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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슬픔 만지기/ 차가운 사람/ 강변식당/ 유리된 느낌/ 겨울에 태어난 사람/ 열린 공간/ 영원한 친구/ 청귤/ 올리브 나무 사진을 붙인 유리병/ 마요르카에서 산 테니스공 모양 풍선껌/ 0/ 사람이 없는 시간/ 비익조/ 의자 바꾸기/ 하안(河岸)/ 건무화과/ 음각/ 반려/ 후기/ 한 사람이 웃는 동안에/ 터/ 거기 뭐 있어?/ 시늉/ 주말농장/ 그믐/ 초/ 합정(合井)/ 종각/ 유원지/ 오늘의 커피/ 몫/ 보이지 않는 물/ 잃어버린 노트/ 숲속의 선생님/ 보이지 않는 물/ 눈빛 보내기/ 건강한 사람/ 보이지 않는 물/ 고양이가 그려진 종이/ 물 머금기/ 소 키우기/ 느낌온도/ 겹/ 문 고치기/ 야외석/ 생존근육/ 찾을 수 없는 장소/ 헛물/ 예의에 대하여/ 사이 해설 | 보이는 새와 보이지 않는 물 오연경(문학평론가) |
조해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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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들의 흔들림과 반짝임 속에서
있어 숨김없이 있는 거 다 알아 문 두드리면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 열려 있어 밀면 열려 ---「열린 공간」중에서 내일은 어깨에 껌이라도 붙여볼까 인파 속에서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쳐도 금방 그 사람인 줄 알 수 있을 것이다 늘어난 껌 때문에 마주선 두 사람 사이에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는 우주에서 껌을 씹는다 휴 하고 풍선을 분다 태양보다 훨씬 커진다 못이 빠르게 굴러간다 어떤 휴일 마요르카로 향하는 밤 비행기의 창문들은 치아 같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빛이 날벌레처럼 떼 지어 몰려간다 입안이 따가울 정도로 드넓은 레몬 농장으로 ---「마요르카에서 산 테니스공 모양 풍선껌」중에서 생물은 빛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시작하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펼쳐놓은 책들이 떠내려가고 졸졸 뒤따라오던 그는 책을 줍느라고 어느새 멀어져 있다 사랑이 끝나기 전에 시작되는 사랑도 있겠지 그러나 사랑이 끝나면 영영 시작되지 않는 사랑도 있다 너무 좋은 노래를 듣고 나면 다른 노래로 건너갈 수 없다 그가 사탕으로 보일 때쯤 입안에 남아 있던 것을 마저 삼킨다 ---「하안(河岸)」중에서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 두 손 모아 기도했을 때 그건 어떤 오염에도 물들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었지만 더 자세히 말할 걸 그랬나 밤새 걸어도 다 못 걷는 눈밭 붕대 이불 어금니 문 앞에 선 사람의 머릿속 그중 어떤 하얀 어떤 마음인지 되묻는 목소리 없었고 ---「음각」중에서 뭐가 있다는 거야 나는 그에게 묻고 그는 이젠 없다고 한다 좀더 순발력 있게 움직였어야지 웃으면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의 뒤통수가 머리카락처럼 흩어졌다 모이는 걸 물끄러미 보았지만 나는 그가 거짓말하지 않았음을 안다 거기 뭐 있고 거기 뭐 없다고 정말로 생각한다 ---「거기 뭐 있어?」중에서 점점 시늉이 는다 자는 시늉 안 자는 시늉 받아본 적 있는 사람이 줄 수도 있다는 말을 믿는 시늉 던지는 시늉 받는 시늉 하다보면 공을 받지 않아도 줄 수 있다 심지어 공이 없어도 ---「시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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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아 물이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포개지는 영혼들 나는 뜨거운 걸 잘 못 만진다 탕에 발가락을 넣으면 튕겨나온다 부글거리는 물거품을 떠올리며 땀만 뻘뻘 흘린다 커피 하얀 김이 도망가는 뱀처럼 빠르게 일렁이다가 잠든 뱀처럼 느리게 길어지는 것을 다 보고 나서야 잔에 입을 대었다 뗀다 _「차가운 사람」 부분 화자는 “나는 뜨거운 걸 잘 못 만진다”고 고백한다. 그는 온탕이나 커피의 온기도 저어할 만큼 열기를 버거워한다. 또다른 시 「겨울에 태어난 사람」에는 “한여름에도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이가 등장한다. 그에겐 “술을 나눠 마신 사람”의 “추위를 빼앗”아 갈 정도로 깊은 한기가 흐른다. 그러나 차갑다는 것이 곧 냉정하고 매몰차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차가운 사람인 동시에 “누군가가 목 뒤로 삼킨 불/ 꺼내려고” 그것을 “만져보고 싶”(「차가운 사람」)어하는 사람이고, 자신 안의 “겨울을 식탁보처럼 펼”치고 “눈사람을 식탁에 앉”(「겨울에 태어난 사람」)히는 사람이다. 