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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내가 유일하게 믿은 살인자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버리고 온 것들 없는 집 기도를 파는 수도사 살 설경 한 사람이 그림을 찢고 들어왔다 끝까지 몰아보기 천재와 여관 초월자 전쟁영화 2부 부서지지 말고 기다리기 단명 물의 천재 관광 널 믿는다 내가 모두가 순서에 집착하지 하지만 난 순서가 싫다 충전이 멈춘 날 흠 흠향 괴성 영매 3부 우린 안개의 지식을 나눠주죠 신을 살리기 신이 난다 뿌듯하다 사랑의 게임 웃는 나무도 있다 방화 어떻게 그릴 것인가 전투 우리가 웃잖아… 4부 이게 정말 주인님이 원한 모습입니까 절대로 울지 마! 아름다운 컴퓨터 이게 정말 주인님이 원한 모습입니까 시계공 크런치 모드 경기도 안산의 강아지처럼 Thx 이야기를 잃은 빛 네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좋았다 5부 너를 찾고 있거든? 맡은 바 최선을 다한 민형 불의 발걸음 한 사람이 그림 밖으로 굴러 나갔다 뼈 이야기 동급생 주름 물과 풀 결함 행복하세요~ 산문 미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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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루면
민들레는 누가 피울까? 불빛이 꺼진 민들레처럼 사랑할까? 어젠 단풍을 사러 갔다 가볍게 먹고 그리고 기억되기 사람 부담스럽게 비가 내리는 날이다 너의 앞뒤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이 두 개라서 그랬다” --- 「물의 천재」 중에서 “비둘기는 건물의 난간에서 주저하고 있었다 혼자 하교한 날이니 많은 기대가 되겠네요 비둘기는 날아가버렸다 어제 보건 선생님을 만난 이유는 내가 아파서가 아니라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교복 입은 불상 앞에서 기도했다” --- 「널 믿는다 내가」 중에서 “검사가 끝나고 의사가 말했다 잠깐만요 당신에게 무수한 봄이 있는데요? 다시 한번 검사해 볼래요? 기계를 주렁주렁 붙인 채로 다시 앉았다 아, 봄이 약간 있네요 녹슨 칼 없는 봄 군포 성당 없는 봄 도미 대가리 없는 봄” --- 「신이 난다」 중에서 “이름은 왜 필요할까? 난 너를 알아볼 수 있는데” --- 「웃는 나무도 있다」 중에서 “꽃은 매해 문제를 일으켰다 꽃은 솔직하지 못하다 올해 겨울은 참 따뜻했다 창 틈새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는 괴물이 있었기에 괴물이 고개를 들고 하는 말 뭐 하니 나는 널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잘 알 수 없다 어디선가 본 단어를 쓰고 어디선가 겪은 무너짐을 반복하겠지” --- 「이게 정말 주인님이 원한 모습입니까」 중에서 “편지가 도착하지 못하도록 잘못된 주소를 썼어요 한 수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버려진 적도 있는 것 같아 오늘도 나는 도망치지 않겠지” --- 「Thx」 중에서 “조금만 일찍 왔다면 달랐을까? 시체에게 물었다 그는 이런 말을 건넸다 너는 길을 잃은 자구나? 나는 너처럼 길을 잃은 자가 좋아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시체의 얼굴, 산책로의 모든 꽃송이가 내가 가는 방향을 따라 돌아갔다 그것들은 기름을 흘리고 있었다” --- 「불의 발걸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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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은 가장 예쁜 조약돌을 주워
서로의 머리에 찍는 일” 아름다운 오류를 일으키는 게임적 상상력 언어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시적 루프 게임적 상상력을 시적 언어로 가동하며, 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크런치 모드’를 인간의 새로운 차원으로 그려낸 시집. 이자연의 첫 번째 시집 『크런치 모드』가 아침달 시집 56으로 출간되었다. “독특한 언어감과 예상 불가능한 전개 과정이 만드는 파편적 흐름이 흥미”(큐레이터 박소란)롭다는 평과 “강한 덕후력으로 현실과 게임 판타지가 엮인 ‘이야기하기'를 질주하는 시”(큐레이터 정한아)라는 평을 받으며 독창적인 시 세계를 단단한 원고로 구현해낸 시집이기도 하다. 총 5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게임적 요소를 적극 동원하는 시, 신과 종교를 이웃 삼아 대결하는 시, 인간에게 누적되는 피로와 상처를 유머로 변장시키며 끝없이 돌파하는 시들로 엮여 있다. 단순히 게임적 상상력에 기대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체화된 테마로서 한 인간의 실패한 로그(log) 기록, 한 세계가 간직한 크랙(crack)의 발견.