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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
김영미
아침달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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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여름특강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이


야외 풀장 14
이어 15
석고상 18
현대음률 20
열대성 리듬 22
간유리 24
제비 26
개구리와 나 28
방갈로 30
여름 땅속 32
사이클 34
해수욕 38
청량 40

2부
명선에 대하여


대치 44
녹양 아래 46
명선에 대하여 48
밤마다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빛나는 별들로 50
저녁의 마술쇼 52
보타닉 가든 54
교문 56
은화 57
어린아이의 신경증 같은 58
오늘의 말 59
이격 60
로얄 롤러장 62
명과 선 64
밤의 망원유수지 66

3부
걷어 올린 소매가 혼자 내려오도록


겨울의 내부 70
생애의 생일 73
리코더 74
방금의 약국 76
이토록 검은 덩어리를 걸치면 78
모른다는 바다 80
하루 82
환은 84
잡아주는 마음 86
교체 88
심벌즈 90
산책로 92
언제부터 내리는 눈일까요 94

4부
서로를 세워두고 우리가 흩어질 때


시선 100
선형의 숲 102
이터널 103
유리관 104
이중 리듬 106
투과성 108
밤은 계속 110
시작하지 않은 감정 112
별장 없는 생활 114
밤이 없는 낮과
낮이 없는 밤 116
경작 118
여름비처럼 겨울비가 119

발문

이어를 이어 쓰며 - 임승유 126

저자 소개 1

201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맑고 높은 나의 이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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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92g | 125*190*20mm
ISBN13
9791189467883

책 속으로

“밤이 와도 불을 켜지 않는다 밤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도록 밤에게 밥을 차려주고 밤이 깊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밥을 먹을수록 밤은 따뜻해지고 고요해진다 밤 속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함께 흘러가지 않는 물풀처럼, 미끄러운 몸으로, 너는 앉아

연하고 연한 것들의 팽창을
단단히 채워지는 근육을

이어를
이어 쓰며”
---「이어」중에서

“내가 먼 곳을 다녀온 사이
나는 잠들었구나
옅은 숨을 내쉬며 맑은 냄새를 내며

다음에는 꼭 함께 가자고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면 꿈속에서 지방 소도시가 지나가고 섬나라의 해변이 찰랑이고 가본 적 없는 당신의 세계가 닥친다 내가 잠깐 방향을 바꾸며 돌아눕는 사이 바람이 바닷물을 들어 올리려 애쓰는 사이

내겐 너무 자주 큰 사이”
---「간유리」중에서

“붉은 얼굴들이 뚝뚝 떨어지는 사이

청량한 사이였다
여름특강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이였다

우리는 함께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청량」중에서

“우리는 뭘 먹었는지
무럭무럭 자랐지

붉고 따갑게
굵어졌지

얼굴이 창피해지도록
선인장의 가시를 세며

아주 멀리 흘러갔지
빛으로부터”
---「이격」중에서

“어떤 것도 얹을 수 없게 어깨를 시옷 자로 세우고 오도카니 앉아 흘러내린 말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기억하고 말 거야

시야가 겹쳐지고 분철되는 지금의 시간을
내내 서로의 책을 불사르며

새벽의 버스정류장에 서로를 세워두고 우리가 흩어질 때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가로수들이 서로를 향해 포개질 때

우리가 어떻게 재가 되도록 서로의 입김 앞에서 흔들리는지”
---「투과성」중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생활이에요
밤새 플라스틱 슬리퍼로 베란다를 서성이던 당신
딱딱한 소리로 결심을 반복하던 당신

쌓은 만큼 지켜지지 않는 것들을 위해

고개를 꺾고 방죽에 얼굴을 묻을 때까지
쌓아 올리지요

모래주머니가 우리를 덮칠 때까지
모래알처럼 우리가 휩쓸릴 때까지

발이 새는
땅 위에서”
---「밤이 없는 낮과 낮이 없는 밤」중에서

여자아이가 나이를 먹으면 우린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르나. 여자 어른이라고 부르나. 그렇게 본다면 김영미나 나나 여자 어른일 텐데. 그런 명명은 낯선데, 그렇다고 다른 어떤 말이 떠오르지 않고. 테레사 학경 차가 『딕테』 파라 텍스트에서 불러낸 ‘말하는 여자’가 되었다고 하면 될까. 말하는 여자. 나는 내가 두고 온 여자아이에게, ‘말하는 여자’가 되어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어진다. 집 나갔던 엄마가 돌아온 날,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낸 후 돌아온 여자애한테 “저밖에 모르는 냉정한 년”이라 말하는 엄마. 늦어버린 귀가는 상처가 되는구나. 상처를 누설하는 쪽과 상처에 노출되는 쪽. 엄마도 여자애도 진짜로 집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풀밭에 앉아서. 풀처럼 흔들리면서. 너는 앉아.

