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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거기 아직도 호랑이가 있다
해빙/ 창문에게 희망을/ 폐쇄 공원/ 물가에 호랑이/ 냄새의 근원/ 울음/ 공원의 새/ 벤치마킹 더 벤치/ 가을 서쪽/ 대성자원/ 기다리는 여자/ 꿈에/ 해변의 밤/ 4월에서 5월로/ 초저녁별 2부 이 동물원을 위하여 청소년문화센터/ 거짓말과 마법사/ 동물원 학교/ 왜가리의 자세/ 백색소음/ 비정규/ 내부의 적/ 기호지세/ 이 동물원을 위하여·서/ 고정간첩 3부 새는 노래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공허라는 것/ 꽃구름 아래/ 감자들/ 고통의 제왕/ 이상한 왕국/ 고독한 마라토너 오퍼튜니티 씨에게/ 나무들은 말없이/ 신생국, 별의 먼지/ 나날들/ 온두라스 캐러밴/ 제각각 생계를/ 더는 나타나지 않을 호랑이 4부 다만 아름다웠다고, 거기도 새가/ 밤을 낯설어하다/ 새와 함께 살기/ 억새밭 가에서의 체조/ 가을의 묵서/ 내 왼팔 이야기/ 밤 산책/ 10월/ 겨울밤/ 구름의 북쪽/ 불귀/ 낡아가는 저녁/ 커튼에 대한 명상/ 심연들/ 어느 가족 발문_당신이라는 차경(借景) 이규리(시인) |
嚴源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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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옥이 다른 감옥들을 부수며,
세상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흉곽 안에서 고드름이 후두두,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흔들림도 없이 제자리에서 고스란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해빙」 중에서 하루에 몇 번씩 주저앉는 마음 때론 기다림마저 잊어버려야 그건 오는 것이다 노을이 물들어서야 결국 오고야 만다는 것을 창문은 말없이, 다만 열중해서, 증명하고 있다 ---「창문에게 희망을」 중에서 이 공원에선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죽으면 다시 죽지 않는다는 말은 진실일까요?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공원에선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폐쇄 공원」 중에서 공중에 거대한 유리창 같은 게 있어 투명한 막을 만든다. 그것이 허공을 찌를 듯하던 울음소리를 되비춘다. 장마가 지나고 말갛게 씻긴 하늘은 새파랗게 그 너머에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그 아래 흰 광목 자락이 드넓게 허공에 펼쳐진다. 그것들은 울음을 받아안으며 펄럭인다. 가을하늘 무구하고 청명한 낌새가 이미 거기 깃든 것이다. ---「울음」 중에서 태풍의 뒷모습을 먼 동쪽 하늘에서 문득 보았지요 저녁놀 각별한 요즘입니다 자주 내린 가을비는 숲의 거미줄 다 망가뜨렸고, 물방울들만 하염없이 거기 매달렸습니다 그새 햇빛은 기울기보다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나봅니다 하릴없는 연편누독은 계절이 바뀐다고 쉬이 변하진 않겠지요 그 봄날에서 우리는 단 한 발짝도 떠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대도 부디, 마음 때문에 몸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을의 묵서」 중에서 벚나무 잎새가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버리고 가만히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본 것이 그 새였을까요? ---「거기도 새가」 중에서 애통과 무참함이 몸을 섞는 밤이다 누구나 잠들면 물이, 가득 밀려드는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밤이다 물속을 힘겹게, 걷고 있는 밤이다 ---「밤 산책」 중에서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어느 죽은 별의 먼지인지도 모른다.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다. 더 아프면 차라리 좋을지도 모르겠다. ---「신생국, 별의 먼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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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기다림마저 잊어버려야
