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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오로라 콜 랑헨에서 창문 없는 방 유물실 상수동 내실 아기 침대 열두 개 랩소디 우리는 새라서 2부 제한수역 맥거핀 기린터널 종이나비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종이나비 안반데기의 밤 그들은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부를 사랑했다 지나가던 파랑이 검정을 흉내 내며 웃었지 파랑 도망친 밤 3부 봬요 서울풍경 미래의 습성 순종 헛꽃 쌀알 줍기 양자역학의 이해 새우를 기르는 꿈 아스피린 블루스 꽃이 죽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나요 4부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태초에 마음이 존재했다 하교 하현 댄스홀 종로 눈을 감고 들어라 Sinking Sun 외재와 내재 독자에게 부록 주파를 맞출 수 없는 라디오 채널에 관하여 |
숙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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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알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선잠에 들었다 깰 때 가져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때 밤이 긴 곳에서 불면이 이어질 때 실패하기 위한 실패도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불 위에서 변기 위에서 초조할 때 핀란드나 아이슬란드나 먼 극지의 호텔에서 한밤중 손님을 깨워준다는 오로라 콜을 내 방에서 기다리지 정말 그러면 나도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고 빛의 휘장을 따라 달리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 「오로라 콜」 중에서 예수승천대축일을 맞아 물놀이를 하러 온 몸들이 많았어요 랑헨의 계절은 벗고 뛰노는 몸들이 있어 여름으로 향해 가고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과 남자들이 수면을 넘나들며 햇살을 끌어당겨요 모래사장 위에는 커다란 비치타월을 들고 어린아이의 몸을 닦아주는 사람이 있고 작고 젖은 몸이 반짝이고 있고 --- 「랑헨에서」 중에서 서로의 몸이 닮기 위해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우리도 태어나기 전에는 춥지 않았었는데 그곳으로부터 한참을 떠나와버렸다 --- 「창문 없는 방」 중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밥맛이 좋았지 가족이 많아진 게 오랜만이어서 동생이 없던 내가 동생이 다섯이나 생기고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았대 많이 낳고 또 낳아 나중에 우리를 다 못 알아봤지 --- 「내실」 중에서 아기를 버리고 달아나던 엄마들 기억을 모포처럼 뒤집어쓰고 경사진 길을 내려가던 모습 십자가를 등진 여자들의 그림자마다 빛이 드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문밖에서 주워 온 아기가 있고 안으로 와서 버려진 아기가 있고 아기들 중에서 유독 뽀송뽀송한 아기가 있고 그 아이에게 고추가 없으면 금방 새 부모를 만난다는 이야기 세상 오직 여기에서만 여자를 선호한다는 이야기 --- 「아기 침대 열두 개」 중에서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이 순간에도 쓰고 있다는 사실 그것뿐이다 나는 지금 막 머릿속으로 시 한 편을 떠올리고 있다 그것은 자연스레 도약하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탈주하고 있다 그것은 저절로 완성되고 있다 다만 언어에 빚질 뿐 노래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 「독자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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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서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
무엇을 알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선잠에 들었다 깰 때 가져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때 밤이 긴 곳에서 불면이 이어질 때 실패하기 위한 실패도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불 위에서 변기 위에서 초조할 때 핀란드나 아이슬란드나 먼 극지의 호텔에서 한밤중 손님을 깨워준다는 오로라 콜을 내 방에서 기다리지 -「오로라 콜」 부분 숙희의 시는 어느 새벽의 기다림에서부터 시작한다. 극지와 가까운 호텔에서 오로라 현상이 발생할 때 깨워주는 전화를, 숙희의 화자는 자신의 방에서 기다린다. 전화는 당연히 올 리 없다. 그 기다림은 실패할 것이다. 자신의 방은 극지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므로. 창문을 열면 불 켜진 가로등이 보이고, 그 위로 빛나는 별 대신에 인공위성이 보인다. 헛된 기다림일까? 그러나 그 불가능한 기다림을 시작하면, “나도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고/빛의 휘장을 따라 달리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긴다. 불가능한 현재의 시간에 가능할 수 있는 미래의 시간을 끌어오는 상상력은 그 자체로도 오로라 빛처럼 아름답지만, 아름다움만을 우선시하다 보면 왜 그러한 상상력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러한 기다림의 힘이, 버티는 힘이 시 속 화자에게 필요한 것일까. 왜 그 화자는 “가져보지 못할 것을 그리워”하고, 불면을 앓고 있으며, 일상 속 어디에서나 초조해하고 있을까. 예수승천대축일을 맞아 물놀이를 하러 온 몸들이 많았어요 랑헨의 계절은 벗고 뛰노는 몸들이 있어 여름으로 향해 가고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과 남자들이 수면을 넘나들며 햇살을 끌어당겨요 모래사장 위에는 커다란 비치타월을 들고 어린아이의 몸을 닦아주는 사람이 있고 작고 젖은 몸이 반짝이고 있고 -「랑헨에서」 부분 시인 백은선이 숙희의 시를 두고 “냄새나고 생동감 있는 육신을 가진 여성성”이 있다고 언급했듯이, 숙희의 시에는 성과 몸에 관한 관심이 솔직하고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랑헨에서」라는 시에서 보이는 저 벗은 몸들에 대한 긍정을 보자. 본능적인 성적 호기심이 솔직하게 투시되고 있는 저 장면은 외설을 넘어서는 중이다. 바닷속에서 벗은 여자와 남자를 보던 시선은 모래사장으로 내려오며 어린아이의 반짝이는 젖은 몸으로 향한다. 사랑의 행위와 그 증명을 은유하듯, 벗은 몸들이 빛나는 풍경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너무 아름답게 보이기에 현실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착한 여자애들은 죽기 전에 지옥에 갔대 죽고 나서야 천국으로 간대 -「지나가던 파랑이 검정을 흉내 내며 웃었지」 부분 나는 아직 죽은 사람 지긋지긋해 어제의 나와 헤어진 지 오래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 (…) 나는 생리하는 사람 나는 참아온 사람 나는 가위를 휘두를 사람 나는 갑자기 우는 사람 -「눈을 감고 들어라」 부분 나는 언제든 다시 죽을 준비가 되어 있고 -「랩소디」 부분 숙희. 