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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펼치며
이소호 들여쓰기 없이 첫 문장 시작 그레이 블루지 가장 보통의 가족 배동훈 끝없는 봄 맨손 자전거의 계절 꼬리의 뜻 김연덕 봄 재킷 여행과 봄 생일 손미 손바닥 목소리 마음 한 알 원지해 빛 명상 구애 사랑과 방법 김이섬 ISBN과 귤 돌을 던지면 밤 전체가 울렸다 그린 룸 김지은 건너편 악몽으로부터 ·· 구판본 구합니다 뾰족 귀 강아지 이해 泣かないで 안녕, 발목에 닿는 친구 생일 증후군 안병현 귤락 가이드라인 살아 있는 영혼을 발설하기 오영미 살은 쪄도 맥주는 마시고 싶어 벚나무 아래에는 나의 하나뿐인 봄에게 채수빈 나의 문우 솔민에게-세 번째 교환 편지 나는 수줍어서 그 어깨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이현호 어떤 봄은 안녕보다 길다 어떤 봄은 영원보다 길다 스티커 윤지슬 구멍 당신의 그늘 그림자 만지기 이혜미 꽃과 우울의 계절이 날개를 펼 때 잃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 얼마나 지독하니, 사랑 냄새가 연리 물감을 기다리는 중 왜 일기는 자주 편지가 될까 만난다 권누리 스프링 실루엣(Spring Silhouette) 축하 일기 퀴즈 쇼와 나날 배희은 32살의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럴까 4월엔 친구들의 생일이 많다 김다일 걷는 사람의 절벽 오고 있다 크레이프 케이크 소운 미도착 시차 잔상 윤현준 누군가는 여전히 당신을 견디고 있다 봄은 점점 짧아질 것이다 봄과 개 정민서 봄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했던 모래성 금목서 최다운 겨울의 해는 수줍음이 많고 우리의 봄은 당차다 자유의 색은 진한 귤색 오늘 날씨 : 화창한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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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고, 너라는 사람에 대해 다 알고도 단 하나도 몰랐다. 그날 나는 그냥 그 거짓말을 믿기로 했다. 망할 줄 알면서도.”
--- 「이소호, 들여쓰기 없이 첫 문장 시작」 중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급히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오르막 끝만 보고 걸었다. 경사로 옆에 있던 단단한 바위도 이 손을 잡으면 피가 돌 것 같았다.” --- 「손미, 손바닥」 중에서 “사랑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사랑이라는 말에 속절없어지니까, 쉬운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 나만 노력하는 사랑은 너무 힘드니까.” --- 「원지해, 사랑과 방법」 중에서 “차라리 아무것도 못 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씻기고 싶어서, 씻어 내리고 싶어서. 누군가 꿨을 악몽을 내가 대신 꿔준 거라고 애써 다행을 찾으면서 샴푸나 푹 짠다.” --- 「김지은, 건너편 악몽으로부터」 중에서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자꾸만 단 게 당기기 마련이다. 나 또한 녹슨 배관에 줄을 걸어 목을 매단 이후 수시로 사탕을 입에 물고 있다.” --- 「안병현, 귤락」 중에서 “내가 살아 있는 게 곧 아빠를 기억하는 거지. 살아서 기억한다기보다는 살다와 기억하다가 동일한 단어인 거야.” --- 「채수빈, 사랑하는 아빠에게」 중에서 “오늘은 내 생일이야. 우리가 이 생에 스티커를 붙인 날.” --- 「이현호, 스티커」 중에서 “당신은 다가올 여름을 보지 못하고 떠나갔다. 숨 막히는 더위도 기나긴 장마도 살을 에는 추위도 겪지 못하고, 영원히 봄에 있을 것이다.” --- 「윤지슬, 당신의 그늘」 중에서 “음을 잃어버리지 않고는 음악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시간에게 매 순간 버려지며 미래로 나아가듯이.” --- 「이혜미, 잃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 중에서 “아무것도 지켜 낼 수가 없어. 남아서 쥐고 싶다. 만나고 싶다. 다가오는 있는, 아직 모르는 음악과 시를. 사람들을. 봄을.” --- 「연리, 만난다」 중에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알기는 했을까.” --- 「권누리, 퀴즈 쇼와 나날」 중에서 “나는 내가 달리고 있지 않을 때도 가끔은 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믿는다.” --- 「김다일, 크레이프 케이크」 중에서 “겨울과 봄 사이에는 이름 없는 계절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꺼내지 못한 말, 생겨난 작은 비밀, 그러지 말 걸 그랬다는 부끄러움. 더 해보고 싶었다는 안타까움.” --- 「정민서, 봄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했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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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읽고,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
