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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거짓말
장석남
창비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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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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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언덕
다시 언덕
느티
시월 바다를 향해 말하다
노을
내 맨 나중 가질 것은
연꽃 심을 때
가을 연밭
꽃이 무거운 꽃나무여
꽃과 물과 구름 노래
창을 닦아요
대숲 아침 해
좁은 봄
가을 포구
상강(霜降)

제2부


목도장

시 창작 수업
흰죽
가구를 옮기다
열쇠
병풍
아버지 옷
꽃 배달

제3부


자화상
무지개의 집
기차에서의 술
내가 사랑한 거짓말
묘지명(墓誌銘)
독작(獨酌)
노래를 청하다
사성암에서
새 그리기
가을 손
가면론
가면의 생
서정시를 쓰십니까?
가을 목수
사막을 사모함
나의 얼굴을 다오
옛집 명자꽃 더미 앞에서
쾌청
겨울 후박나무로부터
이야기하러 가는 나무

어느 날 나는 악기 상가 앞에 서 있다
분장실에서
나는 풍류객
나의 풍경
그림일기
어떤 방
대기실
한파(寒波)
이름을 놓다

제4부


조광조(趙光祖)
청량리역에서
여름의 입구
어느 장마
한 혁명의 방문
꽃밭에서
서울, 2023, 봄
법의 자서전
체중계에 대하여
마술 극장 서(序)
마술 극장 1
마술 극장 2
마술 극장 3
저울
어떤 봄
대서소 1
대서소 2
발명가
숙제
꽃송이 하나 떨어져서

해설|최원식
시인의 말

저자 소개1

張錫南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신서정파 시인. 1965년 인천 덕적에서 출생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방송대,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91년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 「마당에 배를 매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신서정파 시인. 1965년 인천 덕적에서 출생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방송대,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91년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 「마당에 배를 매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등의 시집과『물의 정거장』, 『물 긷는 소리』등의 산문집이 있다. 장석남 시인의 시에는 그리움이 있다. 시간과 내력을 꿰뚫는 그의 시선 앞에서 사물들은 그 내면에 숨긴 고독을 드러내고 돌아갈 고향을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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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76g | 125*200*9mm
ISBN13
9788936425128

책 속으로

언덕
파란 눈썹과 같은 언덕

나는 언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무엇이든 그 언덕을 넘어서 왔거든
나는 언덕을 넘어오는 한 사람으로부터 나였으니까

그 한 사람을 무슨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지
그리하여 한번도 부르지 못하고

나는 그 언덕의 노래였으면 했지
주인이 없거든 노래는 갇히지 않지
그 언덕과 같지 노을 속에서
멀리 사랑이 보이지 붉게 타는 노을
사랑이 보이는 그 긴 언덕을 나는 사랑하지
--- 「언덕」 중에서

물에 노래를 심다니요
그것도 지금 노래가 아니라 훗날
하지(夏至) 때의 그 노래를 심다니요
매일 아비를 잃는, 그믐마다 어미를 잃는
울음 아닌 노래를 심다니요

물에서 피는 꽃이라니요
꽃에서 나는 노래라니요
--- 「연꽃 심을 때」 중에서

서랍의 거미줄 아래
아버지의 목도장
이름 세 글자
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
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

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
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
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
국경이 헐거워 자꾸만 넓어지는 이 나라를
나는 저녁 어스름이라고나 불러야 할까보다

어스름 귀퉁이에 아버지 흐린 이름을 붉게 찍어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표구가 되었으나
그림은 비어 있네
--- 「목도장」 중에서

나는 살아왔다 나는 살았다
살고 있고 얼마간 더 살 것이다
거짓말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거짓말

나는 어느 날 사타구니가 뭉개졌고 해골바가지가 깨졌고
어깨가 쪼개졌고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
거짓말, 사실적인……
그러나 내가 사랑한 거짓말

나는 그렇게 내가 사랑한 거짓말로
자서전을 꾸민다
--- 「내가 사랑한 거짓말」 중에서

새를 그리고 그 옆에 새장을 그린다
그러면 자유를 그린 것 같다
새는 새장을 모른다

새장은 새를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나를 향해 내가 모르는 죄가 다가오듯이
우리를 향해 우리가 모르는 벌이 다가오듯이