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크런치 모드’라는 인간의 임계점으로부터 출발해 비로소 시집 『크런치 모드』라는 아름다운 오류로 도착한다. 이자연의 시는 행과 행을 밀착해 시적 논리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아니라, 행과 행, 연과 연이라는 시 안에서의 연결점을 서로 밀어내게 만들며 언어가 일구는 저항으로부터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이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우리 세계에 놓인 균열을 읽어보게 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과열된 삶이 스스로를 정돈하지 못하고 파열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작동 방식은 언어를 파편적으로 나열하는 문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나아가 지극히 인간적인 기질, 인간의 연약한 말과 마음의 영역에도 닿아 우리가 머물러 있는 맵(map)을 새로운 각도로 투시하게 만든다. 언뜻 오류처럼 보였으나 시라는 형식으로 오류를 마음에 체류하게 만든 다음, 새로운 지도를 구성해 다쳤던 마음을 복원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산문 형식의 시 없이 행간의 낙차를 적극 활용한 시에는 끼어들 여지가 많아 있는 그대로 풍성하다. 또한, 이번 시집에서 다층적으로 나타나는 ‘불’의 이미지는 세계에 대한 각오처럼 다양한 지점에서 지펴지는 소재 중 하나다. ‘크런치 모드’로 불타오른 뒤 남은 재가 되어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 불씨는 사람의 마음에 옮겨지거나 자신 스스로 일으킨 불꽃이 되어 시집 전반을 이끄는 상상력이 되기도 한다. 가령 “왜 내 마음이 불타오를까요”(「없는 집」) “불이 나 다 타버린 산사”(「살」) “불꽃의 마을에서 세를 받던 영주”(「단명」) “된장을 불에 볶으면 더 고소해진다”(「괴성」) “처음 본 사람에게 불도 빌릴 수 있고 반말도 할 수 있다”(「사랑의 게임」)처럼 다양한 곳에 번져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 방식으로 삶의 곳곳에 적용된다. 소진된 형상으로서의 불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서의 불을 밝히며 시집은 더 깊은 지도(map)를 향해 간다. “이름은 왜 필요할까? 난 너를 알아볼 수 있는데” NPC 동료들에게 말 걸기, 친구 하기 종료되지 않는 게임을 영원히 실행하기 이자연의 시에는 무수히 많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귀신, 동굴이라는 이름의 동물, 수도사, 스님,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 부장님, 도로시, 여관 주인장, 생쥐, 사형 집행자, 여우, 수녀…… 무수한 캐릭터들은 삶에서 존재했으나 배경처럼 놓여 있던 존재 혹은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NPC)이기도 하다. 이자연의 시는 NPC를 동료 삼아 말을 걸고 우정을 나누고 불화하기도 한다. 한 편에 서서 동료가 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NPC에게 발언권을 부여하면서 갖게 되는 새롭고 신선한 장면들은 시적 울림을 만들며 다가온다. 이들 가운데 ‘이자연’이라는 캐릭터는 발화하는 주체인 자신이자, 누군가의 NPC처럼 움직인다. “바람꽃이라는 집단”(「불의 발걸음」)이 되어 있었다 다시 사라지는, 그 홀연한 등장과 퇴장을 의연하게 그리며 많은 캐릭터를 시에 등장시키는 것은 그의 게임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자 시의 새로운 활력이 된다. “너는 길을 잃은 자구나?/ 나는 너처럼 길을 잃은 자가 좋아” 함께 길을 잃었다는 절망이 아니라 함께 모험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치환하는 것 또한 시인이 시를 통해 발견한 절체절명 순간의 처세술이다. “어디선가 본 단어를 쓰고/ 어디선가 겪은 무너짐을 반복하”(「이게 정말 주인님이 원한 모습입니까」)는 삶의 굴레 속에서 시인은 자기 삶에서 벌어진 일들을 토대로 완성되지 않을 게임을 만든다. 특히, 부록으로 수록된 산문 「미친 사람」은 게임 시나리오 같은 독특한 전개를 앞세워 소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등장하는 인물과 대화, 상황 설정은 어쩐지 한 번쯤 겪어보았을 법한 삶의 장면들을 드리우게 한다. “당신 눈에 드리웠던 먹구름은 어디 갔어요?/ 나는 그거 좋았는데”(「불의 발걸음」) 누군가의 눈에 드리운 먹구름을 발견하고 함께 우거진 어둠 속을 나아가려는 시인의 시적 루프에 있는 힘껏 빠져들고 싶어진다. 어떤 오류도 세상을 새롭게 읽어낼 방법처럼 느껴진다. 시인이 인간의 마음이나 말과 같이 가장 약점으로 꼽을 만한 연약한 장소를 게임과 시라는 레이어를 축적 시켜 가장 무모해도 좋을, 자유도를 발산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 탄생시킨다는 점. 