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사랑에 내던지는 세밀한 풍경 언어
이 책을 읽으면 마치 비정형의 숲에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저마다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고 있을 때 피어오르는 숲의 전경은 꼭 새벽 연무를 닮았다. 작가가 체득한 풍경 언어로 세세히 적어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의 경계는 이내 흐려지고 구분되었던 자리가 흐트러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이것을 슬픔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은 삶에 끼어든 슬픔에 돌아서지 않고, 묵묵히 가로질러 가려는 한 사람의 소요한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저벅저벅, 축축하고 무겁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어떤 결심이 필요했던 누군가가 지난 자리를 다시 걷는 기분으로.
슬픔이 기척을 내밀며 깨어나는 장면 속에서도 작가는 사랑을 수호하려고 한다. 지켜내고 싶은 것이 곧 살아가는 데 이유가 되는, 삶의 명백한 문법을 자신 앞에 주어진 풍경과 함께 드리워져 찾아 나선다. 상실이 주고 간 공백 속에서 침묵을 익히고, 사랑을 깨닫는 범벅 속에서 새 이름을 외우는 순간이다. 작가는 숨어 있기의 귀재가 되려고 하거나, 집 없는 날의 돌아감에 대해 생각하는 아득함, 침묵과 간격을 헤아리는 사유를 통해 이 숲을 지나며 발견하게 된 풍경 언어를 모국어로, 슬픔에 대해 말한다. 슬픔에 말문이 트이는 문장들 속에서 발음해본 적 없는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나란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난데없이 써 내려간 넝쿨 식물의 편지처럼, 무성하기만 했던 슬픔의 정체도 조금씩 알 것만 같은 이유는, 바로 이 풍경 언어가 집요하게 그 슬픔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의 찾아옴과 떠나감을 동시에 목격하게 되는 숲의 주소이자, 작가가 수집한 단어 ‘기울이다’처럼, 몸을 기울여 세상을 비스듬히 비켜 있는 것들을 만나고 싶어지는 세밀화의 현장이다. 슬픔을 외투처럼 껴입고 싶은 날에, 그리하여 슬픔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은 날에 우아민의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