조해주 시의 ‘차가운 사람들’은 함께 뜨거움을 견디는 대신 자신의 차가움을 나눠줌으로써 “조금 덜 뜨거”워 “이제 마셔볼까”(「차가운 사람」) 싶은 온도를 만들어내고, 자신처럼 차가운 누군가와 “함께 녹아내리는 기쁨에 대하여 상상할 수 있”(「겨울에 태어난 사람」)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이 타고난 성정과 달리 ‘배운 다정함’을 품고 있는 까닭은 얼어붙었다 녹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언 우물 주먹처럼 웅크린 몸으로 그는 그 안에 잠겨 있었지 (……) 새의 목표는 깨뜨려서 깨우기 그건 그 새만의 방식이어서 그는 뒤척였지 바깥에서 보면 악몽에 찡그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핏줄처럼 금이 자라고 있었지 꿈을 깨고 나오는 이마의 분명함으로 있는 힘껏 밀었지 넘어질 것이 넘어질 때까지 엎질러질 것이 엎질러질 때까지 _「유리된 느낌」 부분 “언 우물” 안에 “주먹처럼 웅크린 몸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봄 가을 새가 와도” “목마른 여름새가 테두리에 앉아 고개를 갸웃해도” “녹지 않”는다. 그러나 “감나무잎 하나 떨어지”는 겨울이 오자 그는 처음으로 “뒤척”인다. 얼어붙은 몸을 녹인 것은 다름 아닌 “새”다. 이 시의 새는 “작은 부리로” “나뭇가지/ 돌멩이/ 오디/ 총/ 콩/ 캔” 따위의 것들을 “하나씩” “있는 힘껏” 밀어 넘어뜨”린다. “깨뜨려서 깨우기”가 “그 새만의 방식이”므로. 얼어 있던 ‘그’가 긴 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자 새는 다만 “온몸을 털어내”고 “그간의 일을 다 잊은 듯이 날아”간다. 이번 시집 곳곳에 날아다니는 ‘새’는 한껏 가벼워진 언어로 냉담한 세계에 온기를 물어오는 시인의 분신 같다. 「반려」는 “그는 새를 풀어놓고 키운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말에 갸우뚱하게 되는 것은 “새들은 일 년에 하루만 그의 정원에 머문다”라는 문장이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새와 함께하는 날은 일 년에 단 하루뿐이지만, 화자는 새를 떠올리고, 새가 남긴 흔적을 상상하고, 새가 흘린 깃털을 주우며 “이게 새와 사는 게 아니라면……”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어느새 돌아와 가만히 가슴팍을 두드리는 기척”은 잠든 그에게 “생일 축하해” 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렇다면 세계와 적극적으로 부대끼지 않으나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화자들을 이번 시집의 주인공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새가 앉았다 간 자리에 남겨진 차가운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눈이 녹으면 뭐가 되지?”(「눈빛 보내기」)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잇따른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 그래선지 마치 물처럼 떠밀리고 부딪치고 밀려드는 감각이 다수의 시에 등장한다. 식당 문이 열릴 때마다 밀려드는 사람들(「강변식당」)이나 새벽의 실내 수영장에서 물살과 함께 밀려나는 바깥의 감각(「생존근육」), 바람이 “밀어내는 대로/ 휘어지”는 나무들(「느낌온도」)이 그것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하다가 이마가 서로 부딪치기도 하”(「주말농장」)지만 “부딪치면 찌르르 울리는 것이 있다”(「야외석」)는 것을 알기에 밖으로 향하는 존재들이다. 특히 이 시집의 후반부에 수록된 세 편의 연작시 〈보이지 않는 물〉은 경계를 넘어서는 물의 특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실 영훈과 나는 쌍둥이였고, 사람은 잠든 상태가 기본이라고 한다. 발 디딜 곳 없이 헤매다가 하얀 네모 안으로 들어가 쓰러지면 그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라고. 점점 더 깊이 이상해…… 참 이상하단 말이야…… 머리만 대면 파도가 밀려온다. 나는 나의 영혼을 자꾸 영훈이라고 한다. 이름을 조금씩 틀리게 말하는 습관이 있다. _「보이지 않는 물」(70쪽) 부분 이 시에서 “무용수 영훈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는” 화자는 어느덧 소설 속으로 들어가 영훈과 함께 “해변에 앉아 있다”. “영훈은 물처럼 부드러운 몸짓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 위를 뛰어다니”고, “발을 헛디”딘 ‘나’는 “난데없는 장소에 떨어”져 “모래 위에 한 글자처럼 누워 있다”. 