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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너와 나는 세상으로 작은 열매를 날랐다
파수 자립 수박이 아닌 것들에게 너머의 여름 초록나무 당신 주황 소년 청귤 토마토 빙수 히치하이커 수박향, 은어 나의 소년들 랑헨에서 여름 파랑 여름으로부터 2부 우리를 예상치 못한 캐노피 아래로 바깥 산책 장미의 방식 익선동 밤 산책 유월 오후의 우유 유월 증발하는 세계 산책하는 사람 비의 공습 등 나의 차례 유기묘 아열대 사랑 작고 멀쩡한 여름 3부 그 말들은 깊은 여름에도 부식되지 않는다고 파우더 난간이 허리춤에 오는 나이 양산 굿즈 여름에 온 마트료시카 섬망 오로라를 보러 간 사람 빛 헤엄 얼굴 다른 방식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세계의 끝 기획의 말 일부를 품고도 전부를 덮어주는 여름 안에서 여름을 함께한 시인들 색인 |
KIM SO 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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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여름은 지킬 게 많았다
지킬 게 많다는 건 어길 게 많다는 것 계절은 지겹도록 오래될 텐데 우리들의 여름은 처음처럼 위험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풀장에 다이빙하고 싶어 수박을 던지면 젖살 같은 과육이 흩어졌다 --- 「파수」 중에서 여름이 오면 그는 옮겨갈 것이다 걸을 때 바닥이 울리지 않는 집으로 누군가의 목구멍에 걸려 있는 기분 포도를 먹지 않고 내버려두면 무르기 시작하고 껍질이 갈라진다 밤이 지나고 커튼을 열면 전혀 다른 빛이 새어 나온다 --- 「자립」 중에서 채 소화되지 못한 빗물이 철벅거리며 바짓단에 흔적을 남기는 동안 하늘은 그 많은 비를 털어내고도 조금도 개운치 않아 보였다 거절당할 게 분명한 순간에 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까? 모르면서 네 손을 잡았다 --- 「히치하이커」 중에서 아무리 그려보아도 완성되지 않는 사람이 있어 눈을 질끈 감고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온몸이 젖은 채로 걸어 나와 미리 여름에 속해보기로 해요 --- 「랑헨에서」 중에서 좋아지고 있어 걱정하지 마 뱉은 말을 진심으로 만든다 너를 위해서 나는 할 수 있다 햇빛이 몰려온다 점점 넓어지는 햇빛의 아가리가 풀밭을 집어삼킨다 우리는 햇빛 주위로 밀려나면서 조금씩 걸을 곳을 잃어가면서 시원한 곳으로 가자 멀리멀리 전진한다 --- 「바깥 산책」 중에서 나는 살이 그슬리고 여름 감기가 들고 감기보다는 더 아프게 몸살을 하고 피가 지글지글 끓고 긴 울음 끝에 겪을 것을 다 겪고 나면 내 머리에도 흰 꽃이 필까 --- 「유월」 중에서 여전히 덥고 그저 덥다 쓸모가 없이 물기 먹은 한여름보다 더 가문 손금이 말라가는 모양을 숨기는 더는 비가 내리지 않는 거리에서 나는 열기(熱氣)를 쓰고 덮고 있다 말라가고 있다 의미를 지우며 열심히 다음으로 걸어가 다음을 걷고 있었다 --- 「나의 차례」 중에서 모두가 들어가려 하는 천국의 지하였다. 훌쩍거리는 여름이었다. 우리는 붉게 물든 상자가 언제 다 찢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우리를 꺼내 올 수가 없었다. 잘린 발이 펄럭거리며 지하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을 버려두고 지하로 걸어 내려온 새로운 생물이 있었다. 불에 탄 발을 내밀고 있었다. --- 「유기묘」 중에서 왜 양산을 활짝 펼쳤더라 창문을 도대체 어디에 버려뒀더라 호시탐탐 어떤 악의가 등골을 파고들어 다큐 영화에서 봤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수조관 밖에서 펄떡이던 생선의 아가미나 개미굴로 빨려 들어가는 메뚜기의 눈알 양산을 모두 다 활짝 펼쳐놓으면 파노라마처럼 그것들이 수없이 지나간다 --- 「양산 굿즈」 중에서 올해의 첫 수박은 기어 다니며 먹었다 올해의 첫 수박은 기어 다녔다 올해는 기어 다녔다 기어 나갔다 은유와 비약은 애도를 꿈꾸게 한다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깊은 슬픔에 빠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별로 놀랍지 않다 모든 슬픔에서 반드시 기어 나왔다는 사실만큼은 --- 「얼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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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이 좋다고 너는 말한다”
우리들의 찬란한 계절을 다시 한번 엮어 다채로운 온도로 건네는 아침달 여름의 시 뜨겁고도 투명한 계절을 함께 다시 한번 건너는 여름의 시 『포옹이 풀어지는 계절』이 아침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그동안 다채로운 개성과 시적 성취를 이룬 아침달 시집 1번에서 55번 중, 총 22권의 시집에서 여름의 정취가 풍부하고 선연하게 담긴 시들을 엄선해 새로운 배열로 재수록했다. 책 속에는 스무 명의 시인(김소연, 김언, 김영미, 김은지, 민구, 숙희, 심보선, 연정모, 오은, 유계영, 유희경, 육호수, 윤초롬, 이새해, 이영주, 이은규, 장이지, 정다연, 조해주, 한연희)이 여름 풍경을 여러 갈래의 길로 펼쳤다. 여름을 주제로 새로운 시를 수록하는 기존의 앤솔러지 형태와 다르게, 이 책은 아침달 편집부가 그동안 독자와 함께 호흡하며 쌓아온 시적 세계를 여름이라는 하나의 계절 속으로 다시 불러 모았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기념비적인 ‘계절 선집’이다. 특히 이번 책은 독자가 계절이 흐르는 감각을 오롯이 시 자체로만 느끼고 자신이 품었던 여름의 한 장면을 겹쳐 읽을 수 있도록 본문에 시 전문만 수록했다. 