그건 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아름답고도 쓸쓸한 풍경 그 근경과 원경을 섬세하게 배치하는 엄원태만의 시적 조경학 단정한 시어를 통해 삶에 찾아오는 쓸쓸한 풍경들을 정직하고 또렷하게 표현해온 시인 엄원태의 다섯번째 시집 『거기 호랑이가 있다고』가 문학동네시인선 253번으로 출간되었다. 초기작인 『침엽수림에서』(민음사, 1991)와 『소읍에 대한 보고』(문학과지성사, 1995)를 통해 폐허와 황량함, 질병이 가져온 실존적 고뇌와 소멸을 알레고리를 통해 다루었다면 이후 『물방울 무덤』(창비, 2007)에서 시인의 시선은 평범한 이웃들의 고단한 일상과 타자의 아픔을 품어 안으며 더욱 깊어진다. 백석문학상 수상작인 네번째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 2013)는 삶의 비극과 상처를 거부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거대한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순환 속에서 소멸의 운명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경지를 보여준다. 네번째 시집 이후 긴 시간이 흘러 십삼 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견딤의 시학’에 머무르지 않고 ‘포용의 시학’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그는 생사의 경계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타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고통의 본질을 끌어안는 품 넓은 기개를 보여준다. 왜가리는 단지 그 조용한 성격 탓에 격리 조치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조류관도 곧 폐쇄될 거란 소문이다 새들의 방관자적 수동성이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라는 진단이 언론에 보도되자 새 지도부의 전격적 혁신 정책 목록에 포함되었다 한다 독방 신세인 왜가리는 대접만한 물웅덩이를 배정받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쪽 다리를 접어 몸속에 집어넣는 일 제 얼굴만 겨우 비치는 물웅덩이를 골똘하게 들여다보는 일 _「왜가리의 자세」 부분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띄는 또다른 부분은, 현실의 세상을 동물원에 비유하고 있는 점이다. 시인이 이야기하는 ‘동물원’은 이경록 시인이 엄혹한 유신체제하의 사회를 ‘식물원’에 비유한 것과 연결된다. 자신들의 말이 통제당하고 조용히 복종할 것을 강요받은 사람들이 군사독재 시기의 ‘식물’인간들이라면, 갖은 말들이 넘쳐나 시끌벅적한 이 자본주의사회는 ‘동물’들의 공간이다. 동물들의 세상은 이런저런 울음소리로 넘쳐나지만, 정작 귀기울여 들을 만한 말은 존재하지 않고 “백색소음”(「이 동물원을 위하여·서」)만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지구라는 이 거대 동물원”(「내부의 적」)으로 세상을 명명하며 자본주의사회가 주는 본질적인 괴로움과 그 모순을 비유와 역설을 통해 드러낸다. 동물원 같은 이 사회 속에서, “경쟁을 통해 형평과 균형에 도달한다는 건 너무 이상적인 역설일 뿐”(같은 시)이다. 하지만 엄원태의 시선은 자본주의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진정 관심을 갖는 점은 자본주의사회의 냉정함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소멸되어가는 ‘개인’이다. 동물원이라는 시스템 속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자신이 그 안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는 줄도 모르고, 각자의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고만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자아가 사라지는 줄도 모른다. 자신의 노동과 감정, 심지어는 삶 전체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전시되고 소비되는데도 말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내게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세계가 온통 거기에 열심히 참여중”인 것 같다고 말한다. 존재의 소멸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풍조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런 상황을 인식하며, 어떻게 하면 자아의 소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골몰한다. 사회가 시인에게 허락한 것은 “대접만한 물웅덩이”(「왜가리의 자세」)뿐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걸 거울처럼 “골똘하게”(같은 시)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물웅덩이에 비친 스스로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일, 그것은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시를 써오며 견딤과 포용의 시학을 펼쳐온 시인의 모습과 어쩐지 겹쳐 보이기도 한다. 