시인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을 듯한 그 이름으로 시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암시적이다. 순수했던 성적 욕망은 일그러진 사회를 따라 왜곡되어 전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자위를 배웠다고 해서 나를 강간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오늘은 여전히 ‘너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이러한 성적 통제 속에서 결국 계속해서 여성은 참아야 하고, 또 죽게 된다. 이는 전혀 시적인 은유가 아니라 기사로 보도되고 있는 현실들이다. “너무 자주 들리는 사이렌 소리”처럼 숙희의 시집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죽음 이미지들은 그러나 여성의 죽음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임신을 했어요 중단을 했어요 휴학을 했어요 우울증은 치료 중 금지된 푸른 버섯을 먹는 꿈을 꿉니다 꿈 속의 꿈에선 어김없이 내가 언덕 위의 아기가 됩니다 -「아기 침대 열두 개」 부분 사랑을 통한 몸의 결합을 통해서, 또한 그중 여성의 몸을 통해서 아이는 탄생한다. 그러나 오늘날 고된 삶 속에서 우울과 죽음에 더욱 가까워진 여성들은 이제 새 생명 낳기를 선택하려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자신의 불행뿐 아니라 아이의 불행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된 사랑의 결합이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아이의 존재는 때로는 지워지고 때로는 나타나면서 가능과 불가능을 오간다.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깜빡이는 미래의 시간이다. 이러한 죽음이 인간 종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일례로 저자는 시 「제한수역」에 “우리들이 매일 사용하고 버린 것들이 다 사랑이었지/플라스틱/인류애였지”라고 쓴다. 인간 종의 사랑이 쓰레기가 되고 다른 종과 이 세계의 죽음을 야기한다는 사랑의 아이러니가 드러나는 이 시는, “사는 것이 민폐임을 모르는/이십일 세기의 바쁜 시민들”의 존재 자체가 원죄에 가깝다는 죄의식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절망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숙희가 기다리는 미래는 죽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게 된다. 시는 미래의 시간을 죽음의 편보다는 새 생명의 편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통해서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또한 여기에 있다. 방에서 오로라를 기다리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운 기대라고 할지라도 숙희는 포기하지 않는다. 시의 말미에서 거짓말처럼 벨이 울리듯이, 그 시간이 오리라는 믿음에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있다. 그럼, 잠깐 질문 좀 해도 될까? 만약에 정말 신이 있다면, 신은 국경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해 오래 생각하던 새벽, 최소한의 영토는 몸일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어. 몸이라는 영토. -부록 「주파수를 맞출 수 없는 라디오 채널에 관하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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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치고 지나가는 빛의 휘장
오로라는 빛의 현상에 불과한데, 그 빛의 휘장은 왜 영혼을 치고 지나가는 걸까. 여기 한밤중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 일어났을 때만 울리는 전화가 있다. 바로 ‘오로라 콜’이다. 전화를 기다리는 장소는 나의 방. 어쩌면 결코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는 것. 무의미한가? 올 것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것.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릴 때만 시작되는 태도가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선잠에 들었다 깰 때/가져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때(「오로라 콜」)” 그런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태도가 열리는 순간 만나게 되는 질문이 있다. “꽃의 줄기를 해부했던/생물학자들의 밤은 얼마나 고요했을까(「꽃이 죽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나요」)” “새하얗고 새까맣고 새빨간 문장이라는 게 있을까(「태초에 마음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진짜 마지막을/그 순간을 알 수 있을까(「종로」)” 이 질문들을 관통하는 것은 ‘지금 나는(혹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것을(존재하기, 쓰기, 죽기, 사랑하기) 수행하는가?’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것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 또는 이미 다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미 포기했지만 다시 포기해야만 하는 잔디 같은 것들). 오로라 콜을 기다리는 자세와 닮은 질문들이다. 숙희의 시 속 여성은 근래 다른 시들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의 욕망과 절망을 보여준다. 희미하고 무성적인 존재가 아닌, 냄새나고 생동감 있는 육신을 가진 여성성.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기는 필요 없지./내가 도착할 곳은 부드러웠던 과거가 아니니까.(「이상형 이분법」)” “모든 착한 여자애들은 죽기 전에 지옥에 갔대(「지나가던 파랑이 검정을 흉내 내며 웃었지」)”라고 발화하는 마음은 어디서 도래했을까? 숙희의 언어에는 욕망이 드러나 있다. 비뚤어진 관계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은 마치 가시가 많은 거울 같다. 그 안에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우리’, ‘이미 하나인 순간에도 어긋나는 중인 우리’가 끝없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요원함과 절실함의 척추를 꼬아 지어진 허방의 집 같다. 발밑은 까마득하고 머리 위는 충분히 캄캄하지 않은 도중의 집. 그런 집에 기거하는 나의(혹은 연인의) 이야기. 같이 있을 때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는 비극이 가진 환희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 백은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