좋은 결말이 전적으로 윤리적이었던 적은 없다. 저기 화면 속에 억울하게 죽고 부서진 타자들이 존재한다면, 저들을 홀로 죽게, 혹은 죽은 채로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사회에 지금 필요한 좋은 결말이다. --- p.95 좋은 복수극은 내러티브의 전반부를 통해 주인공을 죽도록 괴롭힐 수밖에 없다. 더욱 통쾌하고 짜릿한 해피엔딩을 보여주기 위하여, 복수극 속 우리가 사랑하는 주인공은 밟히고 찢겨야 한다. … 주인공의 삶이 나락 깊숙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가 기어서 올라가야 할 높이─이 높이는 극의 초반, 완전한 승리를 거둔 듯 보이는 가해자가 서 있는 어떤 꼭대기의 높이기도 하다─도 비례해 늘어난다. 극의 엔딩은 언제나 그 나락과 꼭대기의 격차만큼 짜릿한 것이다. --- pp.126~127 집으로 돌아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저 비밀은 그래서 어떤 결말로 이어졌을까? 그날의 별이 무척 크고 아름다웠다는 결말. 그런 비밀스러운 별이 나를 조금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결말. --- pp.153~154 문학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지는 효용론의 측면에서 볼 때 인간에게 인간적인 것을 돌아보게 하는 결말보다 더 아름다운 결말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서사 장르의 개연성은 기만적인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관철해낸다. 우리는 어떤 슬픈 서사가 헛것임을 알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아름답다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러나 또 그러한 슬픔이 결국 헛것의 산물임을 알고 있기에 독자는 거기서 감동과 교훈을 얻는다. --- pp.169~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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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서 시인 김상혁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 속 이야기를 아우르며 해피엔딩을 이야기한다. 과연 해피엔딩이란 무엇일까를, 어떻게 해피엔딩에 이를 수 있을까를, 이야기 자체가 어떻게 행복감을 주는지를 이야기한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아이에게 읽어주며 시인에게는 ‘악인에 대한 적절한 처벌 없이 해피엔딩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에서 아이가 배워야 할 정의로운 결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 버린 아버지가 보물 꾸러미를 쥐고 돌아온 그들과 행복하게 재회하는 모습에 웃음 짓는 아이를 보면서, 복수의 황금률을 넘어서는 아이만의 해피엔딩이 따로 있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죽음도 해피엔딩, 혹은 덜 나쁜 엔딩일 수 있다. 만화 『빈란드 사가』의 두 인물은 망자를 가슴에 묻는다. 그들은 멜랑콜리에 빠지지 않았으며 씩씩히 살아남아 망자를 애도했고, 그럼으로써 망자라는 의미를 망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했다. 시인은 이런 방식이 죽음을 다루는 가장 나은 엔딩 중 하나라 믿는다. 어쩌면 슬픈 이야기도 해피엔딩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슬픈 이야기가 헛것임을 알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아름답다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과 교훈을 얻는다. 시인은 시 〈부드러운 마음〉처럼, 탁월하게 조탁된 이야기가 인간에게 인간적인 것을 돌아보게 하는 결말을 가진다면, 그 이야기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독자들은 행복하게 책을 덮을 것이라 말한다. 해피엔딩은 선물이다 그래서 결국 해피엔딩이란 무엇일까? 해피엔딩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런데 이 선물은 그냥 오지는 않는다. 그림책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선물 하나가’ 단 한 명의 가난한 아이 하비 슬럼펜버거 앞에 ‘놓이기까지’ 산타를 포함해 많이 이들이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사이 눈밭과 절벽을 말 그대로 죽도록 구른다. ‘선물 하나가 놓이기까지’에는 고난과 희생이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는 영원한 비밀이고 아이는 아무런 부채감 없이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아이는 유독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해피엔딩 이야기는 이렇게 수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통해 해피엔딩이 된다. 시인은 이 책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결말에서조차 행복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이것이 시인 김상혁이 생각하는 ‘행복’일 것이고, 이런 노력과 함께라면 이야기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러나 해피엔딩’일 것이다. 중요한 건 ‘엔딩’이다-두 가지 ‘엔딩’ 이야기 우리는 영화를 본다. 드라마도 본다. 노래를 듣고, 소설을 읽고, 시를 읽는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림도 본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대체로 이야기의 ‘끝’이 슬프면 울고, 행복하면 웃는다. 이야기가 시작할 때, 이야기가 전개될 때, 주인공이 행복하거나 불행한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끝’이 좋으면 모두 좋고 ‘끝’이 나쁘면 모두 나쁘다. 이렇게 이야기에서는 끝이, ‘엔딩’이 중요하다. 그리고 ‘엔딩’은 이렇게 행복하거나 슬프다. (종종 열린 결말, 이런 것도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런 엔딩은 엔딩이 아니다.) 해피엔딩 혹은 새드엔딩. 이 책은 두 가지 ‘엔딩’ 중 해피‘엔딩’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드‘엔딩’에 대한 이야기와 동시에 독자들 앞에 놓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