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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어느 날 생강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죽 재킷/ 소뿔소리/ 개구리의 왕/ 개구리의 맛/ 초절임 생강/ 건포도/ 굿이어 웰트/ 캐시미어 100/ 생일/ 버섯/ 고기만두/ 빅 브레드/ 빵/ 모자 1/ 모자 2/ 피크닉 2부 진실의 엿 시집 먹기/ 구덩이/ 들개/ 와이퍼/ 재채기/ 덩어리/ 엿/ 스키니/ 소금장수/ 리미티드 에디션/ 모과/ 브롤스타즈/ 수제비/ 얼굴/ 당신들의 시는 내게 없다/ 핵비누폭탄 3부 이곳은 잡초의 무덤 잡초의 요람 잡초들 1/ 잡초들 2/ 잡초들 3/ 잡초들 4/ 잡초들 5/ 잡초들 6/ 잡초들 7 4부 심장과 두 다리만 남은 슬픔 토마토가/ 기울기/ 걸음 5/ 걸음 6/ 당나귀/ 속눈썹/ 비/ 삽/ 개똥/ 캐치/ 나의 개/ 헬스 광인/ 털복숭이/ 도둑/ 바게트/ 블랙아웃 해설| 움직임의 시_조대한(문학평론가) |
차성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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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角聲)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내 몸에서 유일하게 차가운 이 소뿔로 소리를 낸다. 소뿔로 운다. 나의 뜨겁고 거대한 몸덩어리가 뽑아올린 것이 바로 이 소뿔이야.
---「소뿔소리」중에서 어느 날 생강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강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봐왔지. 아름답고 슬프고 외롭고 또 이상한 일을 겪었단다. 이제 나를 여기서 꺼내줘. ---「초절임 생강」중에서 그래 이 불은 내가 아니면 끌 수 없는 불. 우리는 초 기둥 옆에서 잿더미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생일 축하해. ---「생일」중에서 작은 죽음. 클라이맥스. 솟구침. 가짜 재채기는 금방 티가 나지. 진짜는 흉내낼 수가 없어. 재채기와 재채기 사이의 긴 침묵이 바로 너야. ---「재채기」중에서 나는 이제 웃지 않기로 했다. 나는 하얀 비누인데 웃으면 웃을수록 거품이 나서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중이다. 바보들은 웃는다. 웃기지도 않는다. 깔깔거리는 포복절도. 죽기직전에 뿜어내는 게거품 같다. 비린내가 진동한다. ---「핵비누폭탄」중에서 나는 여기 있다 있다 있다 있다 있다를 자꾸 욱여넣는다 주문을 외면서 없다 없다 없다를 이겨내려는 듯이 있다 없다 있다 없다 있다 없다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 그렇게 여기 있는 것 그리고 없는 것 ---「잡초들 4」중에서 불시착도 아름다운 도착인가 장렬한 추락의 끝 스스로 무너지는 춤의 멈춤을 기억하면서 걸음이 걸음을 지우고 심장과 두 다리만 남은 슬픔을 운반하는 말도 안 되는 걸음을 포기할 때까지 걸음이 걸으면서 걸음을 꿈꾸는 걸음 ---「걸음 5」중에서 뜨겁고 일렁이고 소용돌이치는 몸속의 빗방울이 역류하는 밤 가득 채우고 솟구치고 흘러넘치는 물 위로 사정없이 두들기는 빗방울들이 이유도 없이 나를 열고 비집고 깨우고 보이지 않는 검은 비가 나를 흔들어 나는 젖은 웅덩이로 고여 있다 ---「비」중에서 우리집에 가서 목욕도 하고 밥도 먹고 같이 잠도 자고 산책을 하며 지는 해도 같이 보자 나는 혼자고 끝까지 혼자고 혼자여서 내가 외로울 때 너는 작고 붉은 혀로 내 발등을 핥고 나는 네 검은 털을 손가락 사이로 쓸어주리라 개는 글썽이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우쭐거리다 순간 줄을 놓쳤을 때 빈 벌판으로 쏜살같이 도망치는 나의 개여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의 개」중에서 캄캄한 밤이면 골목에서 걸어나올 것만 같아 버리지 못하는 검은 줄이 내 기다림의 형식 나는 줄 끝에 매달려 산다 ---「블랙아웃」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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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환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2018년에 출간한 첫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이후 오랜만에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셨습니다. 소회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출간 주기가 다른 시인들에 비해서 느린 편이죠. 첫 시집은 앞뒤 재지 않고 몰아붙여서 낸 느낌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충분히 숙성시켜서 내보낸 느낌이에요. 늦된 감이 있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는 거니까 일부러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어요.