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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라는 시’와 전태일-되기(이성혁)·6 연작 판화 우리 모두 전태일(김주형)·25 전태일이라는 시 권선희 밑줄/ 평화라는 시장에서·42 권혁소 서러운 풍경/ 어떤 고향 사랑·45 김명기 죽은 사람/ 베이글과 커피 그리고 천치·48 김사이 해마다 이맘때라도 오시라/ 옆집 아재·52 김형로 그가 하루 다녀간다면/ 박꽃 전태일·55 김해자 수철리 산174-1번지/ 시간 여행·62 박승민 상자에 던져진 눈/ 고산식물 인간·66 손택수 정수기가 울고 있다/ 슬픈 국기·69 송경동 조개를 캐네/ 노래, 할 수 있을까·71 송태웅 슈퍼문/ 배고픔이 고양이를 울고 갔다·74 엄기수 이끼 소녀/ 기나긴 이름에 대한 짧은 이야기·76 오현주 ○○○/ 움·84 유현아 겨울과 여름 사이에 절멸이 있었다/ ‘한 뼘’이라는 소식·88 이산하 장미꽃은 죽었다/ 후기 빠시즘·92 이설야 물고기 극장/ 중국인 거리의 쿨리들·95 이원규 당산나무의 말씀/ 짐새[?鳥]·98 이정연 점 하나들/ 품사 배우는 시간·104 이정훈 태성공업사/ 벌레·108 이중기 그 늙은 난쟁이 생각/ 그날·112 임성용 대장경/ 개미들·115 이철산 전태일 아니 이소선/ 흘러서 굴러서 떠밀려서·118 조선남 그리움이 붉어지면/ 전태일, 그리고 대구 9월 총파업·122 최백규 해방/ 집행유예·126 최세라 공터의 네모/ 밤 산책·129 표성배 잊을 수 없는 당신, 전태일/ 전태일은 없다·134 허은실 양회동/ 1·141 허유미 푸른 가까이/ 4월과 11월·146 황규관 피로 지은 집/ 오막살이 집 한 채·150 다시, 여는 글 법을 넘는 시―전태일이라는 기원(박수연)·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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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 이슬이 되리라는 결단은 시적인 결단이다.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임으로써 이 시적인 결단을 현실에서 실행했다. 앞에서 말한 문학적 죽음은 시적인 죽음이었던 것, 이때 ‘시적인’을 통상 생각하듯이 ‘화려하게 꾸민’, ‘멋있는’ 등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시적인’은 극한에까지 다다른 진실을 의미한다. 그 진실은 실존적인 것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고향으로의 귀향은, 자신의 실존이 형제가 있는 고향에서 온전히 진실될 수 있으며 그 진실 속에서만 이 소외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존재 전체를 회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결단이다. 전태일의 시는 자신의 실존과 고향(사회)의 분리불가능성을 지렛대로 삼아, 현실의 완강한 벽을 깨뜨리며 솟아난다.