『크런치 모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이 시들을 우리 삶에 능동적으로 우리 자신을 새롭게 등장시키는 모드로 적용하여 지금까지 누벼본 적 없는 시의 지도를 걸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이 책을 열면 강가에서 NPC를 만난다. “당신은 나를 칼을 들고 다니는 불량 청소년쯤으로 봤지. 하지만 알아야 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제 당신의 길을 찾아가.” —죽어가는 병사의 말 그렇게 게임이 시작된다. 2026년 5월 이자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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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없는 세계의 망명지
처음 출간 여부를 살피기 위해 이 시인의 원고를 읽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군. 매우 피곤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시 속에 망명지를 만들고 있군. 그리고 어라, 이상하게도 거기 간단치 않은 페이소스가 있군! 이 사실이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피곤한 생활로부터 잠시간의 망명을 위해 게임의 세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집 말미에 실린 산문 「미친 사람」은 그가 시를 쓰고 싶었으나 돈을 벌기 위해 게임 시나리오의 세계로 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게임은 그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상품이 된 게임의 배면에 버려진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처럼, 생활의 배면에 언어화되지 못한, 누락된 것들이 있었다. “망해버린 게임처럼” 조용한 세계, 또는 “글을 쓰다가 저장을 잊어버리면 생기는 가여운 열매.” 이 산문이 이 시집에 실린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시집의 튜토리얼 역할을 한다. 이 시인의 산문은 시집 전체의 수수께끼가 시작된 연원이 현실화되지 않은 자신의 게임 시나리오였음을 '보여줌'으로써(혹은 재구성함으로써), 흡사 희곡의 첫머리에 제시되는 인물 소개와 지문처럼 기능한다. 그러면서도 산문 그 자체를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허구로 만들어 시집 전체의 맛을 한층 끌어올린다. “나는 아직도 내가 썼던 글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걸 계속 생각하고, 미쳐 있고, 미치지 않은 척하고 싶은 거야.” 이 산문 속 고백은 시집 전체를 소급해서 읽게 만드는 열쇠다. 이자연의 시는 통상적인 시적 문법으로부터 자주 벗어나기 때문에 의미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소위 미래파를 지나며 우리가 목도한, 무의식 또는 악몽이 파토스를 이미지화하는 방식과도 딱히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이즈음의 시들이 가진 여러 특징들을 이 시집도 공유하고 있기는 하다. 현실과 가상의 물렁한 경계, ‘작은 현실’에 대한 집요한 기록의 의지. 우리에게는 이제 체제의 ‘바깥’이 없다고 하지만, 체제의 숨겨진 사각지대에 개구멍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집의 화자들은, 그리고 아마도 시인 자신은, 현실화되지 않은 게임 시나리오 안에 망명지를 만든 듯하다. 귀신, 무당, 여우, 살인자, 조각 인간, NPC들이 그 망명지를 함께 채운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확한 생각이란 일반 쓰레기야/ 동화 속 주인공들은 사실 어른이야.” 이 시인의 세계에서 NPC는 죽어가면서도 사랑을 고백하고, 조각 인간은 “실수 없이/ 와이파이 없이” 걷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인이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를 ‘조각가’가 아니라 ‘조각사’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조각사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기술자다. 돈을 벌기 위해 시 대신 게임 시나리오를 써온 사람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체념인지 자조인지 모를 정확한 자기 인식이다. 그 조각사가 공들여 만든 피조물들이 이 시집 안을 걸어 다닌다. 완성되지 못한 게임 시나리오를 시 속에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그는 마침내 진짜 망명지를 만들었다. - 정한아 (시인,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