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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으로 읽었으므로 p표시는 임의임프롤롤그)인생의 다른 부분이 엉망진창을 향해 엔트로피를 늘려나가도, 오로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조금 덜 불행했다.내지)매일의 삶 역시 자신이 기획한 방향 이외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떤 무게로, 어떤 모양으로, 어떤 간격으로 살아갈지 세심하게 고르지 않는다면, 글쎄, 누가 나를 읽을 수 있을까. 펼쳐 봤다 놀라서 도로 닫아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가장 즐거운 유희 활동)독서는 돈도 비교적 적게 들고, 드는 돈에 비해 누릴 수 있는 유희의 크기가 크며, 질이 높다. 물론 책이 제공하는 유희를 온전히 즐기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일단 그 허들을 넘기면 그 뒤로는 죽을 때까지 배신하지 않는 재미를 보장한다. 죽을 때까지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자원이 풍부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읽을 책이 늘어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요슈타인 가이더의 비유를 빌리자면, 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푹신하고 아늑했던 토끼털의 안쪽 자리에서 벗어나 털의 갖아 끝, 아슬아슬한 그곳에 매달려 더 넓은 세계를 보는 일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익숙하게 느꼈던 감각에 의문을 가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 피곤해지는 동시에 -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굳이 철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책을 읽는 일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추상 근육’을 쓰는 행위다. 여러분이 책을 읽을 때에만 느끼는 피곤함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이 능력을 쓰는데 익숙해질수록 책을 읽는 일이 점점 더 즐거워질 것이다. 머릿속에 창조한 세계가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지식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지며, 자신과 책의 의견을 교환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 능력은 한 번 획득하면 쉽게 퇴보하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책은 가장 지속성이 높은 유희활동이기도 하다.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온갖 경험담과 TV의 막장드라마를 우리가 즐기는 이유는 인간이 이야기를 즐기는 동물이기 때문.유투브는 아직 문법이 정리되지 않은 매체다. 그것이 유투브의 다양성을 담보하기도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질이 떨어지는 영상을 굳이 보는 수고를 들였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하지만 책은 오랜 시간의 역사를 가진 매체답게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한다.영상이 주는 정보를 활자로 읽었을 때 훨씬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유투브를 돌아다니다보면 별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크게 유익하지도 않은 사진과 지루한 음악을 붙인 재미없는 영상을 볼 수 있다.이상한 일이다. 게임도 TV도 컴퓨터도 핸드폰도 한참 하면 공허한데, 책은 그렇지가 않다.책을 읽는 목적과 방법) 강유원 박사 <인문고전강의> → 독서의 세가지 차원 → 호기심 차원, 쾌락적 차원, 구조적 차원1. 호기심 차원 : 말그대로 호기심 충족 목적. 우주가 궁금하다면 우주물리학 책을 읽는 식. 스마트폰에 검색하면 그만이지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얻기 가장 좋은 매체는 여전히 책.2. 쾌락적 차원 : 즐거움. 책의 내용이나 문체로부터 재미를 느끼는 독서3. 구조적 차원 : 교훈과 메시지를 얻기 위한 독서. 고전으로부터 이상적 인간에 대한 본(本)을 얻거나,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경우좋은 독서가란 이 세가지 차원을 마음껏 넘나들며 책을 읽는 독서가.책을 많이 읽었을 때 삶이 바뀐다는 것은, 인생에서 지속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사유능력과 공감능력을 증대시키고, 질적으로 훌륭한 차원의 쾌감을 주는 취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사람들에게 책을 권할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느낀 이 다채로운 즐거움을 당신도 느껴보길 바라요’ 책을 많이 읽어서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게 맞다면, 나는 그 많은 책으로부터 얻은 다양한 감정과 사유가 그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책을 제대로 일고 싶다면 책을 ‘빨리 많이’ 읽기보다는 ‘천천히 많이’ 읽기를 권하고 싶다.