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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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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언제나 슬픔이 비처럼 내리고, 그걸 따듯한 기억을 펼쳐 막아야 하는 거라면, 나는 평생 동안 쏟아지던 비를 내 힘으로 막아 본 적이 없어. 내 기억과 마음은 너무 어릴 때부터 고장이 났거든. 우산의 걸림쇠라 해야 해나. 꼭 아빠가 죽고 나서부터였을 거야. 그게 툭, 빠져 버렸는지 온 힘을 다해 마음을 펼쳐도 자꾸만 힘없이 접혀 버리기만 했어. 어딘가에 스며드는 비는 언제나 차갑고, 눅눅했고. 어쩔 때는 따갑거나… 뜨거웠지. 정말 질릴 만큼.’
--- p.259 ‘아, 이 세상엔 고장 나고, 버려진 우산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고작 한 번 쓰고 버려지거나, 깜빡하고 놓고 간 우산들. 다른 우산이랑 헷갈렸는지 멋대로 훔쳐 가는 바람에 잊힌 우산들. 그것도 아니면 비바람에 구멍 나고, 꺾이고 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나는 그것들에게 온갖 연민을 가지다가도, 또 동시에 혐오스러운 마음을 품기도 했어. 나도 그들 중 하나였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사는 걸 보고 있자면, 꼭 못된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거든. ‘너희도 사실은 슬프잖아. 마음을 제대로 펼칠 수 없잖아. 지금도 축축한 비가 뚫린 구멍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잖아.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건데?’ 하면서 말이야.’ --- p.260 ‘사람은 아주 차가운 것이든, 아주 뜨거운 것이든 피부에 닿을 때엔 얼마간 같은 감각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아마 아주 슬프거나, 기쁜 것에 다가가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동상을 입을지, 화상을 입을지는 나중의 일이었다.’ --- p.87 ‘죽음마저 실수를 할까 두려운 삶.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 p.340 ‘말라 버린 우물에 핀 꽃은 정오에만 잠시 드는 햇빛으로 겨우 살아가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주길 바란다는데, 그게 꼭 내 처지 같았어. 나의 향을 맡아 달라는 건, 나를 위해 죽어 달라는 말과 다름이 없는 거잖아.’ --- p.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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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름, 파도같이 몰아치는 이야기 속에 우리는 푹 젖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소설 ‘수족관’은 버려진 것들의 사랑에 대한 지극히 아름답고도, 애달픈 이야기를 서정적인 문체와 장면이 손에 닿을 듯 선명한 문장으로 관찰하고 있다.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서로를 훔쳐내던 2003년의 뜨거운 여름의 계절로 순식간에 몰입하게 한다. 책과 닿은 손끝에서 여름 특유의 축축한 촉감마저 느껴질 때쯤, 우리는 완전한 장마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그중에서도 커다란 상실을 경험한 등장인물들이 그 공백을 극복하고자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존재를 이용하게 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가슴 아프게 깨닫게 한다. 특히 이러한 버려진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는 외면해왔던 우리의 과거, 그 어두운 면면을 마주하는 데에 커다란 용기가 되어주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소설’수족관’은 등장인물들이 ‘수족관’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수족관’이 무엇이었는지, 그 안에는 어떤 것들이 헤엄치며 갇혀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 수족관에서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돌아보게 하는 다정한 힘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