곤줄박이 앉았던 자리보다 쇠박새 앉았던 자리가 더 말갛다. 조금 더 비어 있다. 비어 있던 가지였는데 새가 앉았다가 떠난 뒤에야 더 말갛게, 헹궈낸 듯 비워낸 게 보인다. 새는 그렇게 저들의 자취를 허공에 남긴다. _「공허라는 것」 부분 엄원태 시인은 모든 풍경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는, 관조의 미학을 아는 시인이다. 앞서 이야기한 사회적인 풍조부터, 자신의 몸에 밀착해서 느껴지는 삶의 고통들까지 그는 한 풍경에 겹쳐놓고 멀리서 관조한다. 이런 그의 태도는 자신이 견뎌온, 그리고 실시간으로 견디고 있는 몸의 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망가져가는 손가락뼈들” “고관절 석회화 건염” “사타구니 물혹과 겨드랑이 혈종”(「가을의 묵서」)과 같은 현실적인 병의 상황마저 그는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본다. 그가 육신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은 자신이 이렇게 힘들다는 호소가 아닌 묵묵한 기록의 의미가 된다. “생애(生涯)라는 건,/ 원래부터 비어 있는 단애(斷崖)를/ 비로소 마주하고,/ 온몸으로 통과해내는 일”(「공허라는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온몸으로 통과하면서도 그는 불평하거나 마냥 괴로워하지만은 않는다. 대신 그는 여한은 없다고,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거기도 새가」)답다고 읊조릴 뿐이다. “저무는 것들조차/ 수긍할 줄 알게 되”(「4월에서 5월로」)었다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이 받아들이고 수긍해온 것을 그저 가장 가까이서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작은 식물들을 공들여 배치하고 조심스럽게 겹쳐놓아 정원의 풍경을 만들어내듯, 엄원태 시인은 이토록 신중하고도 침착하다. 이런 점에서 엄원태의 시집을 읽는 일은 잘 꾸려진 정원을 거니는 일과도 같다. 작은 꽃 하나, 작은 풀 하나를 살피면서 전체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일. 그것이 엄원태 시인이 이번 시집 『거기 호랑이가 있다고』를 통해 우리에게 선물하는 인상적인 산책길일 것이다. 느티나무 우듬지에서 울다 지쳐 쉬곤 하는 산비둘기는 딱 그만큼의 높이에서 구슬픔 하나로 끈질기다 유치원 아이들이 재재거리며 행진하듯 일렬로 지나가는데 급식소 앞 노인들보단 조금밖에 서글프지 않았다 봄날은 그저 허공에 꽃구름을 피워올리고, 제 할일 다 했다는 듯 하루를 전심전력 흘려보내고 있다 _「꽃구름 아래」 부분 엄원태 시인, 그는 정확하고 정직했다. 정확하다는 것은 사실이나 현상에서 명료하다는 의미이며 정직하다는 표현은 유불리를 타산하지 않는 투명성을 대신한 말이다. 그에게 물으면 결론이 빠르다. 독해와 추론의 조합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가 교양적인 삶을 살해하고 인식의 시들을 쓰기로 한다는 각오는 편편의 시에 스며 있다. 시집 전반의 치열하되 고요하고 정성을 다하되 수식 없는 검박함은 그를 끝까지 맑은 사람으로 남게 한다. 쇠잔해가는 육체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감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생애 전모가 극한이지만 도망도 물러섬도 없다. 그는 충분히 시와 삶에 복무하였다. 육신에 다가온 그늘을 생의 한가운데 풍경으로서 한 번, 다시 한번 헹궈낼 뿐 거부하지 않는다. 울지 않는 밤은 없지만 울지 않아야 하는 밤이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제 “새는 노래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육신에 그려진 고통의 등고선이야말로 이미 “세상 노래를/ 다 한 것이”므로, 폐허를 견딘 눈부신 개화가 조용히 그의 언덕에서 흔들리고 있다. “단애”였던 그의 생애, 그를 향한 ‘차경’이라는 명명은 그가 피워올린 그 꽃들, 아슬한 언덕 위의 눈부신 꽃들이 붙인 이름이다. _이규리, 발문에서 · 엄원태 시인과의 미니인터뷰 1. 2013년 이후 13년 만에 다섯번째 시집을 펴내시는 소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랜만의 시집 작업이 어떠셨을지요? 개인적으로 저의 정년 퇴직이 2020년 여름이었으니 벌써 6년이 지났군요. 퇴직 후 집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어 ‘수유재’라는 작업실을 마련해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요즘 발표되는 시들을 집중적으로 읽으며 저 나름의 아카이빙을 하고, 또 시편들을 골라 가까운 몇몇 후배 시인들과 월례 시 세미나 모임을 통해 ‘함께 읽기’를 해왔습니다. 