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시인의 새 시집은 시인 특유의 토속적 ‘입말(口語)’과 ‘몸말(肉聲)’이 한층 더 그윽하고 깊어져 이윽고 유현(幽玄)의 ‘그림자’를 거느린다. 그림자는 단순히 그림자를 덧댄다고 해서 더 두꺼워지거나 깊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따뜻한 무관심’이나 ‘싱싱한 불편’ 같은 그 ‘역설의 힘’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것이어서,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마치 한 몸인 듯 힘껏 껴안고 있는 ‘무심(無心)’ 혹은 ‘사무사(思無邪)’의 경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역설의 그림자’를 체득하는 일이야말로 시의 숙명이자 시인의 운명이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겠다. 시인은 전작에서부터 ‘입말’을 천착하듯 구사해 왔다. 시인에게서 특유하게 체화되고 발화된 ‘몸의 말’은 오로지 시인의 것이어서 더욱 힘이 세다. 생이라는 ‘실존(實存) 언어’의 살아 꿈틀대는 근육과 신경 혈관과 세포들이 하나의 ‘역동적 통일성’이라는 ‘몸의 시학’을 획득하는 데 수렴되는 진경(進境)을 이번 시집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싱크홀 포비아」 「흠집」 「목 없는 골목」 「봄비의 혼잣말」 「하지」 「소서」 「어디에 둘까요」 「나는 보호자입니다」 「다 팔아 뿌믄 나는 머 하는교」 「나는 누구입니까」 같은 가편들에서 그 ‘온몸의 역설’을 생생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