내 이름을 쓰고 이름 위에 새를 그린다
새가 내 이름을 가지고 날아오를 것 같다
날다가 그만 놓아버릴 것 같다

새를 그린다
오래 앉아 있는 새
새를 향해 붉은 하늘이 야금야금 다가온다
--- 「새 그리기」 중에서

서정시를 쓰십니까?
아니요 벼락을 씁니다
벼락 맞을 짓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벼락 맞을 짓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벼락에 고하는 글을 씁니다

벼락에 고하는 글
화평한 서정시를 쓰고 싶습니다
위선과 비열, 몰염치와 야비, 교활하기까지 한
그 가면들을 순간의 빛 속에 가두고
때리는

서정시를 쓰십니까?
아니요 ‘서정시’를 씁니다
벼락같은
--- 「서정시를 쓰십니까?」 중에서

나는 만인 앞에 평등해요 헤헤
음흉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죠
원칙이 있지만 아주 가끔만 필요하죠
이득과 기득을 좋아해요 지킬 만한 가치죠
그에 위배되면 원칙을 꼭 알리죠
나는 물처럼 맑고 평등하다고 말하죠
유죄도 무죄도 다 나의 밥이죠
너무 바빠요 너무 불러대니 쉴 틈이 없죠
나는 법이에요
양심 같은 건 우습죠 이득 앞에서
그깟것 금방들 버려요 시류에 어긋난 소리죠
아 이만하기도 참 다행이죠
한때는 참 어려운 시절도 있었죠
너무 많은 살생을 해야 했으니
황혼이 오네요
저게 제일 싫어요
속속들이 황혼이 오네요
저 지축 속에 숨은 당당한 발소리
나는 귀를 막아요
잘 못 듣는 귀지만 다시 막지요
--- 「법의 자서전」 중에서

그의 불빛은 창을 비추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창밖에서도 그 빛이 보였을 뿐이다
그의 불빛은 나타나는 침묵들을 차례로 비추고 있다
또렷이 비추고 있다
그는 가지런하고 정결하고 고동친다
그는 분명한 혁명을 발명하려고
밤을 닦고 있다

조곡과 꽃가루 대신 낙엽이 뒹구는 길을 그의 관이 지나가리라

--- 「발명가」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물에 노래를 심다니요
그것도 지금 노래가 아니라 훗날
하지(夏至) 때의 그 노래를 심다니요”


자연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서정의 풍경을 그려내는 장석남의 시는 이제 무심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삼월 마지막 날이 사월 첫날을 맞아들이는 듯한 순전한”(「느티」) 마음이 피어나고, 아침 해가 “굶주린 호랑이처럼 쏟아져 들어”(「대숲 아침 해」)오는 고즈넉한 풍경 속에는 생명의 신운(神韻)이 생동한다. 간결한 언어로 수놓인 세밀한 풍경 속에는 시를 쓰기 시작한 이래로 시인이 쉼 없이 이어온 자문자답의 자취가 선명하게 스며 있다. 시인의 시선에 담긴 풍경은 ‘물에 심은 노래’처럼 은은하고 아름답다. 시인은 삶과 시를 오가며 본연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진득하게 묻고 자연은 그런 시인의 질문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언덕」과 「느티」, 그리고 「노을」을 비롯한 1부의 시에는 오랜 사유 속에서 찬란하게 영글은 시인의 사유가 편편이 녹아 있다.

한편 시인은 또 “살아온 내력의 울음 섞인 이야기”(「느티」)를 담담하게 노래한다. 낡은 책상 서랍에서 “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만 남은 아버지의 목도장을 발견한 시인은 “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목도장」)도록 애쓴 아버지의 고된 삶 앞에서 문득 울컥하고,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옷을 입어보다가 “왼쪽 안주머니 앞에 수놓인 노란 아버지 한자(漢字) 이름이/심장에 닿아 따끔거렸”던 기억을 소환하여 지금-여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희미한 불씨 같은”(「아버지 옷」) 추억에 젖는다. 세대를 아우르는 기억과 해후하며 삶의 이력을 곰곰이 되짚는 이러한 시편들에서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낸 시인의 미학적 성취가 눈부시다.

