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에서 우리는 숱한 질문을 만난다. 대부분 시가 의문문으로 쓰인 구절을 한둘쯤 품고 있어서다. 그 돌올한 질문들은 마치 뒤에서 누가 부르는 것같이 시를 읽어 나가는 우리의 눈길을 잡아챈다. 때로는 과속방지턱이 되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때로는 돌부리가 되어 당연하게만 여겼던 생각을 거꾸러뜨리고, 때로는 폭포수 같은 격정까지 품는 용소가 되어 우리가 거기에 몸 담그게끔 한다. 이렇게 시인이 던진 질문을 딛고 선 우리는 비로소 똑바로 세계를 마주한다. “쇠스랑 같은 질문”(「견갑」)으로 파헤친 세계에는 “실마리를 당기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물기 없는 슬픔들”(「씹던 껌」)이 가득하다. 우리는 원자같이 세계를 구성하는 슬픔을 보며, “상처투성이 등으로 지옥을 실어 나르는”(「코끼리에게」) 것이 삶임을 깨닫는다. 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몇 겹으로 눌러 둔 슬픔이 저 홀로 어깨를 들썩이는 것도 몰랐다”(「팝업 하우스」)라는 구절처럼, 그동안 모두가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일 따름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시인은 “검은 질문들의 잔등을 긁어”(「타투이스트」) 부스럼을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질문이 곧 기도이고, 구원인 까닭이다.
자신에게 타인에게 세상에 괜찮으냐고, 슬픔이 넘치는 세계에 이대로도 괜찮은 것이냐고 계속 묻지 않으면, 현실은 고착되고 “미래는 가까워지지 않”(「신분당선」)는다. 그래서 시인은 “구부렸다 펴는 힘줄의 의지로/절망의 순간을 품에 안는” “파라다이스날뱀”(「시인」)처럼, “골똘하게 손끝을 구부려 물음표를 만들어”(「타투이스트」) 보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이 물음표는 절망을 헤치는 낫이자, “오지 않을 미래를”(「테트리스」) 끌어당기는 갈고리이며, “먼저 오는 슬픔을 마중하러”(「시인」) 가는 지팡이고, 끝내는 “미끄러운 슬픔의 뼈대를 더듬”(「손쓸 수 없는 아름다움」)는 손길이다. 숱한 질문으로 들추어낸 온갖 슬픔의 목록인 이 시집은 “슬픔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플롯 연습」)지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 질문들은 섣부른 해답이나 어설픈 위로 같은 “거짓의 마음”(「상고대」)을 버린 이의 표현법이라서 진실하고 또 미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