작가, 독자, 편집자, 북인플루언서가 함께 쓴 봄의 무늬 봄이 깊어져 갈수록 세상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도를 높인다. 얼었던 땅이 녹고 꽃망울이 터지는 그 풍경 앞에서 희망을 말하는 일은 봄을 맞이하는 가장 익숙한 습관이다. 하지만 각자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마주하는 봄의 민낯은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다. 세상이 환해질수록 누군가의 그늘은 더 짙어지고, 꽃이 피어나는 소란 뒤에는 반드시 꽃이 지는 쓸쓸함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스물두 명의 저자가 함께한 『좋은 것들은 이토록 시시콜콜』은 바로 그 봄의 진짜 얼굴을 채집한 기록이다. 직업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저자들은 ‘일기’라는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형식을 빌려 각자의 봄을 통과한다. 온몸으로 봄이라는 계절을 마주하며 남긴 예순여섯 편의 기록은 막연한 낭만 대신, 손에 잡힐 듯 거칠고 생생한 삶의 물성을 품고 있다. ‘일기’는 동음이의어가 많은 단어다. 일기라는 말들에는 일기를 일기로 만드는 여러 표정이 숨어 있다. 날마다 적는 일기는 그날의 공기와 마음의 날씨인 일기(日氣)을 담는 그릇이다. 밤마다 단숨에 써 내려가는 일기(一氣)의 기록이자, 오늘 위에 세우는 작은 기념비 하나(一基)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의 한 시절, 즉 일기(一期)를 건너며 남기는 이 흔적들은 결국 우리가 하루하루 쌓아 올린 삶의 두께이고, 거기에 우뚝한 마음의 탑이 된다. 스물두 명의 저자가 하루하루 쌓아 올린 이 탑의 재료는 매끈하기만 한 대리석이 아니다. 낡은 재킷의 보풀, 퇴근길 택시 차창 밖의 풍경, 떼어 내도 끈적하게 남는 스티커 자국, 귤껍질 안쪽에 붙어 있는 귤락 같은 것들이다. 저자들은 그토록 사소하고 연약한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실체임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꽃놀이를 가는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느 때처럼 치열하게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현장인 봄. 저자들이 포착한 그 봄의 정경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다. 벚꽃 대신 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의 고독을 감각하고, 도서 물류센터의 난로 앞에서 언 손을 녹이며 노동하는 봄을 적는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의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으며 봄을 맞이하는 손녀, 먼저 떠난 아버지를 향해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며 ‘살아 있는 게 곧 기억하는 일’임을 되새기는 딸,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한 죽은 고라니와 이별을 겹치는 마음,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건네는 사탕 한 알에 기대어 울음을 삼키는 퇴근길의 모습은 우리들 삶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어서 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김이섬 시인의 문장에서 빌린 책 제목은 이러한 이야기들의 핵심을 꿰뚫는다. 거창한 성공이나 깨달음은 봄바람처럼 금세 날아가 버리지만,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루틴과 작고 다정한 물건들은 끝내 우리 곁에 남아 내일을 살게 한다. 헌책방의 묵은 종이 냄새, 우연히 발견한 귤 한 알, 친구와 나누는 싱거운 농담, 낡은 이불의 익숙한 감촉까지.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이 ‘시시콜콜한 것들’이 실은 삶의 슬픔을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 다정한 방패라는 생각이 든다. 내밀한 각자의 방에서 쓰인 이 이야기들이 책이라는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짜릿한 즐거움 끝에, 우리는 결국 자신의 지난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좋은 것들은 이토록 시시콜콜』은 ‘봄(spring)’과 ‘봄(seeing)’에 관한 책이자, ‘바라봄’에 관한 책이다. 타인의 일기장 너머로 흐르는 봄을 보고, 그에 흔들리는 마음을 보고, 마침내 자신의 봄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면 ‘바라봄’은 곧 ‘바라, 봄’, 즉 우리 곁에 따뜻한 봄이 오기를 바라는 기도가 되기도 할 테다. 스물두 명의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앓고, 견디고, 사랑하며 통과한 이 봄의 기록이 당신의 봄에 봄바람 같고 봄비 같은 안부로 가 닿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