---「임승유, 발문_이어를 이어 쓰며」중에서

출판사 리뷰

“필기할 때마다 맨살이 닿았다”
투명함의 교집합─여름이라는 감각


시집 안에서 시인의 언어를 타고 흘러내리며 번지는 투명함은, 이번 시집을 열고 닫는 중요한 감각 중 하나이다. 얼음의 윤곽처럼, 물방울의 속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고 가는 인기척처럼. 읽는 이마다 이 투명에 자신의 의미를 대입하며 시를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빌 수 없었던 시간의 안쪽까지 흐르는 시인 특유의 간결함은 ‘명선’과 ‘여름’의 교집합을 토대로 의미를 되찾고, 여집합으로 나아가 살아갈 시간이 되도록 다시 끈끈한 여백을 짓게 된다.

“필기할 때마다 맨살이 닿았다”(「청량」)는 밀접한 감각처럼, 시인의 여름은 몸에서 발화하는 또 다른 언어 중 하나이다. “개구리와 나는 땀을 흘리며 차가워졌다”(「개구리와 나」)는 사실은, 상상으로부터 그려온 여름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낸 여름임을 보여주며, 시인이 그려온 언어를 더욱 투명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아닌 여름을”(「방갈로」) 보듯 무심하기도 하면서 “모르는 사람의 텐트에서 수영복을 갈아입”(「방갈로」)고, 수영복 위에 겉옷을 입으며 겪게 된 마르지 않는 몸의 감각처럼 뜨겁고 사실적이기도 하다. 시인이 첫 시집부터 이어온 여름의 입체는, 살아냄의 통증처럼 몸에 입각해 있는 사실적인 언어라고 볼 수 있다. 여름은 생존의 기후이기도 해서 “사람은 여름을 위험하게 만든다”(「이터널」)는 사실을 잊지 않기도 한다. 살아 있게 만드는 인기척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이해하게 만드는 경계 속에서의 이 ‘투명함’은 이번 시집 전반에 걸쳐 쏟아져 내린다.

첫 시집에서부터 시인이 예민하고 첨예하게 그려온 여름 이미지는, 이번 시집에서도 지속된다. 첫 시집이 상실의 자리를 복원하며 여름의 감각을 불러왔다면, 이번 시집은 상실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젖은 수영복 위로 겉옷을 입고 버스에 올라탔던 어떤 기억은, 시인이 언어 속에 간직하고 있는 몸이 마르지 않는 시간의 생경함이다. 우리는 이 여름의 기후를 함께 지나며 시인이 그 생경함으로 뒤바꿔 놓는 풍경에 함께 머물게 된다. 김영미 시인의 시로 하여금 우리는 그 낯선 여정 속에서 뒤돌아서 왔던 어떤 의미들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왜 명선의 모른 척을 모른 체했을까”
투명함의 교집합─명선에 대하여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서는 2부를 구성하는 데 중심이 되기도 하는 ‘명선’이 시집을 읽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명선’이 누구인지에 대한 해석보다는 ‘명선’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그 서늘하면서도 가깝기만 했던 자리를 되찾아가는 화자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왜 명선의 모른 척을 모른 체했을까”(「어린아이의 신경증 같은」) 외면했던 한 시절로부터 걸어 나온 화자는 명선의 결혼식, 명선과의 산책, 명선과 함께 찍는 사진에 따라나서며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지만, 그 떠올림은 ‘지금’이라는 자신의 투명한 자화상을 그리기 위한 중요한 재료가 된다. “우리의 토대가 즐겁지는 않지만”(「겨울의 내부」) 이 투명함의 가장 아래로 내려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듣는 명선의 마음이 어떻게 번져왔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된다. “우린 눈을 가리지 못하는 형벌을 받았기에”(「저녁의 마술쇼」) 알 수밖에 없는 진실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어떤 시간을 정면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발문을 쓴 임승유 시인은 “우린 참 중간에 만났어. 그렇지?” 시인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이번 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투명하게 무거운 말들 앞에서 울 것 같은 심정”이 드는 시인의 언어를 “‘말하는 여자’가 되어 말하지 않고도 다 말하는 방법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화자를 ‘말하는 여자’라고 호명하며 이번 시집이 우리에게 필요했던 말을 듣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집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은 간결함 속에 벼려 있는 이야기와 행간에 스며들어 있던 여름의 이미지를 통해 생성된 투명함 속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춰보는 돌올한 여정이다. 살얼음처럼 아프기도, 막 태어난 유리를 만지듯 조심스럽기도 한 시간 속에 명선과 나, 명과 선이 나란히 걸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복잡한 여름의 속내가 투명해지는 동안, 시인은 잊거나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마주하고 끌어안는 방식을 선택한다. 투명이 우리의 어떤 부분을 가려주었는지, 투명보다 더 투명했을지 모르는 여름의 입체 속으로 자신의 한 시절을 투신하며, ‘온몸으로 말하기’, ‘온몸으로 여름하기’를 실천하는 이번 시집의 땀방울은 마르지 않고 시의 자리마다 차갑게 맺혀 있다. 그 차가움을 만지면, 우리 안에서 얼어붙은 채로 살아가던 것들이 서서히 녹아가게 되고 투명한 여름의 국면에 서게 된다. 거기에는 시인이 “여럿이 혼자이지 않”(「여름비처럼 겨울비가」)길 바라던 어느 여름의 안부가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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