---「이성혁, '전태일이라는 시’와 전태일-되기」중에서 가난한 우리가 가난한 집을 나와 가난한 생을 산다 해가 떠도 어두운 도시 내일을 봉한 숲에서 고만고만한 꿈을 쥔 우리가 모여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병들어 죽어간다, 풋복숭아 같은 몸들 희망을 담보한 자본의 착취 부유한 환경이 외면하는 우리가 숨 가쁜 서로를 부축하며 버티는 이 꽃밭은 삶인가, 이미 너머인가 기울어진 세상을 읽기 시작했다 노동을 밟고 일어서는 부와 권력의 속도 그들이 거름이라 치부하는 고귀한 바닥의 권리 하루하루를 살아 이루고 누릴 당연한 자유 일한 만큼 공정한 대가를 위해 온몸으로 뜨거운 밑줄을 그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스물두 살이었다 모두가 귀 기울이기 시작한 스물두 살, 전태일이었다 ---「권선희, 밑줄」중에서 눈 내리는 저물녘 건너편 설화산은 흰 저고리 눈 쌓이는 오솔길마다 치마 사각거리는 소리 밤나무는 가만히 내놓지 않았다 뿌리가 품고 있던 옥비녀와 은반지 꽃무늬 새겨진 쌍가락지 M1과 카빈 소총 탄두 탄피 박힌 두개골 불에 탄 뼈 도끼질 당하고 톱으로 잘리고 나서야 내놓았다 폐금광 구덩이에 뿌리내린 밤나무는 구슬과 청동 종 마사토와 진흙 잡석 사이 켜켜이 묻어놓은 꽃단추 끈 달린 고무신과 가죽신 흰 포대기 속에 싸여 있는 아기들 갈비뼈 눈보라 치는 밤이면 들린다 나무 부러지는 소리 아이들 구슬치기하는 소리 엄마 치마폭 속에서 엄마와 함께 구슬 꽉 쥔 채 할머니 품속에서 할머니와 함께 뱃속에 든 아이와 함께 섣달 저문 날 젖먹이는 업고 큰것은 걸리고 새끼줄에 묶여 설화산 뒷터골로 끌려가는 흰 저고리 흰 치마 1951년 1월 6일 ---「김해자, 수철리 산174-1번지」중에서 눈은 高空의 공포로 휘청거렸다. 말문이 막힌 채 상경하는 기차에서 몸을 던지듯 무작정 공단 앞에 뛰어내렸다. 태어나는 것과 버려지는 것의 배합 비율은 대체 얼마일까. 생각할 틈도 없이 뒤에서 떠미는 물량에 치여 상자에 내던져진다. 아, 그런데 이 벼랑은 어느 날엔가 와본 듯해. 살아본 듯해. 몸이 더 잘 얼 수 있도록 포장 상자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재고가 쌓이는 겨울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닫힌 공장을 나서는 언니도 겨울옷을 입고 봄 속에서 녹아가겠지. ---「박승민, 상자에 던져진 눈」중에서 자유의 새가 되고 광야를 달리는 세찬 바람이 되고 대지로 스며 역사의 꽃이 되고 푸르른 신념의 나무가 되고 어둔 세상의 별이 되고 해방의 불꽃이 되고 장작이 되고 들불이 되고 흘러 흘러 바다가 된 이들을 오랫동안 노래했네 늦게야 정신 차리고 보니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로운 세대들이 자신들 소리를 한껏 낼 수 있게 조용히 빈 여백으로 스며드는 일 추악한 말들 모두 지우고 조금은 더 곱고 깨끗한 백지로 남는, 혁명 ---「송경동, 노래, 할 수 있을까」중에서 처음에는 도끼 하나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나무토막처럼 찍었고 나중에는 망치 하나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못처럼 박았고 지금은 렌치 하나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나사처럼 조이고 풀었다. 물론 그동안 은밀히 도끼가 망치를 쪼개고 망치가 렌치를 내리치고 렌치가 도끼를 조이기도 했다. 모두 자신의 도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몰랐지만 또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과연 그들에게는 저 도구 하나밖에 없었을까. 낡은 게 가고 새로운 게 오지 않았을 때가 위기라면 진짜 위기는 낡은 것도 가지 않고 새로운 것도 오지 않았을 때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도구가 인간을 사용하는 지금이다. ---「이산하, 후기 빠시즘」중에서 나는 섬의 심장 너는 뭍의 심장 나는 파도보다 높은 너는 바람보다 강한 나는 울음이 바다를 건너도록 너는 외침이 산을 넘도록 나는 바른 주먹을 위해 너는 바른 행보를 위해 나는 들판을 달리며 너는 거리를 달리며 아침은 눈물을 저녁은 주검을 정오의 붉은 해는 깃발을 힘껏 잡아당기고 ---「허유미, 4월과 11월」중에서 전태일이 고통받는 친구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화염 속으로 집어넣었을 때, 불속에서 타올라 불꽃의 정상으로 올라간 것은 전태일만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사람들 전부였다. 세계의 모든 것이 일어나 그 불속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불꽃의 정상에서 그제야 비로소 노동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베냐민이라면 땅에서 일어나 전태일과 함께 날아올라가는 것은 파국의 잔해 더미들이고, 내려오는 것은 혁명의 언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전태일의 몸이 세상의 잔해 더미들을 이끌고 불속에서 일어나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신음이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신음이 곧 벌거벗어서 공유해야 할 감정의 공동체가 되는 노래였다. 1970년 이후 한국의 어떤 현대사는 이 노래를 시로 쓰는 행위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역사였다. ---「박수연, 법을 넘는 시―전태일이라는 기원」중에서 |
전태일의 마음과 영혼을 노래하다