그렇게 텍스트의 일부가 된 ‘나’는 “사실 영훈과 나는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 ‘나’는 자기 자신의 영혼조차 타자(영훈)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게 ‘나’가 소설 속 인물과 완벽히 겹쳐질 때 우리는 ‘나’의 영혼 위에 포개진다. 번번이 얼룩진 자리를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라는 정체성에서 미끄러져 타인과 완전한 하나가 되어보는 상상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존재라는 믿음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다른 존재에 감응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다짐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고양이가 그려진 종이」)는 각오는 거창한 신념보다 “장미 화단을 본 적 없는 사람도 장미를 그릴 수 있다”는 사소한 시도에서 비롯한다. 시인의 말처럼 “하얀 마음”이란 “어떤 오염에도 물들지 않는/ 마음”(「음각」)이 아니라, “계속 더러워지는 마음, 그러나 씻을 수 있는, 회복 가능한 마음”(‘미니 인터뷰’에서)이기 때문이다.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라는 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의 시 속에서 우리는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가 꿈꾸는 책은 “열려 있으니까 언제든지 와서 있어”라고 초대하는 “주인 없는 아지트”, “펼친 책에 얼굴을 파묻”으면 “다시 떼어낸 뺨에는 옮은 문장이/ 말투가/ 까맣게 새겨지”(「열린 공간」)는 시집이다. 시인의 마음에 하얀색 음각으로 새겨진 문장이 다른 이의 마음에 검은색 양각으로 옮겨가는 일은 놀랍고도 아름답다. 지금 펼쳐놓은 조해주의 시집에서 어떤 문장이 옮겨왔다면 우리는 겹겹이 물드는 하얀 마음의 공동체에 도착한 것이다. _오연경, 해설에서 · 조해주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가벼운 선물』 이후 4년 만의 신작 시집입니다. 이번 시집의 다정한 거리감이 퍽 인상적이에요. 무심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그 간극이 기껍게 다가왔는데요. 이러한 시적 태도를 취하게 되기까지 그 뒤편의 시간은 어땠나요? 그간 생애 마지막 졸업을 했습니다. 두번째 시집 『가벼운 선물』이 박사과정에 입학한 해 가을에 나왔고, 이번 시집은 졸업한 해 가을에 나오게 되었네요. ‘척척박사’가 되면 좀 똑똑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고, 다만 논문을 쓰는 동안 저 자신과 대면하게 되더라고요.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숨기지를 못하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순한 동물. 그런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어요. 그걸 보고 나니 그전처럼은 안 되더라고요. 좋아도 선뜻 좋다고 못 하고, 싫어도 곧장 싫다고 못 하게 되고요. 그러면 이제 현대에 맞는 복잡한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네요. 다정하지도 무심하지도 못하는 인간. 멀리하지도 가까이하지도 못하는 인간. 졸업을 하고 나니 다시 스무 살이 된 느낌이군요. 막막한 와중에 이런저런 일을 하며 정신없이 봄과 여름을 보냈어요. 그 간극이 그래도 ‘다정’으로 묶일 수 있다면 다행이겠고요. Q2. 이번 시집은 일반적인 시집 구성과 달리 부가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두 시집도 마찬가지인데요. 굳이 부를 구분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그렇다면 어떠한 흐름을 염두에 두고 시 순서를 배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까지 세 권 모두 부를 나누지 않게 되었는데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지만 이유를 붙여보자면 이러합니다. 비유하자면 부를 나누는 일은 산책로에 쉼터를 놓아두는 것과 비슷한데 저는 독자분들이 멈추지 않고 한 번에 걸어가시면 좋겠더라고요. 물론 시집 한 권을 단숨에 읽는 건 여러모로 힘에 부치기도 하고 덜 즐거울지도 모르지만요. 제가 떠올린 독자의 형상도 결국 걷는 사람이었어요. 첫 시집부터 시적 화자가 산책자라고 여겼고, 그 이동 경로가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목차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봤고요. 대략 이번 시집에서도 화자가 실내와 실외를 오가는 가운데 전반부에는 온도가 낮고 정적인 시편이 놓여 있고 후반부에는 모임의 이미지나 관계를 다룬 시편이 모여있습니다. Q3. 