시집에서 먼저 만났던 시들이 여름 햇빛 아래에서 다른 시들과 우연히 만나 이전의 맥락은 덜어내고 오직 여름으로만 모여 총천연색으로 빛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여름을 함께한 시인들’과 ‘색인’ 페이지를 통해 시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거나 새로 마주하는 시인들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시의 영역을 넓혀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책의 제목인 ‘포옹이 풀어지는 계절’은 김영미 시인의 시 「장미의 방식」 첫 구절에서 가져왔다. 만물이 생동하는 여름의 시들이 주로 넘치도록 들끓는 사랑을 다룬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다소 거리감이 드는 제목일 수 있다. 문학에서 ‘포옹’은 줄곧 사랑을 증명하는 행위이자 곧 타자와의 완벽한 합일을 의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책이 여름을 ‘포옹이 풀어지는 계절’이라 명명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양면성을 동시에 확인하게 된다. 사랑을 말할 수밖에 없는 계절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그 뜨거운 갈망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명백히 다른 존재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서로의 취약한 윤곽을 드러내면서 한 존재의 품을 기꺼이 다른 존재에게 내어주는 일. 그것은 문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온 사랑의 모양일 것이다. 『포옹이 풀어지는 계절』은 우리가 여름 속에서 견디고 지켜낸 사랑들을 거듭해 살아보는 책이다. ‘여름의 시’라는 이름은 이 책이 단순한 시 모음집으로 읽히기보다, 시인들이 통과해온 각각의 시가 모두 같은 시절의 여름으로 읽히기를, 각자의 품속에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풍경을 또 한 번 불러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하여 “이 여름이 좋다고 너는 말”할 수 있기를, 이 책은 바라고 또 바란다. 고조되는 시간에 따라 어긋나는 방식으로 채워지는 여름 풍경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계절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순환될 수 있도록 시를 배치했다. 각기 다른 여름의 순간을 살았던 시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놓여 모두 하나의 여름 속을 흐르는 방향이 되어준다. 첫 시 「파수」에서 “운동화를 적시며 여름이 오고 있었다”고 나직이 읊조리며 다가오는 올여름에도 우리가 지킬 것과 어길 것이 많아지리라는 예감을 던진다. 지키는 것과 잃는 것은 여름을 지내는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 “여름이 오기 전에” “이사할 것이”라는 그를 보며 지금부터 혼자를 견뎌야 할 사람(「자립」), “봄부터 차오른 푸를청 푸를청 청귤”마저 사라져 소실될 기억과 사랑을 알면서도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청귤」), “물놀이를 하러” 해변에 와 “벗고 뛰노는 몸들”(「랑헨에서」) 등, “내가 잠시 다른 것이었던/ 여름”(「파랑」)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여름이 곧 하나의 삶의 양식임을 몸소 배운다. 여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계절의 끝을 감지하는 시인들의 기질은 책 속에서 선행적으로 흐르는 여름을 읽을수록 강렬한 색채적 이미지와 활달한 움직임으로 전개된다. “당신이 잠든 사이 몰래 밖으로 나가/ 공원 벤치에 한참을 앉았다 돌아”(「밤 산책」)오듯, 여름밤을 떠도는 발걸음들은 우리가 계절 속에 놓이면서 빠져드는 상념들을 불러 세운다. 여름이 지닌 풍성한 색감은 고유의 계절감이나 물성으로 충분히 감각된다. 장미, 능소화, 코스모스, 체리, 수박, 보리수 열매 등 여름을 상징하는 식물과 과일 들이 모여 끝말잇기를 하듯 초여름부터 한여름, 그리고 늦여름까지 한 계절이 지나가는 흐름을 이어간다. “햇빛의 아가리가 풀밭을 집어삼”(「바깥 산책」)키듯 눈부신 날씨가 이어지다가도, 장마 구간을 지나면서 “비의 공습”(「비의 공습」)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슬픔에서 반드시 기어 나왔다는 사실”(「얼굴」)에 도달하는 이 모든 여름의 순간은 우리가 펼친 사랑이 홀로서기에 이르는 여정을 향해 성실히 나아간다. 풍부한 표정들로 가득했던 여름은 이제 “사랑의 끝”이자 “세계의 끝”(「세계의 끝」)에 놓여 “어제보다 헐거워지는 포옹”(「장미의 방식」)을 맞이한다. 빛이 가득한 사랑과 빛이 희미한 사랑 사이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얻으며 “가지 않은 길을 가볼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 짓는 손깍지는 함께한 것일 수도, 홀로 한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손가락이 서로 어긋나야만 비어 있던 간격을 채워주며 손깍지라는 모양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직 여름만을 말하는 시, 여름이 주인공인 시, 여름 속에서만 만나고 헤어지는 시들로 가득한 이번 책 『포옹이 풀어지는 계절』은 한 계절에 대한 무한한 찬사이자 어긋남으로써 사랑이 온전히 붉어지는 모양을 적극적으로 발견하는 또 다른 색깔의 고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