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막상 나오니까 너무 신나는 거 있죠. 오래 기다렸던 만큼 이 기분을 느긋하고 차분히 즐기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2. 표제작인 「초절임 생강」만큼이나 뾰족하게 날이 서 있는 시편들이 눈에 띕니다. 이를 아우를 시집의 제목을 어떻게 결정하게 되셨는지 들려주세요.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불현듯 ‘초절임 생강’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어요. 예전에 잠을 자다가 울면서 깨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꿈속에서 슬픈 일을 겪은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더라구요. 뭔가 슬펐던 것 같은데, 잠에서 깨면 기억이 잘 안 나요. 이미 울고 있는데…… 그때의 눈물이 희미하게, 맵고 쌉싸름한 느낌이었어요. 이리저리 분주한 삶을 살다보면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냥 사는 게 맵고 쌉싸름하네, 그렇게 툭 털고 일어나 또 이리저리 뛰어다니곤 해요. 사는 게 이상한 꿈 같기도 하고. 이 시집도 하나의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3. ‘생강’을 비롯해 ‘잡초’ ‘소’ ‘개구리’ ‘개’ 등 여러 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쇄를 통해 특히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나 생각을 잡아채서 쓴 시들이에요. 시를 쓰는 저를 보고 있으면 때로 잡초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무엇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앉아서 그냥 쓰거든요. 그게 저의 기본값이고, 바로 ‘잡초’ 상태예요. 갑자기 벼락치듯 단어가 떨어지고 문장이 마구 밀려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계시받은 것처럼 허겁지겁 씁니다. 저는 시간을 주로 혼자 보내는데, 오랫동안 그러고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잖아요. 생강, 소, 개구리, 개라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람이 하는 얘기는 어느 순간 지겨워지잖아요. 근데 얘들은 신선해요. 4. 수록작 중 가장 아끼는 한 편을 꼽는다면 무엇인지, 이유와 함께 소개해주세요. 표제작인 「초절임 생강」이요. 우리 모두 자기만의 아주 맵고 알싸한 생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에게 한 덩이의 생강이 있는 거죠. 울음덩어리라고 해야 할까. 남이 대신 울어줄 수 없는 자기만의 울음이 있고, 울음이 난다는 건 내 안의 생강이 칼에 찔려 매운 내를 내는 거예요. 제 생강은 꿈속에 있는 것 같아요. 꿈을 꾸다가 꿈에서 나가고 싶은데 나가지 못하는 꿈을 꾼 적이 있어요. 내가 생강이고 생강이 나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제가 꿈을 꾸는 방식이에요. 그게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쓰고 나니 시원한 기분이 들었어요. 5. 환상적이고 유쾌한 장면들 속 비정한 정서가 날카롭습니다. 이를 다시 농담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삶의 고단함을 소화하는 작가님만의 방식이라고도 느꼈습니다. 그런 이번 시집이 독자들의 마음엔 어떻게 가닿길 바라시는지 말씀해주세요. 인간의 대단한 점은 말 한마디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해요. 빠져나갈 구석이 없어도, 몇 마디의 말로 웃음이 터지고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지곤 하죠. 상황이 바뀐 건 아니지만 분명 무언가 달라지는 거예요. 저는 독자분들이 제 시를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진지하고 심각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어이없는 웃음을 짓거나 실소를 터뜨렸으면 좋겠어요. 그건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고 제 시의 방식이기도 해요. 시 안에 꼭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냥 시집 속 개구리, 소, 개, 생강, 잡초, 고기만두, 빵, 염소, 모자, 버섯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세요. 어딘가 슬프고 외롭지만 이상하고 재밌는 꿈이구나.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시인의 말 이 시집을 매일 한 장씩 복용하면 너는 어느 날 아침 초절임 생강이 되어 눈을 뜨리라. 이상하게 따듯하고 또 한없이 슬픈, 2026년 2월 차성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