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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양장, 개정판
유계영
현대문학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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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 시리즈

책소개

목차

언제 끝나는 돌림노래인 줄도 모르고
인과
한 점을 지나는 사람
버닝 후프
터틀넥
횡단
환상종
시리즈
영혼성
큐피드
드라마투르그
인그로운
북쪽으로 놓인 침대
접골원
썬 앤 문
조정 시간
불안을 전달하는 몇 가지 방식 중에서
토끼잠을 자는 우리를
헤어지는 기분
잘 도착

에세이 : 공장 지나도 공장

저자 소개 1

198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하였으며,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온갖 것들의 낮』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산문집 『꼭대기의 수줍음』이 있다.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시결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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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2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90쪽 | 148g | 110*190*8mm
ISBN13
9791167901378

책 속으로

불행을 느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탓하기
다지증의 발가락처럼 달랑거리는
다섯 아닌 여섯, 외롭지 않게

모르는 사람의 기념사진에 찍힌
나를 발견하듯이

오늘날의 태양은 상상의 동물이 되었다

아름다운 건 왜 죄다 남의 살이고 남의 피일까
강물에 돌을 던지고 물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던진 돌을 잊어버린다
---「언제 끝나는 돌림노래인 줄도 모르고」중에서

신발을 늘리려고 신고 잤다
구겨진 티셔츠는 입고 잤다

풍만한 어둠이 밤새도록 나의 피부를 걸치고 있다
아침이면 알맞았다

덩굴손이 창살을 한 바퀴 더 감았다
---「영혼성」중에서

은총은 어쩜 이리 가벼워
무일푼이 가득한 성금함을 들고

지옥의 안락의자 위에서
잠든 자들이 자신의 따귀를 때리며 깨어나는 곳

앉지 않으면 오후의 뒷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청춘이 물 건너갈 것처럼
빈자리를 벌리며 호들갑 떠는 늙은이와
앉은뱅이 중력과 함께

강을 건넌다 건너갔던 것을 다시 건너간다

---「썬 앤 문」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 유계영은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두고 “시랑 나랑 잘 맞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스무 편의 시를 통해 전복을 향해 가는 예측 불허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일상을 뒤틀고 일탈하려 든다. “남편의 목을 조른 손으로 바구미를 골라냈다/같은 손으로 쌀을 씻고 흰살생선을 구웠다” “사랑은 사랑이 바닥나기 전에 끝장나게 하시라……/사랑이 아직 사랑일 때 바닥나게 하시라……/죽은 생선을 움켜쥐어본 적도 없이 끝날/딸의 볼륨 없는 사랑”(「버닝 후프」) 당당한 목소리로 세계에 의문을 갖고 불신을 던지는 전작의 태도를 이어가면서, 시인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기민하게 엿보며 “풍경을 붙들어 매는 놀라운 시선”(시인 이근화)을 보여준다.

핀 시리즈 공통 테마 에세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붙인 에세이는, 시인의 내면 읽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출발한다. 이로써 독자들이 시를 통해서만 느꼈던 시인의 내밀한 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이 에세이가 ‘공통 테마’라는 특별한 연결고리로 시인들의 자유로운 사유공간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서로 다른 색채로, 서로 다른 개성으로 보여주는, 깊숙한 내면으로의 초대라는 점은 핀 시인선에서만 볼 수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다.

‘공장’을 테마로 한 에세이 「공장 지나도 공장」은 앞으로 닥칠 여자로서의 흔한 인생을 거부하고 서울 가리봉동 공단으로의 탈주를 과감히 감행한 어머니의 체험이 담겨 있다. 열여덟에 집을 나온 여자는 시골에서 도시로 와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부품을 생산하며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고, 인생의 굴곡을 겪는다. 그녀가 생산한 것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딸이다. 그러나 딸은 그녀가 피하고 싶어 했던 삶의 물음을 던짐으로써 점점 불량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에세이를 통해 사유에 잠식되지 않고 거대한 혼돈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정다운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구성된 독창적인 시인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시편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시와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특색을 갖춰 이목을 집중시키는 핀 시리즈 시인선의 이번 시집의 표지 작품은 패브릭 드로잉 작가 정다운(b. 1987)의 작품들로 장식했다. 동덕여대 회화가 출신의 정다운 작가는 신진 시각예술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기획프로젝트 ‘2017 아티커버리(articovery)’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중국, 홍콩,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예술가다.

작가의 말

여자가 생산한 것 중 하나인 여자의 딸, 나는 전구 공장이 마음에 든다. 나는 여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전구 제조 과정이라든지 공장의 사건들에 대해 말해달라 조른다. 혹시 화재 사고나 정전 사고는 없었는지, 누군가 다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한 적은 없는지. 아니면 운동권 대학생들의 위장 취업이나. 여자는 나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딸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대체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인가.
뭐하러 그런 걸 기억하고 있겠어.
여자의 말에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중얼거린다.
생각이 안 나도 생각하려고 해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여자는 자신의 딸만큼은 불량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이럴 때 보면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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