권력의 불합리로 얼룩진 폐허
그 틈에서 울려 퍼지는 통렬한 목소리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오늘날의 현실을 내다본듯한 날선 현실 인식과 예리한 풍자가 돋보이는 ‘정치시’다. “유골함을 받아 안듯/오는, 봄/이 언짢은 온기”로 시작하는 「서울, 2023, 봄」은 시참(詩讖)으로 전율이 일 만큼 오싹하다. 진실을 가려내는 법정을 거짓과 조작의 마술을 상연하는 극장에 비유한 ‘마술 극장’ 연작과 가전체를 새로운 시법으로 패러디한 「법의 자서전」은 풍자시의 절정을 보여주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골수에 든 오늘의 폐허를 재주껏 야유”(해설)하고 “이득과 기득을 좋아”하고 “양심 같은 건 우습”(「법의 자서전」)게 여기는 “법부의 허울 좋은 법”(「체중계에 대하여」)을 작심한 듯 신랄하게 비판한다. “산송장들을 만드느라/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하고”(「서울, 2023, 봄」), “거짓들이 끝도 없이 거짓들을 모”(「나는 풍류객」)으는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며 시인은 “파아란 입술을 달싹”이며 “김수영의 방 말고 혁명”을, “최제우의 개벽 자유 자유 자유 자유”(「대기실」)를 외친다.

“서정시를 쓰십니까?
아니요 ‘서정시’를 씁니다
벼락같은”


탁월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아와 인간에 대한 질문을 거듭해온 시인은 이제 현실에 한걸음 더 다가선다. 시인은 “넋마저 가면”(「가면의 생」)인 시대에“살아 있다는 것은 아프다는 것”(「한파(寒波)」)을 절실히 깨닫고, “위선과 비열, 몰염치와 야비, 교활하기까지 한/그 가면들을 순간의 빛 속에 가두고/때리는” 시, “벼락 맞을 짓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벼락에 고하는” ‘벼락같은 서정시’를 쓰겠노라 다짐한다. 폐허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의문과 숙제를/평생 풀지 못할까”(「숙제」) 두려워하면서도 “무섭도록 서러운 노래도 좀 부르면서” “사람 사는 땅”(「쾌청」)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사랑이 보이는 그 긴 언덕”(「언덕」)을 느릿하고 “희끗한 걸음”(「다시 언덕」)으로 넘어오는 한 사람, 시인의 모습이 숙연하다. 고유한 서정성과 더불어 ‘시’로써 더 나은 현실로 나아가겠다는 시인의 굳건한 믿음이 수놓인 이번 시집은, 현실에 발 디딘 굳건한 시의 소리에 목마른 독자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줄 것이다.

시인의 말

겨울 뜰에서의 발길은 솔 앞에 가서 머뭅니다.
봄 여름에는 가지지 않던 위치

이제 제법 ‘회고’가 많아지는 단계의 삶
‘솔’의 그것이 내게 있는가?
자문해보는 엄동의 때입니다.

검지의 굳은살이 지워지지 않은 것은 다행일까요?

2025년 1월
장석남

추천평

장석남의 시는 두어걸음 떨어져 읽으면 ‘훤’하고 ‘환’하여 양기로 충만한 꽃나무 같다. 그 잘생김에 마음이 끌려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번엔 온통 서쪽이다. 무엇이든 기울어지는 곳, 노을빛이 전부인 곳, 캄캄한 그림자가 “모란의 몰락”을 지켜보는 곳. 안팎의 다름이 흑백의 대비처럼 절묘하여 읽는 사람은 ‘저쪽’이 되었다가 이윽고 ‘이쪽’이 된다. 어느 곳으로든 흐를 수 있다. “물에 노래를 심다니요”. 그의 시는 과연 물 위에 심은 노래처럼 떠다니고 맴돌다 고요히 증발한다. 시 속의 돌, 꽃, 춤, 선(線)을 따라가다보면 “언덕을 넘어오는 한 사람”이 보인다. 오래된 얼굴이나 아직 부끄러움이 떠나지 않은 얼굴이다. 훤하고 환하며 안쪽은 슬픔으로 서쪽인 얼굴이다. “나를 향해 내가 모르는 죄가 다가오듯이”―뱀처럼 어둑하게 아름다운 이 리듬을 보라! 배를 밀며 오는 음악에 종일 귀 열고 싶다. -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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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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