책을 읽을 때, 되도록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정도에서 즐기기를 권하고 싶다. 걷는 독서는 책과 꼼꼼히 대화하는 독서다.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곱씹으며 읽는 것이다. 한 귀퉁이를 빌려 저자에게 질문하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밑줄을 쳐둔다. 이 구절이 지금의 내 인생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숙고하고 받아들이거나, 인정하거나, 반박해본다. 그러다 자전거를 타듯, 조금 속도를 내어 읽다가 눈에 걸리는 구절에서 멈춰서서 자세히 바라본다. 충분히 사유한 후에 페달을 밟는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완전히 책에 빠져든 상태로 읽어나간다. 푹 빠져서 읽되, 전체 내용을 조망할 수 있는 시선은 잃지 않는다. 앞을 보고 페달을 밟아야 내가 온 길과 갈 길을 알 수 있다.책은 산다는 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곁에 두고, 그 작가의 말과 글을 끌어안고, 그 책이 언제든 나의 세계를 침범하기를 허용하고, 나아가 소망하는복잡한 사태를 정확하지도 않은 한 두 마디로 전달해 열렬한 호응을 받는 달변가들의 시대음모론이 응원을 받고 비윤리성이 솔직함으로 포장되며 비대한 자아가 성공의 척도인 것처럼 여겨지기 일쑤다. 그런 시대에 계몽을 말하는 것이 부당한가? 이미 닳고 닳은 것처럼 보이는 계몽은 인간에게 완수될 수 없는 과제이며, 우리가 취해야할 삶의 양식이고, 끊임없이 추구해야할 목표다."옳고 그름을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사소통적 합리성"나에게는 시의 옥석을 가려낼 심미안이 확고하게 서있지 않다. 다만 나에게 조금 더 와닿는 감각의 언어와 그렇지 않은 언어가 있을 뿐이다.책장을 들여다볼수록, 또 책장의 책을 들여다볼수록, 그 사람의 세계는 가지고 있는 책의 관심사와 비슷해진다. 그러니 독자여러분, 책에 대한 소유욕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소유욕이다.책을 놓고 살다보면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다시 책을 집어드는 때가 오는데, 다른 유희활동이 다 재미없어졌다는 신호다.내가 살면서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의 순간들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는 시간들에 있었다.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고,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위로받고,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고, 작가의 농담에 웃고, 이런 순간들을 속독으로도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컴퓨터로 옮겨적기 - 이걸 필사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책의 좋은 구절을 전부 이렇게 중세시대 수도사처럼 적고 있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다 (ㅋㅋㅋ). 게다가 세상에는 읽을 수 있는 책의 분량이 너무 많고, 그것들을 다 적다가는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분량이 1/10로 줄어들 것이다.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방법이 컴퓨터 메모리나 블로그에 타이핑해서 저장하는 방법이다. 당연히 명상보다 정보 수집에 가까운 행위다.당연히 손으로 직접하는 필사보다 머리에 적게 남는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됨.가끔씩 블로그에 들어가 옛날에 옮겨두었던 구절들을 죽 읽어보곤 한다. 메모리의 바다에 외주를 주고 정작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용천수처럼 속속 솟아오른다. 어떤 것은 화살처럼 따갑고, 어떤 것은 화산처럼 뜨겁다.세계가 된 책 <바벨의 도서관> 이 도서관은 은유로 남을 때 아름답다.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해석한다고 해서 도서관과 같은 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결코 현실 세계에서 그와 같은 ‘실제’바벨 도서관을 완공할 수 없다. 완공을 바라지도 않는다. 평생 도서관 속을 헤메다 결국 그 안에서 아무런 진리도 얻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것, 무한한 책에 둘러싸여 세계의 미스터리를 궁금해하는 것, 그 궁금함으로 사람들과 마주치고, 싸우고, 신화를 전해듣고, 책을 읽는 것, 그것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무지의 기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책이라는 좋은 친구를 다들 곁에 두고 살기를 바란다. 책을 읽음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고, 몰랐던 것을 배우고, 혼자 있는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길 바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는 계기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을 책이 까마득히 많아지는 그 역설을 공감하길 바란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