이번 시집에는 제자리에 있는 듯하지만 미묘하게 바뀐 온도를 포착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띕니다. 분명히 무언가 바뀌었음을 감각하게 되는 순간에 대해 들려주세요. 두번째 시집과 세번째 시집 사이에 제게 일어난 중요한 일 하나는 조카가 둘이나 생겼다는 것인데요. 가까이 살아서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알게 됐어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타고나는구나. 첫째는 책을 아주 좋아하고 많이 읽는 대신 먹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둘째는 그 반대고요. 제 어린 시절은 따로 영상 기록이 없어 어머니의 증언에만 의존할 따름이지만 아마 제가 문학으로 오게 된 데에도 제 힘은 미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기 의지가 무용하듯이 태어나기 전부터 지니고 온 사랑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번 생에서 제가 바꿀 수 있는 몫은 아주 한 끗에 불과하겠죠. 물론 언제나 그렇듯 그 작은 한 끗이 가장 바꾸기 어렵고, 또 가장 결정적인 변화이기도 할 테고요. 그래서 그 한 끗에 자꾸 눈이 가요. 크게 달라지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 아주 조금 달라지는 쪽에 관심을 기울이게 돼요. 최근 오랜만에 발목을 삐었는데요. 보도블록에서 아스팔트로 발을 내딛다가 순간 발목이 꺾였는데, 높이를 가늠해보면 한 뼘도 안 되는 차이였거든요. 어느 쪽을 바닥으로 감지하고 있었는지 착각한 것이 그만큼 큰 충격으로 온 거죠. 미묘한 변화도 그렇게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큰 압력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로 예를 들자면 한 권의 시집 안에서도 시와 시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어요. 예컨대 「열린 공간」의 “열려 있어 밀면 열려”와 「문 고치기」의 “생활하려면 막아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열어둔 것이다” 사이. 무한히 열어두는 마음과 최소한으로 열어두는 마음 사이의 온도 차 같은 것이지요. Q4. 이번 시집에서 유독 마음이 가는 시가 있다면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해주세요. ‘시인의 말’과 「하안(河岸)」 사이에도 어떤 낙차가 있는데 그 낙차 때문에 지금은 「하안(河岸)」에 마음이 가네요. 하안은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동(洞)의 이름이에요. 어머니가 제 출생지를 서울이라고 하셔서 평생 그렇게 알고 살았는데 얼마 전 기본증명서를 뗄 일이 있어 보니 광명에서 태어났더라고요. 지역번호를 똑같이 02로 쓴다는 점에서는 같은 지역이라고 ‘칠’ 수도 있으려나요. 따지고 보면 경계란 원래 거기 있던 것이 아니라 누가 어디쯤에서 한번 그어둔 것이겠지요. 저는 이제 “사랑이 끝나면 영영 시작되지 않는 사랑도 있다”라고 말하던 「하안(河岸)」의 세계에서 “한 번은 들렀다 나온 마음”(‘시인의 말’)으로 족한 만큼의 온도 변화를 겪었어요. 그렇다 보니 제게 있었던 「하안(河岸)」의 마음이 어쩐지 조금 멀게 느껴져서 자꾸 마음이 쓰이네요. Q5.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고도 다를 것 같아요. 하얀 마음의 공동체에 도착할 독자들에게 인사 한말씀 건네주세요. “하얀 마음”은 착한 마음이나 고결한 마음은 아니고요. 속죄하는 마음도 아니고요. 계속 더러워지는 마음, 그러나 씻을 수 있는, 회복 가능한 마음에 가까워요. 비 오는 날 장화를 신는 건 젖지 않아서가 아니라 젖어도 금세 닦아낼 수 있어서잖아요. 새것이 될 수는 없어도 계속 ‘다시’ 돌아오는 힘,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독자분들께 제 시가 바닷물처럼 짰으면 좋겠어요.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는 시였으면. 그래서 자꾸 다음 장을 넘기게 되고, 그러다 또 자꾸 첫 장을 다시 펼치게 하는 자꾸 하얀 마음이게 하는 시집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래 머물러달라는 말보다는 또 와달라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하얀 마음의 공동체라는 것이 어딘가 있다면 아마 그렇게 몇 번씩 되돌아온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겠지요. · 시인의 말 근처에 오면 들르라고 귀향한 그는 연락할 때마다 말한다 손님에게 꼭 포도 상자를 하나씩 손에 들려 보내는 사람 그의 집에 가지 않아도 포도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적어도 한 번은 들렀다 나온 마음이 필요했다 2026년 가을 조해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