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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글
12월 31일 / 권누리 [시] 아키비스트 [편지] 새에게, 생일 / 조해주 [시] 반려 [편지] 숙희에게 결혼기념일 / 김은지 [시] 모르는 세계 [편지] 조금 다른 결혼을 하려는 E님에게 스승의날 / 유계영 [시] 그림자놀이 [편지] 그늘과 그림자?나의 선생님들에게 독립 / 정다연 [시] 여기에 오고 싶었어요 [편지] 당신에게 졸업식 / 정재율 [시] 단추 나눠 가지기 [편지] _______에게 미래의 네 스물여섯 번째 생일 / 안태운 [시] 하오 [편지] 미래의 네 스물여섯 생일을 기념하며 이별 / 배수연 [시] 이별의 날 [편지] 루다에게 새해 전날 / 김유림 [시] 둥근 사과 한 알이 일으키는 반성은 둥근가? [편지] 동생에게, 아버지께, 독자께 그린데이 / 이은규 [시] 그린데이(GreenDay) [편지] 가로수길 열두 번째 나무 아래서 만나요 어버이날 / 임승유 [시] 남겨놓은 것 [산문] 옥산과 상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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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마음을 쥐고 어떤 시간으로 향해갈 때, 한 손에는 미리 주문한 귀여운 레터링 케이크가, 다른 한 손에는 나눠 쓸 고깔모자가 반짝이 장식을 나부끼며 매달려 있습니다. 성큼성큼 지나온 만큼, 조심스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 우리가 움직입니다. 우리가 모여 있고, 우리가 웃고 울다가 헤어집니다. 함께 빚은 이야기를 나눠 갖고, 나눠 가진 이야기를 각자 품으면서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를 헤아릴 때 희미해지던 시간의 이마가 맑게 빛나고, 지나간 시간의 여운은 명징해질 것입니다.
--- p.8 「시작하는 글」중에서 봐, 우리가 나눈 슬픔을 깊숙이 파헤치면, 거기에는 더욱 깊은 슬픔이 아니라 깜찍한 미래가 있을 것만 같아. 내가 나의 미래를 정면으로 마주 보지 못할 때, 새, 너희는 나를 대신해 꼭 맞는 안경을 새로 맞춰 쓰고 초여름 햇빛이 무한히 투과하는 이파리를 올려다보듯 나의 미래를……. --- p.22 「권누리, 편지_ 새에게,」중에서 깜빡 잠들었던 그가 거대한 새의 배처럼 천천히 들썩이는 침대에서 눈을 뜬다 생일 축하해, 어느새 돌아와 가만히 가슴팍을 두드리는 기척 때문에 --- p.27 「조해주, 시_ 반려」중에서 나는 심장이 작지만 스타워즈를 스토리 순서로 보고 제작된 순서로도 보고 당신은 심장이 크지만 하얗고 조그마한 말티즈를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계속 저와 더 모르면서 살아가시겠습니까 --- p.39 「김은지, 시_ 모름의 세계」중에서 그늘을 벗어나면 비로소 뺨 위의 주근깨가 짙어집니다. 서로서로 밟고 가기 좋은 그림자들이 태어납니다. 선생님, 나는 태어납니다. --- p.61 「유계영, 편지_ 그늘과 그림자」중에서 숲속의 둥지는 비어 있어 인간이 건드린 둥지는 더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둥지의 새끼는 떨어지기로 했어 이끼와 여린 풀잎이 새끼를 포근하게 감싸줬어 저항하면서 날아갈 수 있게 --- p.65 「정다연, 시_ 여기에 오고 싶었어요」중에서 그거 알아? 일본에서는 졸업식 날 좋아하는 사람에게 교복의 두 번째 단추를 준대.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너는 내게 단추를 주었을까? --- p.86 「정재율, 편지_ _______에게」중에서 너는 망설인다. 너는 눈 쌓인 풀밭을 밟아봤을까. 비가 내리면 기뻐할까. 너는 미래를 생각할까. 너는 외국어 배우는 걸 즐길까. 다큐멘터리를 보며 울기도 할까. 너는 산딸기를 먹는다. 너는 접붙일까. 안녕. 어른이 된 아이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어른에게. --- p.98 「안태운, 편지_ 미래의 네 스물여섯 생일을 기념하며」중에서 루다는 말이 없어 알아들었기 때문에 너는 코를 훌쩍이지 루다를 이해하기 때문에 --- p.103 「배수연, 시_ 루다에게」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좋은 글을 썼다고 격려해주었지만 제게 필요한 건 따스한 격려가 아니라 녹지 않는 얼음처럼 차갑고 완벽한 글입니다. 계속해서 쓸 것인지. 