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서 시인은 둥글다. “순두부찌개 한 숟갈을 떠서/흰밥에 비비며 그대를 생각합니다”(?저녁에?)처럼 가식이 없다. 시인은 무안군 월선리에 산다. 지명도 둥글다. 그러나 그는 뜨거운 땅, 정읍 출신이다. 그의 뼈는 동학의 뜨거운 함성에서 왔다. 동학 당시 정읍에는 “파도 파도 피울음”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을 타고 오르면 결국 동학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정읍 출생의 시인은 뼈로 아는 것이다. 박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시절 민족, 통일, 노동문학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그가 동학의 ‘뼈내림’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