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산에 올라도 사라진 마음이 돌아올 기미가 없다면. 호숫가를 걸어보아도 생각이 꼼짝 않는다면. 당신의 생활은 무사히 건강한가? 파업을 해도 택배가 현관 앞에 고분고분 놓여 있다면.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식탁 위에 싱싱한 연어가 올라와 있다면. 세계는 평화로운 한잠 중인가? 남현지의 시는 사랑을 하라고, 마음을 지키자고, 선량하고 아름답게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은 해로워라”(「피서」)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거대한 마음들에 켜켜이 짓눌려 있는지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냉가슴 위에 마음의 위력을 되돌려준다. 시집을 펼치고 나는 알게 되었다. 자연이라고 부르는 추상, 정물처럼 얌전한 사랑 같은 것들이 실은 어떤 종횡무진으로 까다롭게 살아 있는지. 손쉬운 방법으로 뭉뚱그려놓은 세계가 어떤 고통으로 제각각의 세부를 가시 돋치는지. 너무 깨끗한 물을 보면 깊이를 알 수 없어 두려운 것처럼, 시집을 읽으며 때로 몸서리쳤다. 문득 시의 맑은 표면 위에 나의 얼굴이 불쑥 비치기도 했으므로. 그러니 남현지의 시는 관조의 위치에 안전하게 자리 잡고 대상을 음미하도록 돕는 가이드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끄럽고 변덕스럽게” “깜깜해질 때까지 자신을/ 종일처럼”(「오늘의 기도」) 지켜볼 수 있는 힘, 우리 자신의 고통을 지켜볼 수 있는 담대한 용기만큼은 반드시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