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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옥
박소란
창비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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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티타임
행인
옛날이야기

재생
불행한 일
한 사람의 꽃나무
공작
기차를 타고

제2부

당신의 골목

갑자기 내린 비
스탠드 아래
물을 계속 틀어놓으세요

조각들
분실
사람의 얼룩
먼 곳
공터
노래
그 병
자취
××
여름 노트
생략
무서운 이야기
하향
누수
러브덕
후경
물과 구슬
서해
낙장
노래들
24시
나의 병원
간병
옥상에서
그냥 걸었다는 말

제3부

겨울 노트

옥춘
온수
눈보라
물가에 남아
내자동
세수
메모
건빵을 먹자
달걀
물음들
내일의 기다란 꼬리
병중에
소란

산문|병과 함께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수옥』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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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98g | 125*200*12mm
ISBN13
9788936425043

책 속으로

컵을 들고 헤매다
쏟아버린 물

실내는 따뜻하고
둘러앉은 이들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사이 몰래 빠져나가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의 뒷모습

나는 계속 신경이 쓰여서

내가 다 잘못했어요
말하고 싶어서
---「수」중에서

어떤 물은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녹아 물이 되듯이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을 오래 간직해야지 하는 생각
소복을 입고 아슬랑거리는 겨울처럼
겨울의 외딴 정류장처럼

버스는 오지 않겠지만
---「공작」중에서

기다렸다는 듯
우산을 꺼내 펴는 것이다
조금도 놀라지 않고 허둥지둥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

등이나 어깨가 살짝 젖는 건 자연스럽고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제법 그럴듯한 지도가 하나 생겨날 때까지
---「갑자기 내린 비」중에서

혼자서 밥을 먹는데
맞은편에 한쌍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아두는 이유

숟가락에 번진 살색 얼룩을 재차 문지르는

아침이면
말라비틀어진 조각들이 창가에 흩뿌려져
있다 먼 빛을 건너다보며

끝내 그 투명한 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밥을 먹는다
투명한 벽 너머 투명한 벽을 떠올리며
---「자취」중에서

물을 따른다
물잔에 어린 얼굴은 울었다 웃었다 쉼 없이 출렁이고
꼭 진짜 같고

눈가에 스멀거리는 송충이 같고

나를 덮친다
고요한 책장을 부순다

우글우글 알을 까는 초록

우글우글 죽는다
썩는다,
가짜는 썩지 않는다
---「여름 노트」중에서

웅그린 몸을 더 힘껏 웅둥그린다
꿈에서도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기어이 들키려

빗속을 헤맨다
표정을 연습하는 물방울과 같이

다시 아침이면
마른 종이 위 퍼렇게 뭉개진 글씨,
그 그렁그렁한 얼굴을 데리고
천천히 문을 나선다
---「누수」중에서

‘삶은 여행’이라는 말,
‘여행’이 꼭 ‘미행’ 같아 지금껏 몰래 누군가의 뒤를 밟아온 것만 같아
그래서일까
이토록 죄지은 기분

바다는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온갖 신비가 부신 지느러미를 흔들며 산호 틈 곳곳에 숨어 있다는데

해변에 앉아 생각한다
---「서해」중에서

부고가 왔다
네가 죽었다고, 겨울 늦은 밤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사탕 하나를 물고 있는데
잠들지 못한 내 오랜 습관이지 사탕은, 어릴 적 어느 제상에선가 훔쳐 온 것

달다, 달다, 하면서
---「옥춘」중에서

곧 잠들 수 있을까

나는 묻고
너는 답하지 않는다
나는 묻고
너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칠 수 없고
흔한 열병을 앓는 것뿐인데

묻고
또 묻는다

너는 대체 누구였을까
---「눈보라」중에서

죽음은 구멍 난 이파리처럼 가볍다
시간이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야윈 돌배나무가 몇개의 고단한 얼굴을 떨어뜨린다
돌배는 쓰지도 달지도 않다
때가 되면

우물 위에 반듯이 누워
긴긴 헤엄을 연습한다
---「물가에 남아」중에서

눈물 자국이 만든 얼룩을 보았지

오래된 수건으로 무심코 뺨을 문지르고 목덜미를 쓸다
거기 생겨난 한 사람의 표정을

글썽이는 눈동자를

아아 이제 나는 어디서든 그 얼굴을 만날 수 있겠네
눈을 맞출 수 있겠네
울고 난 뒤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는 사랑을 하겠다
눈물이 맺어준 사랑

---「세수」중에서

출판사 리뷰

독자를 마음을 빼앗는 공감의 언어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마음에 대하여

무언가를 관찰하는 화자들의 시선은 마음을 뺏는다. 둘러앉은 이들 사이에서 혼자 몰래 빠져나가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의 뒷모습이 신경 쓰여 “내가 다 잘못했어요/말하고 싶어”(「수」)하는 모습이나, 편의점 옆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이 신경 쓰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빈 박카스 병을 이리저리 굴”(「24시」)리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순식간에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감정이 이입된다. 물론 저마다의 방식으로. ‘왜 그때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을까.’ ‘왜 그때 무심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을까.’ ‘왜 주변을 향해 화를 내지 않았을까.’ 과거의 어떤 장면을 향한 ‘왜’가 연달아 떠오른다. 그것은 『수옥』이 그만큼 공감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수옥』의 화자는 무언가를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는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또 반성한다. “‘삶은 여행’이라는 말,/‘여행’이 꼭 ‘미행’ 같아 지금껏 몰래 누군가의 뒤를 밟아온 것만 같아/그래서일까/이토록 죄지은 기분”(「서해」) 같은 구절을 읽다보면 ‘살아 있다’는 의미를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삶의 상실이 주는 슬픔이 지나간 이후, 삶이라는 것이 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선임 소설가가 “소란 속에서 침묵을 지키다 돌아올 때, 병원 복도에 홀로 앉아 호명되기를 기다릴 때, 봉분 앞에 바래버린 조화를 새것으로 바꿔놓을 때, 알 수 없는 허기에 식당을 찾아 어두운 골먹을 헤맬 때, 미래라는 것이 너무 어렵고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면 시인의 시집을 꺼낸다”(추천사)고 쓴 것도 이러한 정서와 맞닿는다.

시인은 “내 시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물 수(水)에 구슬 옥(玉)을 써야지 생각했다./아주 오래전부터”라고 「시인의 말」에 썼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시인의 한 시기를 매듭짓는 동시에 박소란 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바닥을 어루만지며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위로를 건네던 시인은, 이제 자신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좀더 따뜻하게 보듬기 시작했다. 그 따뜻함이 물처럼 구슬처럼 흐르고 또 머무른다.

“바닥의 표정은 어둡습니다. 고단합니다. 어쩌면 정말 위험하겠지요. 미끄러질 수도, 크게 다칠 수도 있겠지요. 철철 피를 쏟게도 되겠지요. 그래도 가끔은 이 어두운 물기가 삶의 신호 같다고 느낍니다. 살아 있음의 적나라한 신호.”(산문, 「병과 같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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