그렇다면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시인들의 목소리는 어떤가. 참여한 시인들이 모두 ‘전태일’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인들은 자신의 노동자적 삶을 반추하면서 노동자들의 전태일-되기를 노래하는가 하면,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불러내 전태일의 삶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또는 이 땅의 노동 현실이 전태일이 겪은 고통스러운 삶을 재생산하고 있음도 여실히 밝혀주고 있다. 세 작품만 인용해보자면, 밤나무는 가만히 내놓지 않았다 뿌리가 품고 있던 옥비녀와 은반지 꽃무늬 새겨진 쌍가락지 M1과 카빈 소총 탄두 탄피 박힌 두개골 불에 탄 뼈 _김해자 「수철리 산174-1번지」 부분 전태일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영혼이 된 노동자는 진정 당신의 친구인가? 그 노동자가 사는 나라 대한민국 2023년 오늘도 당신 마지막 목소리가 노동자 귓가에 맴도는데 아직도 철공소에는 당신이 없다 _표성배 「전태일은 없다」 부분 나는 섬의 심장 너는 뭍의 심장 나는 파도보다 높은 너는 바람보다 강한 나는 울음이 바다를 건너도록 너는 외침이 산을 넘도록 _허유미 「4월과 11월」 부분 「수철리 산174-1번지」는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이 전태일의 삶과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 참혹한 전쟁이 폐허 위에서 전태일의 삶이 전개되었다는 면에서나 전태일을 기억하는 것과 비통한 우리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는 점에서 ‘전태일 시’는 어떤 총체성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전태일은 없다」는 전태일은 살아 있는데 우리의 전태일-되기가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4월과 11월」은 제주 4?3항쟁과 전태일의 ‘완전한 결단’을 연결함으로써 4?3항쟁이 곧 전태일의 전사(全史)이며 4?3항쟁을 사는 것이 전태일을 다시 사는 것과 다름없음을 노래하는 시다. 이렇게 시인들은 사소한 자신의 생활에서부터 지금 살고 있는 당대 현실,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을 전태일과 함께 사유함으로써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단순한 구호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이것은 곧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는 시작(詩作) 행위임과 동시에 직접적인 운동과 실천에도 시적인 상상력과 마음이 긴요함을 낮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전태일이라는 시’라는 언어가 그러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전태일의 ‘정신’만을 강조할 때 빠질 수 있는 독단은 전태일의 마음과 영혼을 불러들여야 새로운 출발도 가능할 터이다. 정신은 움직이는 현실에 맞게 정초해야 할 것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을 대하는 마음 혹은 영혼이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
이 책은 대구에 있는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기획한 문학 앤솔로지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전태일이 살았던 대구의 옛 집터를 시민과 노동자들의 십시일반으로 구입하였고 현재는 그 터에 대구 전태일기념관을 지으려고 한다. 이는 대구의 상징과 언어를 바꾸고자 하는 획기적인 시도이며 이 책 또한 그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한국의 시인들과 문학평론가들이 전태일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그 삶이 어떻게 시적이며 동시에 우리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시인들은 전태일의 마음과 영혼을 헤아려 시를 지으면서 여전히 부조리한 노동자의 삶을 노래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 두 분은 어째서 전태일의 삶이 시인지 밝혀주고 있다. 당연히 전태일의 삶을 문학으로 축소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과 실천에 전태일의 삶 같은 시의 마음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전태일의 정신은 당연히 전제하면서 지금껏 말하지 않았던 전태일의 깊은 마음과 순결한 영혼을 밝히고자 하는 또 다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전태일의 삶을 표현한 판화도 실려 있으니 언어와 그림이 모두 함께 전태일을 기리고 있는 셈이다. 모쪼록 이 책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 ‘전태일이라는 시’가 마음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대구에도 전태일기념관이 만들어질 날을 기쁘게 꿈꿔본다. - 이수호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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