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것이 왜 재미있는지에 대해 읽고, 보고, 쓰고, 말하는 일을 한다. 영화 전문지 *씨네21* 편집팀장으로 일하며 《오래된 세계의 농담》, 《영화의 언어》를 비롯한 에세이를 써왔다. 순발력은 있지만 끈기가 부족하고, 대인관계는 서투르지만 사회생활용 인격은 잘 사용하는 편. 일하기의 추구미는 멀리, 높게, 오래.
마치 단편소설의 도입부 같은 글도 있다. 〈리스토란테의 밤〉은 그중 압권이다.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간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옆 테이블의 상황을 엿들은 해프닝을 담았다. 남자는 ‘슬슬 꼬셔볼까’ 생각하고 있고 여자도 ‘그냥 넘어가줄까’ 궁리중인 게 역력한 옆 테이블의 분위기는 남자가 파스타를 “츠르릅 츠르릅!” 하고 엄청난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하자 얼어버린다. 하루키와 그의 아내와 웨이터와 옆 테이블의 여자 모두 “계절이 바뀔 때 지옥의 문이 한번 열렸다 닫히면서 나는 것 같은 소리”에 말을 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그저 행복하게 “츠르릅 츠르릅!”, 이런 식으로 언제나의 하루키처럼 맥주와 재즈, 책 읽기와 야구, 기담과 김밥, 달리기와 강아지 같은 화제를 조곤조곤 늘어놓는다. 그야말로 하루키다운 글의 향연.
자기만의 대피소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멀리까지 떠나도 두렵지 않다. 불안이 익숙한 사람은 아무리 멀리까지 떠나도 익숙한 그림자를 읽어내느라 기진맥진한다. 상반된 두 마음이 등을 떠밀면, 엉터리 천국이 즐거운 얼굴을 만들어낸다. 주하림의 문장은 방랑하는 법을 알아서, 단어 사이에 여상하게 놓인 죽음의 그림자는 신기하게도 당신을 삶 쪽으로 끌어당긴다. 마침내 도착할 안도를 닮은 울음. 외로움을 아는 사람을 위한 처방전 같은 글묶음.
스스로 고전을 찾기 시작하는 그 순간,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 시작하는 참일 것이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에 관심이 가는 때는 대개 삶이 모퉁이에 서 있을 때다. 모퉁이 저편에 뭐가 있는지는 돌아봐야 알고, 걸어봐야 안다. 탐색하는 순간에 제대로 ‘돌아보고’도 싶고 ‘내다보고’도 싶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고전을 찾는다. 10분 이상 읽기 성공! 고전에 관심가는 이
자크 프레베르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생각을 범상한 단어들에 실어 잊지 못하는 형태로 만들어낸다. 〈알리칸테〉를 처음 읽었을 때, 혀끝에서 터지는 오렌지의 향과 카메라가 움직이듯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과 따뜻하게 맞닿은 체온의 온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알리칸테에 가고 싶다면 언제든 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된다. 몇 줄의 글, 그게 마법의 전부다. #리
독서인의 응급처방에는 맞춤한 책이 필요하다.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책이면서도, 동시에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적당히 오솔길이 난 책이어야 한다. 신중하게 책을 골라 침대 옆 협탁에 얹어놓고, 자기 전에 한두 페이지를 읽는다. 운이 좋다면, 책은 좋은 꿈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아껴가며 읽고 또 읽는 나의 최애 동양고전은 세이쇼나곤의 《베갯머리 서책》이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마음을 둘 수 없을 때, 생각에 무게추를 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다. 그럴 땐 오래된 책일수록 좋다. 최소한 10년은 된 책, 때로는 2천 년도 더 된 책. 긴 시간 수많은 승객이 지나친(내리지 않고 그저 지나기만 한 승객이 훨씬 많은) 오래된 기차역 같은 책들 앞에서, 나는 지나가는 여행자가 된다. 그 역에서만 볼 수 있는 전망에 마음을 잠시 빼앗기고
그들은 작가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들이지만, 때로 이야기는 삶보다 커서, 우리는 삶의 거대한 국면들을 이해하기 위해 고전을 떠올린다. 죄와 죄의식을 논하기 위해 맥베스나 라스콜니코프를, 욕망의 부질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했던 한순간의 경이를 말하기 위해 안나 카레니나 또는 제이 개츠비를 이야기한다. #리딩스타트
스스로 고전을 찾기 시작하는 그 순간,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 시작하는 참일 것이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에 관심이 가는 때는 대개 삶이 모퉁이에 서 있을 때다. 모퉁이 저편에 뭐가 있는지는 돌아봐야 알고, 걸어봐야 안다. 탐색하는 순간에 제대로 ‘돌아보고’도 싶고 ‘내다보고’도 싶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고전을 찾는다. 시간을 이겨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