계속해서 쓴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 자신을 용서하고 안아주는 일입니다. --- p.127 「김유림, 편지 아버지께,」중에서 어쩌면 그린데이 같은 건 없어도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옹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말들이 사라질 텐데 사라지며 말할 텐데 --- p.137 「이은규, 시_ 그린데이」중에서 옥산이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묘에 좀 더 큰 떡을 골라서 가져가는 마음을 내가 다 이해하는 건 아니다. 아픈 몸으로 혼자 살아가고 있는 옥산에게 내가 가져가야 할 적당한 마음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 알지 못한다. 종종 옥산과 함께 살 곳으로 어디가 적당할지 생각해볼 뿐. --- p.154 「임승유, 산문_ 옥산과 상추」중에서 |
시간에 각인된 이름을 손끝으로 만져보는 일
시와 편지로 다가서는 기념일 누구에게나 한 번 하루쯤, 있었을 법한 날들을 기념일로 호명하며 그날의 이야기를 시와 편지로 다시 써 내려가는 기념일 앤솔러지 『케이크 자르기』가 출간되었다. 시간에 각인된 순간으로 다가서는 이번 책에는 11명의 시인이 시와 편지를 통해, 지나온 기념일에 묻혀 있던 오랜 기억과 순간을 꺼내와 지금의 우리에게 내밀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한 손에 감기는 작은 판형의 문고본으로 출간된 이번 책은, 주고받음의 의미를 생각하며 작지만 빼곡한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개성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하며 독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11명의 시인(권누리, 조해주, 김은지, 유계영, 안태운, 김유림, 임승유, 정다연, 정재율, 배수연, 이은규)이 참여해 지나온 시간을 함께 돌아보았다. 각자 시와 편지로 호명하는 기념일의 모양도, 종류도, 담겨 있는 이야기도 모두 제각기다. 그래서 한 권의 책에 담기는 의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이번 책은 케이크의 촛불을 불면 생기는 잠깐의 암전이나 꺼진 초의 연기와 같이 남몰래 자라나고 있던 어떤 어둠에 대해 다가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와 편지는 모두 자신의 기억을 거쳐 태어난 기념일들로부터 적혔다. 그때의 나에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너에게, 앞으로의 우리에게…. 덮어쓸 수 없이 돌올한 날들을 불러와 시와 편지로 다시금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모두 기억을 거쳐 가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시인 안태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기억을 거쳐 어른이 된다”고. 이 기념일들에 기대어 우리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도 유의미할 것이다. 세상이 정해준 기념일이기도 하고, 스스로 정하게 된 기념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쁘고 단란한 일에만 기념일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어떤 욱신거리는 부분일지라도,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오늘을 살고 있다면, 그날을 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아물어 가던 상처와 흉터의 자리까지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어떤 날을 기억 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기념일 앤솔러지 『케이크 자르기』는 시간에 각인된 이름을 만지고, 살아갈 날들 속에서 뒤돌아볼 수 있는 오랜 날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이 책으로 하여금 무수한 시간 속에서 희미하게 연결되어 읽는 이 모두가 케이크를 공평하게 자르는 또 하나의 기념일을 지나는 것이다. 부치지 못하고 오랫동안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열한 명 시인들의 시와 편지를, 독자들의 우편함에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