이번 시집은 이런 연장선에서 이뤄진 오랜만의 원고 정리의 결과입니다. 그간 오로지 시를 읽는 데만 마음이 쏠려 위안과 치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시 쓰는 일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게 제 소회이자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새롭게 쓰는 작업도 제대로 다시 시작하고 정진하기 위해 시집을 묶어 발간하는 것이라고 변명 같은 췌언을 덧붙입니다. 2. 시집의 제목이 '거기 호랑이가 있다고' 입니다. 제목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싶으셨는지, 어떻게 시집의 제목을 결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호랑이는 ‘거기’ 있습니다. 여기 있지는 않지만, 강 건너 거기에는 있다는 전언입니다. ‘시인의 말’에서도 쓴 바 있지만, 저의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인식이 요즘의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그런 존재의 희미해짐에 골몰해 있는 듯합니다. ‘호랑이’라는 상징적 존재 역시 그렇게 세계에서 사라져가고 이제 그 존재 자체가 미미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거기엔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실존적 믿음-그것이 이 시집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원고를 살펴준 김민정 시인이 ‘호랑이’라는 상징과 ‘거기’라는 거리감에 주목해 제목으로 제안했고,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전격 수용했습니다. 3. 전체적으로 동물원에 대한 시들이 많이 눈에 띄어요. 선생님에게 '동물원'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동물원 시편들은 오래전 요절한 고 이경록 시인의 시집 『이 식물원을 위하여』를 오마주하여 쓴 것들입니다. ‘식물원’에서 우리 사회가 엄혹한 유신체제하의 ‘말을 잃어버린 식물’로 상징되는 시대를 거쳐왔다면, 요즘은 오히려 말이 넘쳐나서 그야말로 백색소음 상태로 개인의 존재를 속절없이 지워가고 있는 시대라는 역설을 ‘동물원’으로 상징하고 싶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추가된 근작들은 주로 2부의 동물원 연작 시편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 한집에서 평생 함께 살아온 어머니를 작년에 여의고 쓴 시편들은 4부 첫머리에 모아두었습니다. 4. 이번 시집을 살펴보며 삶의 고통을 끌어안는 태도와 삶에 대한 쓸쓸한 긍정의 태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태도를 견지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삶에 대한 쓸쓸한 긍정’의 태도라 하시니 새삼 제 시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저는 서른셋 젊은 시절부터 한평생을 질병의 고통과 결핍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일찍이 죽음과 소멸을 인식하고, 그 죽음과 소멸을 넘어 혹은 그것들과 함께 살아온 제 실존적 경험이 그런 세계관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저의 병도 깊어져 끝이 멀지 않아 보이는 요즘은 그 소멸과 순환에 대한 쓸쓸한 긍정이 더욱 제 것인 양 실감하고 있습니다. 5. 『거기 호랑이가 있다고』를 읽을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시집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안내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시집은 개인적으로 너무 오랜만에 내는 것이라 한 가지 주제를 천착하는 집중력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오랜 기간 제 안의 침묵을 통한 응축력이 시집 전반에 걸쳐 나름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집을 읽으실 때도 그 침묵과 여백의 행간까지 살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시인의 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내게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존재의 희미해짐이란 내 것만은 아니어서 세계가 온통 거기 열심히 참여중인 듯하다. 뒤늦게야 세상을 향해 다시 눈길을 준다. 2026년 9월 엄원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